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빠를 부탁해’, 처음 그대로의 기획의도를 살리려면

[엔터미디어=정덕현] SBS 예능 <아빠를 부탁해>에서 이경규는 딸 예림이를 데리고 한편의 <체험 삶의 현장>을 찍는다. 한 시골의 소 축사로 간 그들은 생각보다 쉽지 않은 소똥 치우기로 하루를 보낸다. 이경규가 딸을 데리고 축사로 간 명분은 자신이 한 때 목축업에 뜻을 두었다는 것이고, 다른 한편으로는 딸에게 ‘노동의 가치’를 일깨우겠다는 것이다. 하지만 그런 명분과 달리 이들이 하루 종일 축사에서 한 것은 소똥 치우는 일을 하는 상황이 주는 웃음 만들기에 가까웠다.

노동 없이 말장난으로 하는 웃음보다야 확실히 낫다고 말할 수 있을 것이다. 그것도 한때는 ‘날방의 일인자(?)’라고도 불리던 이경규가 아닌가. 그의 노동에서는 확실히 달라진 그의 예능에 대한 자세가 느껴진다. 하지만 이렇게 몸소 힘겨운 노동을 하는 것 그 자체보다 더 중요한 건 그것을 왜 하느냐다. 시골에서 딸과 소똥을 치우는 일이 <아빠를 부탁해>가 지향하고 있는 ‘아빠들의 삶’과 무슨 연관이 있을까. 그것은 결코 보통의 아빠들이 딸과 하는 일은 아닐 것이다. 누가 봐도 방송의 한 미션이라는 것이 드러날 때 예능의 자연스러움은 깨져버린다. 힘겨운 노동에도 불구하고 그것이 그다지 효과가 없게 나타나는 건 그래서다.

이것은 서천으로 조재현과 딸 혜정이 여행을 떠나는 것에서도 마찬가지의 문제로 드러난다. 즉 아빠와 딸이 함께 여행을 가는 것이야 누구나 공감할만한 일이지만, 이 프로그램에서는 여행이 너무 자주 등장했다. 이경규와 예림이 추억여행을 다녀오고 조재현과 혜정이 서천 여행을 떠나고... 이런 식으로 여행은 출연자들에게 돌아가며 로테이션 되는 것 같다.

물론 여행이 주는 일상탈출과 그 속에서 아빠와 딸이 조금은 가까워지는 시간들이 의미 없다는 건 아니다. 하지만 이런 패턴은 너무 단조롭다. 서천에서 벌어지는 축제나 그 축제에서 맨손으로 전어를 잡는 건 사실 너무 흔한 장면이다. 그러니 이 단조로움을 벗어나기 위해 평상시 아빠가 자주 쓰는 말을 하게 만드는 미션 설정 같은 조미료가 들어갈 수밖에 없다. 자연스럽게 아빠와 딸의 관계가 묻어나는 것이 아니라 억지로 설정된 미션과 게임들은 <아빠를 부탁해>의 기획의도 자체를 흐리는 결과를 가져온다.



이경규나 조재현은 초기부터 출연해 꽤 오래도록 딸들과 교감을 해왔기 때문에 이미 어색했던 관계가 상당히 풀어져 있어 이런 미션 같은 조미료가 필요했을지 모른다. 그렇다면 새롭게 투입된 이덕화 부녀와 박세리 부녀는 어떨까. 먼저 이덕화와 딸 지현은 너무 게스트에 의존하는 느낌이 짙다. 둘만 있는 자리가 어색하기 때문이라고 말하긴 하지만 박지우가 출연해 춤을 가르치고, 이동욱이 출연해 이야기를 나누는 건 아빠와 딸의 관계에 집중시키기보다는 게스트에 시선을 빼앗기게 만든다. 본말이 어긋난 상황이 아닐 수 없다.

다행스러운 것은 그나마 박세리와 아빠 박준철이 <아빠를 부탁해>의 가장 자연스러운 이야기를 보여주고 있다는 점이다. 이들은 특별한 일을 한다거나 미션을 수행하는 일이 거의 없다. 그저 일상적으로 장을 보고 음식을 먹고 산행을 하고 집에서 다이어트 비디오를 보며 춤을 추고 운동을 하는 모습을 있는 그대로 보여준다. 아마도 이런 류의 방송에 대한 경험이 거의 없기 때문에 나타나는 자연스러움일 것이다. 하다못해 관상과 손금 이야기 하나만으로도 충분히 <아빠를 부탁해>에 걸맞는 재미를 만들어내는 게 이들 부녀다.



<아빠를 부탁해>는 나이든 아빠들과 소원했던 딸이 조금씩 그 관계를 회복해가는 모습을 보여주는 예능 프로그램이다. 이 과정에서 주목하는 건 아빠들이다. 늘 굳건히 가족의 중심에서 묵묵히 서 있어 오히려 그 존재를 깜박 잊고 있었던 아빠들을 재발견하는 데서 공감대가 생기기 마련이다. 하지만 너무 비일상적인 모습을 보여주거나 과한 미션을 부여하면서 그 본질이 흐려지고 있다.

이제 그 소원했던 관계가 풀어져 아빠와 딸이 어느 정도 소통하는 모습에 이르게 되었다면 더 이상 방송으로서는 보여줄 수 있는 게 없기 마련이다. 애초에 소기의 목적이 달성되었기 때문이다. 이런 경우에는 과감하게 새로운 인물을 투입하는 편이 낫다. 또 다른 문제나 상황을 갖고 있는 아빠들을 통해 폭넓고 다양한 공감대를 형성하는 일. 그것이 <아빠를 부탁해>가 처음 그대로의 좋은 기획의도를 살리면서도 지속적인 공감을 얻을 수 있는 방법이다.

정덕현 칼럼니스트 thekian1@entermedia.co.kr

[사진=SB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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