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존 맛집 프로그램의 문제점을 영리하게 돌파한 ‘3대 천왕’


제8강. 명인 (名人)

[명사]
1. 어떤 분야에서 기술과 재주가 뛰어나서 이름이 난 사람
2. <백종원의 3대 천왕>이 자영업자를 존중하는 방법


[엔터미디어=이승한의 TV키워드사전] 맛집 프로그램들 홍수다. 채널 성격부터가 음식 채널인 푸드TV나 O’live 채널이야 그럴 수 있다 쳐도, 음식에 대한 새로운 담론을 다루겠다는 포부로 등장해 결국 ‘문 닫기 전에 꼭 가야 할 집’이란 타이틀로 맛집을 소개하고 있는 tvN <수요미식회>라거나, 정준하가 버티고 있는 전통의 맛집 프로 Y-Star <식신로드>, 먹방이란 단어를 처음부터 재정의하게 만드는 코미디TV <맛있는 녀석들>쯤 되면 슬슬 맛집 프로그램도 포화상태가 아닌가 하는 피로감이 몰려온다.

보는 이도 이런데 만드는 이들은 어떠랴. 경쟁이 치열해지면 취재윤리도 흐릿해진다. 최근엔 점주의 허락을 받지 않고 몰래 촬영해 방송을 내보내 물의를 빚은 사례도 생겼다. 매일 수제로 빵을 만들어 한정수량만 판매하고 문을 닫는 조용한 빵 공방이었던 해당 점포는, 방송 후 전국 각지에서 몰려든 손님들을 감당하지 못해 몸살을 앓았다. 늘어선 줄에 질린 단골은 발길을 돌리고, 사정을 잘 모르는 신규 손님은 지방에서 차를 몰아 왔는데 왜 빵이 없느냐고 항의하고, 스트레스를 감당하지 못한 사장은 대상포진으로 쓰러졌다. 이쯤 되면 과연 방송을 타는 게 자영업자에게 좋기만 한 일인지 아닌지 고민이 될 수밖에 없다.

점심 메뉴를 고민하는 직장인들을 노리는 시내 중심의 식당이든, 자동차를 타고 나가야 맛 볼 수 있는 교외의 ‘가든’이든, 전통적인 맛집 프로그램이 즐겨 찾던 식당들은 이런 방송 프리미엄 문전성시를 거부하지 않았다. 그러나 맛집 프로그램의 개수가 증가하며 경쟁이 치열해지고, 장르의 소비층이 젊은 독신 도시인으로까지 내려오면서 이야기는 조금 달라지기 시작했다.



젊은 도시인들이 시청자 층으로 영입이 되자 프로그램은 젊은 취향의 소규모 식당들도 다루기 시작했는데, 그 과정에서 높은 임대료를 감당하기 어려워 사장 혼자 일하는 식당이나, 소수의 인원이 한정 수량을 만들어 판매하는 걸 고유의 특징으로 잡고 영업하는 식당까지 취재 대상에 포함시킨 게 문제였다. 위에서 예로 들었듯 이런 매장들은 한번 방송을 타고 나면 전처럼 장사를 하는 게 요원해진다. 사전에 촬영 동의를 한 매장들조차 방송이 나가고 난 뒤 후회하는 경우가 생기는 마당에, 동의를 구하지 않고 몰래 촬영한 곳들은 사정이 어쩌랴.

‘몰래 촬영’이라는 콘셉트 자체가 처음부터 나쁜 의도로 등장했던 건 아니다. MBC PD 출신의 다큐멘터리 감독 김재환의 영화 <트루맛쇼>(2011)에선 맛집 정보 프로그램들이 브로커를 통해 점주들로부터 커미션을 받고 홍보성 촬영을 해주는 과정을 적나라하게 폭로했고, 영화 내용이 사실과 다르다며 상영금지 가처분 신청을 제출했던 MBC는 공익적 목적이 인정된다는 법원의 기각과 여론의 뭇매 속에 꼬리를 내렸다.



그 이후 신뢰도를 잃어버린 맛집 프로그램들은 점주와의 뒷거래가 없음을 증명하기 위해 ‘몰래 촬영’을 도입하기에 이르렀다. 화면 밑에 흐르는 “점포와의 사전 동의 없이 취재했다”는 자막은, 적어도 등장 단계에선 진실성을 강변하는 신뢰의 상징이었다. 그러나 방송 출연 자체를 꺼리는 식당들의 사정이 무시되고 그 폐해가 드러나기 시작하며 이 자막은 다시 무례함의 상징이 되어 버렸다.

