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혼거방에 수감된 재소자들은 이런 걸 궁금해 한다
기사입력 :[ 2015-10-23 11:25 ]


[엔터미디어=백우진의 잡학시대] 직장 다니며 남편 옥바라지하느라 정신이 없던 부인이 2주일 만에 찾아왔다.

그는 부인이 면회실에 들어서자마자 물어봤다.

“지하철 한 량에 문이 몇 개지?”

어안이 벙벙한 부인에게 신신당부했다.

“아주 중요한 일이니 꼭 세어보고 편지로 알려줘.”

이 날은 특히 면회 시간이 짧아 다른 이야기는 거의 못 했다.

이건범 씨가 1990년 11월 구속돼 혼거방에 수감돼 지내던 시절 벌어진 일이다. 그는 대학생들을 규합하고 노동운동 조직과 연계해 반정부 운동을 하다가 국가보안법 위반으로 구속 수감됐다. 그는 앞서 대학 4학년 때인 1986년 개헌 요구 집회에서 체포돼 처음 구속 수감됐었다. 혼거방이란 독방과 달리 재소자 여럿이 있는 공간을 가리킨다.

20대 후반 시국사범 남편이 쓰디쓴 신혼 시기를 보내며 면회 온 부인을 보자마자 지하철 문 숫자를 물어본 것이다.

시간이 넘쳐나고 할 수 있는 일은 몇 가지뿐인 감옥에선 오만가지가 논쟁 대상이 되고 다툼은 치열하다. 의견이 엇갈리는 패들끼리 심리가 격렬해지면 사전 같은 데서 정답을 찾아와 들이밀어도 “어, 이 사전이 틀렸네”하기 일쑤다.

그가 있던 혼거방에서도 말싸움이 종종 벌어졌다. 함께 지내던 재소자는 소매치기이거나 ‘월담 스포츠맨’이었다.

그는 책 <내 청춘의 감옥>에서 “지하철 한 량에 문이 몇 개 있느냐는 그 혼거방 심리 중 최대 사건이었다”고 설명했다. 직업이 직업이니 만큼 다들 그런 건 익히 알고 있으리라고 생각했는데, 의외로 의견이 갈렸다.

옆방 사람들에게도 물어보고 나중에는 교도관에게까지 물어봤다. 잡지나 신문사의 사진도 찾아봤다. 그래도 답이 제대로 안 나오니, 결국 저자에게 심판의 전권이 부여됐다. 저자라고 해서 그게 기억날 리 없었다.

그는 결국 면회 온 부인에게 심판을 부탁하게 된 것이다.

일주일 후 편지가 왔다. 통로 문까지 합쳐서 10개라고 적혀 있었다.



이보다 십수 년 전, 박정희 정권에 맞서 반독재 투쟁을 벌이다 교도소 한 방에 수감된 선배 대학생들이 심리를 벌인 의문은 ‘소금이 왜 짠가’였다. 소금이 짠 성분이니까 짜지, 그게 어떻게 논쟁거리가 될까?

대학생들은 ‘입자파’와 ‘이온파’로 나뉘었다. 입자파는 “소금 알갱이 자체가 짠 맛을 지닌다”고 주장했다. 이온파는 “소금은 물에 녹으면 나트륨 이온과 염소 이온으로 분리된다”며 "우리가 느끼는 짠 맛은 (나트륨) 이온의 작용“이라고 맞섰다. 논쟁은 상대 진영을 인신공격하는 양상으로 흘렀다.

공방이 거듭됐으나 두 진영의 간극은 전혀 좁혀지지 않았다. 그러던 어느 날 결론에 이르는 길이 보였다. 한 사람이 형기를 마치고 풀려나게 됐다. 두 진영은 그에게 특별한 임무를 부여한다. “나가면 꼭 백과사전을 찾아서 소금이 왜 짠지 알려다오.” 얼마 후 교도소에 엽서가 도착했다.

“학우들, 소금은 알갱이가 아니라 이온으로 변해서 짠 거라네. 건승을 비네. 아무개.”

이 얘기를 보낸 이가 이온파였다면 대립은 종식되지 못했을지 모른다. 그러나 다행히 진실을 알린 대학생은 입자파였다. 팽팽하던 긴장은 금세 풀려버렸다. 교도소 그 방은 일상으로 돌아갔다.

재소자들은 논쟁을 ‘심리’라고 한다. 원래 심리는 재판정에서 죄를 다투는 행위를 뜻한다. 그 뜻이 확장돼 감옥에서는 어떤 사안에 의견이 엇갈려 논쟁이 붙을 때에도 ‘심리 붙는다’고 한다.

감옥에서 재소자들은 끝없이 펼쳐지는 시간을 잠시라도 때울 거리를 찾아 거기에 몰두한다. 오죽하면 감기약 콘택600에 실제로 알갱이가 600개 들었는지 일일이 헤아리며 확인할까. 이에 비하면 ‘지하철 문’과 ‘소금의 짠 맛’ 심리 사건은 더 긴 시간을 소비할 수 있고 게다가 학구적이기까지 하다.

칼럼니스트 백우진 <한화투자증권 편집위원> smitten@naver.com

[자료]
이건범 <내 청춘의 감옥>
김영현 <나쓰메 소세키를 읽는 밤>

[사진=영화 <7번방의 선물>스틸컷, 서울메트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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