‘탐정’, 참으로 나쁜 코믹 추리물인 이유

[엔터미디어=듀나의 영화낙서판] 추리물이란 대부분 범죄로 시작한다. 단편이라면 범죄가 아닌 소재로 시작하거나 끝나는 경우가 종종 있지만 그런 경우에도 시작이나 끝은 범죄 분위기를 풍기기 마련이다.(코난 도일의 셜록 홈즈 단편들이 양쪽 모두에 좋은 예를 제공해주고 있다. 전자는 <노란 얼굴>, 후자는 <붉은 머리 연맹>) 성인용 장편인 경우는 선택의 폭이 더 좁아서 작가가 아주 엄청난 재주를 부리지 않는다면 대부분 중대 범죄, 주로 살인이 나오기 마련이다. 용하게 다른 범죄, 그러니까 유괴나 보물찾기로 시작한 소설도 대부분 중간에 누군가가 죽는다.(윌키 콜린스의 <월장석>을 보라.) 추리물은 피투성이 장르이다.

그런데도 ‘코믹 추리물’이라는 장르가 있다. 상식적으로 생각하면 어처구니가 없다. 우린 누군가가 남의 손에 살해당한다는 이야기를 보고 웃어서는 안 된다. 하지만 이 장르는 이 당연한 경고에도 불구하고 1세기 넘게 풍성한 수작들을 잉태해왔다. 노골적으로 코믹 미스터리를 내세우지 않는 작가들 중에서도 만만치 않은 유머감각을 과시하는 작가들도 많다. 어떻게 이런 것이 가능한가?

여러 가지 길이 있다. 우선 고전적인 본격 추리물이 지극히 인공적인 장르란 걸 잊어서는 안 된다. 이들 대부분은 진짜 살인이라기보다는 실제 세계의 살인을 흉내낸 판타지다. 비오고 폭풍우 치는 날 밤, 대저택의 서재에서 비명소리가 들려 문을 부수고 들어가보니 저택 주인이 등에 칼을 박은 채 쓰러져 있고 범인이 없다면, 여러분은 굳이 피해자를 위해 눈물을 흘릴 기분이 들지 않을 것이다. 척 봐도 그는 밀실 살인을 위한 소도구 이상도 이하도 아니다.

그렇다면 이야기는 일종의 마피아 게임 비슷하게 흘러가는데, 이 상황이라면 진지함 따위는 개나 줘버리고 얼마든지 웃기는 상황을 만들 수 있다. 크레이그 라이스의 <스위트홈 살인사건>은 어린 주인공들이 말려든 살인, 협박, 조직범죄가 난무하는 상황이 단지 장르의 관습이란 걸 독자들이 인식하고 있기 때문에 웃기다. 그렇지 않다면 아이들이 걱정되어 웃음 따위는 날아가버릴 것이다.



잔인함과 폭력을 일부러 과장해서 웃음을 유발하는 부류도 있다. 아무리 끔찍한 이야기라도 정도를 넘어서는 순간 우린 그 안에서 유머를 찾는다. 대실 해밋은 코믹 추리물의 전문가는 아니지만 <피의 수확>이나 <데인 가의 저주>는 종종 어이없게 웃긴다. 거의 전쟁 수준으로 사람들이 우르르 죽어가는데 처음 몇 페이지에서는 진지할 수 있어도 이런 게 계속 이어지면 그 반복에 무뎌지기 마련이고 우린 그 안에서 비극보다는 어처구니 없음을 본다. 종류는 다르지만 비슷한 현상이 스플래터 호러 영화를 볼 때 일어난다.

그 외에도 다른 예들이 있다. 특별히 자신이 그리는 세상의 어두움이나 잔혹함을 왜곡하거나 가볍게 보지 않으면서도 그 안에서 유머를 찾아내는 전문가로는 에드 맥베인이나 봉준호가 있다. 사건보다는 주인공 캐릭터의 희극성에 집중하는 작가도 있다. 어떤 이야기를 다루더라도 태생적으로 말장난의 유혹을 피하지 못하는 작가도 있기는 하다. 지금 유통기한이 지난 몇몇 옛날 추리소설들은 너무 시대에 뒤떨어지고 조악해서 웃기다.



어느 경우라도 ‘코믹 추리물’에서는 꼭 지켜야 할 조건이 있다. 정상적인 정신상태인 독자나 관객이 작품을 감상하는 동안 실제 사건의 심각함에서 적절한 거리를 둘 수 있게 하거나 웃음의 대상과 타이밍을 정교하게 맞추어야 한다. 추리물이 다루는 모든 살인의 피해자가 밀실 서재 안에서 등에 칼을 맞은 성격 나쁜 억만장자일 수는 없다. 아무리 추리물이 극단적으로 비현실적일 수 있는 장르라고 해도 우리가 무감각해서는 안 되는 범죄들이 있다. 만약 누군가가 블랙 달리아 살인사건이나 린드버그 유괴사건, 개구리 소년 실종사건을 보고 웃는다면, 그건 그가 독특한 유머감각의 소유자란 뜻이 아니다. 그건 그냥 사람이 덜 되었다는 뜻이다.

영화 이야기를 하자. 얼마 전에 <탐정: 더 비기닝>이라는 영화가 개봉을 했다. 포스터만 봐도 이 영화가 ‘코믹 범죄물’을 의도하고 있으며 이 영화가 성공하면 시리즈로 나올 준비를 하고 있다는 게 보인다. 이 계획에 대해선 뭐라고 말을 못하겠다. 시리즈 성공여부는 흥행성적에 달려 있고 그건 내 관심 영역 밖이다. 내가 말할 수 있는 건 <탐정: 더 비기닝>이 여러 모로 나쁜 추리물이란 것이다.



