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육룡’, 권력자들 알리바이 노릇을 하지 않는 이유

제9강. 여말선초 (麗末鮮初)

[명사] [합성어]
1. 고려 말 조선 초 혼란의 시기, 망국과 건국의 시대를 아울러 일컫는 단어
2. 왜 이번 정권 들어서만 벌써 세 차례째 이 시기를 다룬 작품이 나왔을까요?


[엔터미디어=이승한의 TV키워드사전] KBS 드라마 <추노>(2010)를 집필한 천성일 작가는 이렇게 말했다. “사극은 어떤 시대를 쓰는지보다 어떤 시대에 쓰는지가 더 중요하다.” 흥미롭게도 이 말은 <역사란 무엇인가>(1961)를 집필한 역사가 에드워드 H. 카의 말과 근사한 대구를 이룬다. “한 사회가 어떤 역사를 쓰느냐, 어떤 역사를 쓰지 않느냐 하는 것보다 더 그 사회의 성격을 뜻깊게 암시하는 것은 없다.” 에드워드 H. 카에 따르면 “역사가 즉, 그 행위를 연구하는 당사자들만 하더라도 진공 속에서 행위한 고립된 개인이 아니라 과거 어느 사회의 문맥 속에서, 또 그것에 충동을 받으면서 행위하고 있었던 것”이다.

사극도 마찬가지다. 극을 집필하는 작가 또한 당대라는 문맥 속에 존재하고 있고, 하여 어떤 시대를 그리겠다고 마음 먹는 것조차 의식적이든 무의식적이든 당대 사회의 공기를 반영할 수밖에 없다. 예로부터 사극이 당대 정치상황에 대한 알레고리로 해석되었던 것에는 다 이유가 있는 법이다.

불행히도 ‘올바른’ 단일 사관이라는 게 존재한다고 믿는 이들이 권력을 쥐었던 시절에는 역사의 해석 또한 권력이 바라는 방향으로만 가능했고, 사극 또한 마찬가지였다. 박정희 정권은 1962년을 필두로 이순신에 대한 재조명과 성웅화를 강력하게 밀어붙였다. 군부정권은 ‘임진왜란’ 당시 ‘당파싸움’ 속에서 ‘원균’을 필두로 한 간신들의 비난을 받아가면서도 ‘고독’하게 ‘일본’으로부터 나라를 구한 이순신의 생애 위에, 박정희 또한 ‘제2공화국’ 당시 ‘민주당 구파와 신파 사이의 갈등’ 속에서 ‘지식인’들의 비난을 받아가면서도 ‘고독’하게 ‘북한’으로부터 나라를 구하기 위해 5.16 쿠테타를 일으켰다는 서사를 슬며시 투영했다.

광화문 네거리에 이순신의 동상이 섰고, 그의 집권 기간 동안 이순신의 영웅적 면모를 강조한 장편영화가 3편이 개봉했다. 물론 이순신 장군의 생애는 그 언제 들여다보더라도 경이롭지만, 그 생애가 어떤 맥락에서 소비되느냐는 다른 문제다.



5공 시절은 어땠을까? 1983년 방영된 MBC <조선왕조 500년>의 첫 주자 <추동궁 마마>를 잠시 살펴보자. 고려 왕가의 후손인 선(최명길)이 “포은 대감을 주살한 일, 두문동에 불을 지른 일, 고려 왕씨들을 수장한 일, 또 얼마 전에는 목은 대감을 독살했고, 두 번에 걸친 왕자의 난하며…”라며 조목조목 이방원의 악행을 나열한 뒤 “그런 위인이 어찌 백성들의 안위를 생각하고 선정을 베풀겠”느냐 묻자, 승려 석보(박영지)는 이렇게 답한다. “주상이 되신 정안공이 그 일을 감당하지 아니했다면 다른 사람이 해도 했을 겁니다. 한 나라를 창업하는 일입니다. 창업한 나라의 국기를 다지는 일이지요. 모두가 있을 만한 일이었어요.”