결국은 균형의 문제다. 점주의 이익만을 위해 커미션을 받고 거짓 맛집 방송을 만들어 내던 시절을 지나, 점주의 사정은 생각하지 않은 채 소비자로서 식당을 찾을 시청자들의 입장만을 대변해 점주의 동의를 구하지 않고 도둑 촬영을 하는 시절까지 왔다. 한 극단에서 또 다른 극단으로, 시청률을 위해 방송이 최소한의 균형을 져버린 셈이다. 모든 맛집 프로그램이 도둑 촬영을 하는 것은 아니지만, 절대 다수의 맛집 프로그램이 소비자의 입장에서만 맛집을 소개한다는 점에서 위험은 어디에든 상존하고 있다.



최근 가장 뜨거운 맛집 프로그램으로 떠오른 SBS <백종원의 3대천왕>은, 기존의 맛집 프로그램들과 미묘하게 다른 길을 걸음으로써 상술한 문제점들을 피하려 노력한다. 백종원이 전국의 맛집을 돌아다니며 맛을 보는 모습을 보여주는 초반부 VCR은 미식을 즐기는 소비자인 동시에 동종업계 종사자의 사정을 헤아리고 존중하는 경력 20여년의 자영업자 백종원의 독특한 위치를 잘 보여준다. 그는 되도록이면 손님이 붐비지 않을 시간(개장 직후)을 골라서 매장을 찾고, 그게 여의치 않으면 다른 손님들과 함께 줄을 서서 입장한다. 방송 촬영을 위해 장사의 리듬을 깨서 하루 장사를 공치는 게 자영업자에게 어떤 타격이 되는지 알고 있는 것이다.

무조건 맛있다는 찬사로만 일관하지 않고 음식의 조리 방식이나 들어가는 재료를 설명하며 취향에 따라 호불호가 갈릴 수 있음을 상세히 설명하는 순간 백종원은 소비자를 위한 친절한 미식 가이드가 되고, 이 맛을 내기 위해 점주가 고집하는 원칙이나 고생을 설명하는 순간엔 점주의 고충을 헤아리고 그에 합당한 찬사를 보내는 자영업자가 된다. 방송에 정해진 정답은 없지만, 최대한 만들어 파는 이와 사 먹는 이 사이에서 균형을 잡기 위해 노력하는 것이다.



이렇게 점주의 고충에 주목하는 접근방식은 일견 SBS가 수 년간 방영 중인 <생활의 달인>을 떠올리게 만든다. 종이봉투 접기의 달인이나 드럼통 쌓기의 달인 등, <생활의 달인>이 주로 다뤄 온 분야는 주로 해당 직업 군을 벗어나는 순간 조명 받기 힘든 종류의 단순 노동이다. 굳이 카메라를 들이대어 과정을 보여주기 전까지는 눈치채기 어려운, 결과물만 받아봤을 때에는 가늠하기 어려운 종류의 노동. 소비자의 입장에서는 모르고 넘어가기 쉽지만 노동자의 입장에서는 그냥 넘어가기 어려운 공정에 집중했다는 점이 지난 10년 간 <생활의 달인>이 집중해 온 특장점이었다.

그리고 <백종원의 3대천왕>은 그 요소를 극대화해 스튜디오 안으로 끌어온다. 제작진이 선정한 맛집의 주인들을 섭외해 스튜디오로 모셔오고, 소비자의 입장일 땐 볼 수 없었던 주방의 공정을 라이브로 보여준다. 이런 접근방식이 없었다면, 선대의 맛을 이어가야 한다는 원칙으로 맨손으로 고기를 뒤집느라 손이 화상투성이인 돼지불백집 사장의 고충이라거나, 뜨거운 뚝배기를 손에 쥐고 선짓국물로 찬밥을 토렴하는 과정을 반복해 온 탓에 지문이 사라진 비빔밥집 사장의 노력 같은 것은 충분히 음미되지 못했을 것이다. 그리고 <백종원의 3대천왕>은 이렇게 손이 온통 상처와 화상 투성이인 이들을 ‘명인’이라는 칭호로 호명하며 경의를 표한다.



소비자본주의가 시대의 정신이 되며, 점점 상품 뒤에도 사람이 있다는 사실은 간과되기 쉬워졌다. 어느 순간 점주의 목소리보단 손님의 입장만을 배타적으로 대변하기 시작한 맛집 프로그램들 또한 그 혐의에서 자유롭기 어렵다. <백종원의 3대천왕>이 아무 문제나 단점이 없는 프로그램이란 이야기는 아니다. 그러나 이런 시대에 소비자와 노동자 사이에서 적절히 균형을 잡으려 노력하며 노동의 가치에 충분히 찬사를 보내려 노력하는 프로그램이 있다는 것은 주목할 만한 일이다. 금요일 밤, 보고 나면 배는 주려지고 가슴은 먹먹해지는 프로그램이 등장했다.

칼럼니스트 이승한 tintin@iamtintin.net

[사진=SB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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