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턴’의 성공으로 본 한국의 세대갈등의 위험도

[엔터미디어=듀나의 영화낙서판] 낸시 마이어스의 영화 <인턴>에서 인터넷 쇼핑몰에 취직한 시니어 인턴으로 나오는 로버트 드 니로 캐릭터 벤의 나이는 일흔이다. 드 니로는 1943년생이니 촬영 기간 같은 것을 고려해보면 같은 나이나 마찬가지다. 분명 배우의 나이에 맞추었을 것이다.

벤은 이 영화에서 우리가 상상하는 노신사의 완벽한 모델처럼 나온다. 하지만 1943년생이 벤처럼 클래식한 취향의 노인으로 늙을 가능성은 얼마나 될까. 가능성이 낮다는 이야기는 아니다. 하지만 벤의 나이는 웬만한 록큰롤 전설의 나이와 비슷하다. 그는 196,70년대의 격동기를 거치며 별별 것들을 다 보고 접했을 것이다. 시대와 공간에 따라 사람들이 나이를 먹는 과정은 다르며, 지금 미국의 70대는 상당히 젊은 편이다. 그 증거로 드 니로의 경력 자체를 제시한다.

이는 벤이 설득력 없는 인물이라는 의미가 아니다. 언제나 얄미울 정도로 자신의 나이에 맞추어 사는 사람들은 얼마든지 있다. 그들 중 일부는 그러면서도 놀라울 정도로 융통성 있고 여유로운 사고를 보여주기도 한다. 벤이 그 복 받은 소수일 가능성은 얼마든지 있다. 원래 영화의 주인공이 될 자격은 특별한 소수에게만 주어진다.

하지만 벤이라는 캐릭터가 가지는 매력은 그의 허구성에 있다. 낸시 마이어스의 경력을 따라온 관객들은 이 허구성에 익숙하다. 마이어스는 지금까지 미국 중산층 페미니스트 여성을 타겟 관객으로 해서 꾸준히 영화를 만들어왔는데, 이 영화들은 투쟁적이거나 사실적인 대신 온화하고 깔끔한 판타지에 가깝다. 소망은 그럭저럭 충족되고 나오는 남자들은 대부분 말이 통하고 정말로 나쁜 일은 일어나지 않는다. 하긴 우리 모두는 판타지가 필요하다. 페미니스트라고 예외일까.



벤 역시 마이어스식 판타지의 일부이다. 진짜 1940년대생 노인이 아니라 허구에서 취한 막연한 구시대의 세련된 이미지를 그대로 가져온 인물이다. 보다 현실적인 노인의 이미지를 취할 수도 있었겠지만 그랬다면 판타지가 망가졌을 것이다. 이 판타지가 극대화되는 부분은 앤 해서웨이가 연기하는 쇼핑몰 운영자 줄스와의 관계가 깊어졌을 때이다. 이 정도면 그는 ‘현명한 노인’의 위치를 즐기며 얼마든지 줄스에게 훈계를 하고 지혜를 전달할 수 있다.

하지만 그는 그러지 않는다. 그는 줄스의 선택을 존중하고 꼭 자신의 의견을 말해야 하는 순간에서도 자기의 입장을 정확히 안다. 그리고 그 순간 내민 그의 의견은 모범적인 페미니스트 답변이다. 자, 생각해보라. 태어나서 이런 노인들을 몇이나 만나봤는가. 마법을 쓰지 않고 남자 몸을 취했을 뿐, 그는 줄스의 인생을 완성시키기 위해 나타난 요정 대모다.

<인턴>은 지금 한국에서 의외로 히트를 치고 있는 영화이다. 추석 시즌에 극장을 찾은 관객들의 다수가 로버트 드 니로가 요정 대모로 나오는 낸시 마이어스 영화를 택했다는 것은 현실세계의 세대갈등에 진저리가 난 관객들이 이 판타지를 도피처로 받아들였다는 의미일 수도 있다.

자신을 벤의 위치에 놓고 감정이입하는 나이 든 관객들도 있겠지만 아마 대부분은 젊은 관객들일 것이다. 벤은 온전히 감정이입하기엔 지나치게 완벽하기 때문이다. 연속극의 재벌N세 남자주인공이 한국사회의 계급구조가 더 이상 해결할 수 없을 정도로 극단화되었다는 증거이듯, <인턴>의 성공은 한국의 세대갈등의 위험도를 측정할 수 있는 도구가 될 수 있을지도 모른다.

칼럼니스트 듀나 djuna01@empas.com

[사진=영화 <인턴>스틸컷>]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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