신군부의 피비린내 나는 집권과정에 대한 노골적인 정당화로 읽힐 수 있는 대목이 아닐 수 없다. 여기에 이방원(이정길)이 직접 밝히는 포부까지 더하면 신군부가 집권을 위해 자행한 모든 폭력은 사실 나라를 위한 것이었다는 변명이 완성된다. “악업일 테지요. 허나 이 땅의 모든 악업을 내가 짊어지고, 그래서 내가 천벌을 받은 다음 이 나라 조선이 태평성대만 누릴 수만 있다면, 악업은 내가 짊어지지요. 천벌은 내가 받을 것이외다.”

더 처참한 사실은 이 정도 수위의 작품조차 발표하려면 정권과의 끊임없는 갈등과 투쟁을 거쳐야 했다는 것이었단 점이다. 역사의 해석에는 다양한 방법과 관점이 있다는 점을 부정하고 싶었던 이들은 제 구미에 맞지 않는 해석엔 사소한 것조차 ‘청와대 비방’이라 딴죽을 걸며 검열과 방송중단이라는 철퇴를 내렸다.



<조선왕조 500년>을 집필한 신봉승 선생은 훗날 이렇게 회고했다. “정부의 시책과 비슷한 대목이 나오면 기관에서도 갈채를 아끼지 않았지만, 비위에 거슬리는 내용이 방송되면 위협적인 협박과 견제가 도를 넘쳤다. (…) 작가인 나로서는 조선조 초기의 정사사실을 바탕으로 드라마를 쓰고 있는 것이지만, 이른바 기관에서는 ‘무슨 연유로 역사를 빙자하여 청와대를 비방하느냐’고 따지고 드는 것이었다. (…) 기관에서는 방송국의 심의기구를 강화하고, 원고의 사전검열을 하면서 삭제를 거듭하더니, 마침내 완성된 드라마의 일부를 잘라내는 등의 혹독한 제재가 가해지기 시작하였다. 그리고 몇 주일 후, [방송중단]이라는 어처구니 없는 폭력이 강행되었지만, 그 주체가 끝내 모습을 들어내지 않았다면 정보정치의 전형이 아니고 무엇인가.”

보수주의 정권이 들어선 이후 방송의 자유가 많이 위축되고 있다고는 하지만, 그래도 1987년 민주화 이전과 비교할 수 없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참여정부에서 이명박 정부로 넘어가던 2007년에서 2008년 사이에는 ‘개혁군주’ 정조의 노력과 좌절을 그린 KBS <한성별곡-정>(2007)과 채널 CGV <정조암살미스터리 8일>(2007), MBC <이산>(2007~2008)이 제작됐으며, 본격적으로 이명박 정부가 출범한 후에도 무능한 인조와 귀양지인 탐라에서 현명한 동네 노인으로 늙어가고 있는 광해군을 비교했던 MBC <탐나는 도다>(2009), 인조 연간 참혹했던 조선 민초의 삶과 실패한 혁명에 대해 이야기하는 KBS <추노>, 선조를 천하에 다시 없을 무책임한 군주로 그린 영화 <구르믈 버서난 달처럼>(2010) 등의 작품이 대중을 만났다.



좌절된 개혁과 혁명을 안타까워하고 당대의 피폐함을 한탄하는 작품들이 넘쳐나다 못해, 광해군의 대역을 맡은 광대 하선이 명나라에 파병을 해야 한다는 대신들에게 “부끄러운 줄 알라”고 일갈하고 폐비 상소에는 “조강지처를 버리란 말이오?”라 되묻는 영화 <광해, 왕이 된 남자>(2012)까지 등장했다. 정권 미화 드라마가 되지 않겠느냐는 의심과 우려를 샀던 SBS <자이언트>(2010)조차, 뚜껑을 열어보니 개발독재시기의 정경유착과 투기 등에 대한 탄식과 분노를 담아낸 작품이었다.