아무리 시체와 흉기로 이루어진 구조물이라고 해도 좋은 추리물의 미스터리에는 정교하게 조작된 아름다움이 있다. 겉보기엔 복잡하더라도 퍼즐이 완성되면 직관적으로 그림이 단번에 눈에 들어오는 그런 아름다움 말이다. 마찬가지로 주인공 탐정의 추리 과정에도 그 아름다움에 어울리는 자연스러운 흐름과 명쾌함이 있어야 한다. 추리소설 명탐정들이 괜히 명탐정인 게 아니다. 작가가 정답을 알려주고 있으니 범인 맞히는 건 누구나 한다. 과정이 중요하다. 우리가 기억하는 셜록 홈즈의 명대사는 "네가 범인이다!"가 아니라 "왜 개가 짖지 않았을까?"라는 점을 잊지 말자.

<탐정: 더 비기닝>은 좋은 미스터리의 반대로만 간다. 이 영화는 영화가 시작했을 때 던져진 질문보다 내놓은 해답이 더 잡다하고 지저분한, 정말 드문 영화이다. 얼마나 지저분한지, 중후반까지 얼굴도 제대로 보지 못한 인물 하나가 유력한 살인용의자로 등장해도 눈에 뜨이지 않을 정도다. 스포일러를 허용한다면 더 심한 이야기를 할 수 있겠지만 여기까지만 하자.



탐정도 가관이다. 권상우가 연기란 만화방 주인은 이 영화의 ‘괴짜 아마추어 명탐정’ 역할인데, 영화가 시작할 때부터 끝날 때까지 단 한 번도 명탐정다운 명쾌함을 보여주지 못한다. 그의 추리는 대부분 허망한 억측이거나 자잘한 계산이다. 홈즈 소설이라면 레스트레이드나 왓슨이 할 일을 이 영화에서는 탐정이 하고 있는 것이다. 막판에 진상을 밝히는 추리도 안이하게 추리물의 고정된 관습을 끄집어내는 것이 전부이다. 추리도, 논리도, 직관도 없다. 심지어 그 답도 일그러져 있다.

막판에 반전을 만들기 위해 작가가 추리에 살짝 결함을 준 것인데, 그 때문에 탐정에게만 작가가 정답을 알려주었다는 것이 더 노골적으로 티가 난다. 정상적인 추리과정을 거쳤다면 그 부분만 구멍이 나 있을 수는 없기 때문이다. 이 영화의 추리는 마치 앞의 우등생 정답을 훔쳐 보다 오답까지 따라한 부정행위자의 답안지 같다.

하지만 영화가 나쁜 진짜 이유는 이 작품이 ‘코믹 추리물’을 내세우고 있으면서 여기에 계속 실패하고 있다는 데에 있다. 일단 영화는 두 캐릭터를 어떻게 써야 하는지도 잘 모른다. 두 사람은 역할 분담도 제대로 이루어져 있지 않고 영화가 끝날 때까지 합도 맞지 않으며 서로에 대한 믿음도 없다. 무엇보다 코미디 재료가 아주 안 좋다. 언제까지 한국 관객들은 성질을 이기지 못하고 아무나 두들겨 패는 형사를 보며 웃고만 있을 건가.



그보다 결정적인 이유는 앞에서 내가 장황하게 언급한 ‘살인과의 거리두기’와 관계가 있다. 유료 시사회의 영화 소개 클립에서 주연배우 성동일이 한 말에 따르면 이 영화는 배꼽 잡는 코미디다. 하지만 이 영화에서는 자그마치 여섯 명의 여자들이 잔인하게 살해당한다. 앞에서 말한 ‘과장된 상황’이 아니냐고? 그렇지 않다. 이 연쇄살인에는 그런 거리두기가 없다. 무엇보다 살해된 피해자 중 한 명은 어린 소녀다. 또 한 명은 공포에 떨고 있던 성폭행 피해자다. 왜 내가 이런 사람들의 시체가 나오는 영화를 보고 웃어야 할까?

<탐정: 더 비기닝>은 웃기기만 한 영화는 아니다. 후반에 가면 웃음기도 별로 없다. 하긴 그 때도 웃기려 했다면 영화는 더욱 기형적이 되었을 것이다. 하지만 영화를 캐릭터 코미디의 틀 안에 가두고 그 안에서만 사건을 보려는 태도는 여전하다. 후반부에서 웃음기가 덜한 건 그 부분에서만 진지했기 때문이 아니라 그냥 코미디의 재료를 찾는 데에 실패했기 때문이다.

그 결과 <탐정: 더 비기닝>은 아주 이상한 우선순위를 고집하는 영화가 된다. 20분 당 한 명씩 죽어가는 여자들보다 경제적으로 무능력한 남편의 기를 살려주는 것이 더 중요하고 살해당한 어린아이보다 직장에서 돌아와 애를 돌보고 있는 아내 대신 설거지를 하는 남편을 더 불쌍하게 보는 영화 말이다. 여러분은 어떻게 생각할지 모르겠지만 난 이 태도가 아주 글러먹었다고 본다.

칼럼니스트 듀나 djuna01@empas.com

[사진=영화 <탐정: 더 비기닝>스틸컷>]

저작권자 ⓒ '대중문화컨텐츠 전문가그룹' 엔터미디어(www.entermedia.co.kr), 무단전재 및 재배포금지
저작권자 © 엔터미디어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