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때 드라마공화국 MBC, 어쩌다 막장의 늪에 빠졌나

[엔터미디어=이만수의 누가 뭐래도] MBC 월화드라마 <화려한 유혹>의 시작은 여느 막장드라마들의 그것처럼 호흡이 빠르다. 아니 빠른 정도가 아니라 숨이 가쁠 지경이다. 임신한 여주인공 신은수(최강희)와 남편이 함께 놀이공원에서 단란한 모습을 보여주는가 싶더니 갑자기 남편의 불안한 눈빛이 어른거린다. 그리고 남편의 카메라 렌즈에 들어온 비밀스러운 사내들. 회전목마에 아내를 남겨둔 채 남편은 갑자기 화장실에서 사내들과 격투를 벌인다.

다급해 보이는 남편. 아내를 차에 태우고 나오는데 또 갑자기 자동차 추격신이 벌어진다. 여지없이 등장하는 추월신이 등장하고 추격을 따돌리고 돌아온 집에서 남편은 은수를 다독여 들여보내고 자신은 시내로 나간다. 남편은 공중전화로 누군가에게 전화를 걸고 무슨 일인지 눈물을 흘린다. 늦은 시각에도 돌아오지 않는 남편. 갑자기 치는 천둥 번개. 어둠 속에 움직이는 남편의 차. 눈물을 흘리며 절벽을 향해 차를 모는 남편 그리고 추락하는 차, 나타난 형사에 의해 밝혀지는 남편의 20억 횡령 소식, 아이를 낳는 은수....

1회 첫 10여분을 보고 나면 이 드라마가 대충 어떤 성격을 갖고 있는가를 알 수 있다. 클리셰들이 범벅이 되어 있고 장면 장면은 자극적이다. 음모, 복수, 출생의 비밀은 당연히 있을 것으로 보인다. 무엇보다 비밀스런 남편의 죽음에 깔려 있는 이야기와 그렇게 비련의 주인공이 된 은수가 향후 어떻게 복수를 해나가는가가 관전 포인트가 될 것으로 누구나 쉽게 예상할 수 있다.

사실 그 자극적인 장면들의 빠른 전개가 갖는 힘은 분명하다. 그것은 이미 과거 <아내의 유혹>이 막장드라마의 신기원을 기록했던 동력이기도 하다. 왜 이토록 속도가 빠른가 하면 그것이 단지 빠른 전개를 위한 것이 아니라는 걸 우리는 그 막장드라마를 통해 알게 됐다. 빠른 속도는 개연성의 부족을 가리는 장치이기도 하다. 빨리 전개되니 왜 라는 질문은 슬쩍 슬쩍 지나치게 되는 것이다.



<화려한 유혹>은 지금껏 MBC가 해왔던 드라마편성과는 사뭇 파격적인 변화를 보여주는 드라마다. 주로 월화에 MBC는 사극이나 시대극 같은 것들을 편성해왔다. 그런데 <화려한 유혹>은 이들 드라마들과는 완전히 다른 성격이다. 아마도 지금 현재의 MBC라면 주말드라마에 해당한다고 말할 수 있다. MBC는 많은 비판과 우려의 목소리들에도 불구하고 주말에 막장드라마를 편성함으로써 시청률에서 쏠쏠한 재미를 봤다. SBS가 주말드라마에서 밀리고, KBS의 <개그콘서트> 같은 예능 프로그램이 시청률에서 밀리게 된 건 MBC의 이런 자극적인 주말드라마의 영향 때문이다.

그런데 이제 MBC는 월화에도 이런 류의 드라마를 편성한다. 한 주가 시작되는 월요일부터 막장드라마를 봐야 하냐는 볼 멘 소리가 나올 법 하다. 게다가 <화려한 유혹>은 50부작이나 된다. 아예 판을 깔아준 격이다. 완성도보다는 시청률을 더 추구하는 드라마이기 때문에 이 50회 동안 얼마나 파격과 논란이 나올 지는 불을 보듯 뻔한 일이다.

완성도가 현저히 떨어지는 <화려한 유혹>과는 달리 SBS는 완성도 높은 사극 <육룡이 나르샤>를 선보이고 있다. 이 두 작품을 단순히 시청률 수치로 평가하는 일은 <육룡이 나르샤>의 입장에서 보면 억울할 일이다. 그런데도 시청률이 조금 나온다고 <화려한 유혹>의 성공을 논한다. 이는 합당하지도 않고 자칫 좋은 드라마를 제작하려는 이들의 사기를 꺾어 우리네 드라마 전체의 체념과 막장화를 부추길 수도 있는 일이다.

무엇보다 한때는 드라마왕국이라고까지 불리며 드라마의 진화를 선두에서 이끌던 MBC가 이토록 막장드라마의 선두 주자처럼 된 건 통탄할 일이다. 콘텐츠는 수치로서만 판단될 수 있는 일이 아니다. 마찬가지로 방송사의 가치란 경영수치만이 아니라 그만큼 가치 있는 콘텐츠의 추구에서 만들어지는 일이다. 방송사라기보다는 수익만을 추구하는 회사가 된 듯한 MBC의 현재 모습은 전반적으로 막장화되고 있는 드라마들과 비슷한 행보를 그리고 있다. 어쩌다 이런 지경에 이르게 된 것일까.

칼럼니스트 이만수 leems@entermedia.co.kr

[사진=MBC]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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