정조와 광해군의 실패한 개혁과 인조와 선조 연간의 처참함을 대비시키던 이명박 시대가 저물 때쯤, 여말선초는 다시 사극의 주제가 되었다. 그러나 이성계에 대한 영웅적 묘사가 주를 이루던 5공 시절과는 달리, 조선의 건국을 다룬 작품들도 전과는 사뭇 다른 해석을 들고 대중을 만났다.



SBS <대풍수>(2012~2013)는 풍수지리를 보는 가상의 도사들이 이성계를 도와 조선을 세우는 내용이었고, KBS <정도전>(2014)은 민중으로 인해 자신의 오만함을 깨닫게 된 정도전이 고려를 뒤엎을 이성계를 ‘선택’해서 조선을 개국하는 내용을 담았다. 왕조 중심, 이성계 중심의 서술에서 벗어나 민중의 삶에 귀를 기울이자, 고려의 몰락과 조선의 건국과정은 전혀 다른 맥락을 얻게 되었다. 바로 현세가 지옥이며 누군가 이 상황을 뒤집어엎어야 하는데 그것은 민중의 목소리에 귀를 기울인 자만이 할 수 있는 과업이라는 맥락 말이다.

여기에 현재 방영 중인 SBS <육룡이 나르샤>를 더하면, 벌써 박근혜 정부 들어 고려가 망하고 조선이 들어서는 서사만 세 번째 반복되는 중이다. 심지어 목조-익조-도조-환조-태조-태종의 여섯 명을 일컫는 <용비어천가> 원문의 ‘육룡’을, <육룡이 나르샤>는 역사왜곡이라는 지적까지 감수해가며 태조, 태종 부자와 조선의 설계자 정도전, 가상의 인물인 민초 이방지, 무휼, 분이로 대체해버렸다.

왕조 중심의 역사관은 저만치 후퇴하고, 그 깊이를 잴 수 없을 만큼 분노한 민중이 빈자리를 채운다. <육룡이 나르샤> 속 민초들은 필요하다면 무예를 배워 부패한 권신을 베어버리고, 국법을 무시하고 몰래 황무지를 개간하며, 동지의 죽음을 애도하기 위해 감영에 불을 질러버린다. 민중을 보고 각성한 정도전이 조선이라는 새 나라를 기획한다는 <정도전>으로부터 불과 1년, 조선 건국 서사 속 민중은 이제 각성의 재료가 아니라 각성‘한’ 주체가 되어 직접 고려를 박살내는 자리까지 온 것이다.



어쩌면 이 정부가 역사의 수레바퀴를 뒤로 돌려 다시 ‘올바른’ 단일 사관이라는 게 존재하고 나머지는 이설(異說)이라 가르치고 싶어하는 이유가 여기에 있는 것일지 모른다. 사람들이 더 이상 다른 방식으로 역사를 해석하지 못하게, 지도자 중심의 영웅서사가 아니라 민중 중심의 역사관을 갖지 못하게, 역사를 통해 오늘의 현실을 미루어 비춰보고 새로운 세상을 상상하지 못하게 하려는 권력의 자기 보위.

그러나 오늘날 조선의 건국과정을 그리는 작품들은 더 이상 5공 시절처럼 권력자들의 알리바이 노릇을 하지 않고, 분노한 민중은 점점 더 서사의 중심으로 성큼성큼 걸어 들어오는 중이다. 사극 또한 당대의 맥락 안에서만 존재하는 것이라 전제한다면, 이건 지금 사람들이 무척 많이 분노하고 있으니 더 이상 건드리지 말라는 경고의 메시지로 읽어야 하지 않을까. <추노>의 작가 천성일의 말로 시작한 글이니, <추노>의 연출가 곽정환의 말로 끝을 맺자면 “역사의 주인은 바로 우리 자신들이”다. 우리의 것을 멋대로 건들지 말라.

칼럼니스트 이승한 tintin@iamtintin.net

[사진=SBS, MBC, KBS]

저작권자 ⓒ '대중문화컨텐츠 전문가그룹' 엔터미디어(www.entermedia.co.kr), 무단전재 및 재배포금지
저작권자 © 엔터미디어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