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터넷언론 85%가 사라지고 나면 다음 차례는 누굴까


제10강. 비제이(BJ)

[명사] [외] [신조어]

1. 브로드캐스트 자키(Broadcast Jockey)의 줄임말. 개인 인터넷방송을 진행하는 이들을 이르는 말.
2. 누구나 저마다 다양한 목소리를 낼 수 있는 창구의 상징. 하지만 이조차도 옛날 이야기가 될지 모른다.


[엔터미디어=이승한의 TV키워드사전] 올해 초, 한 인터넷 언론사에서 마련한 2014년 대중문화계 총결산 대담에 초대된 적이 있었다. 대담 상대로 나온 이는 대학에서 미디어학을 강의하고 있는 교수였는데, 잠시 쉬는 시간을 틈타 한담을 나누던 중 그로부터 한 가지 흥미로운 연구 결과를 들었다. “보통 ‘타겟 시청자층’이라고 하면 2049(20세부터 49세)를 이야기하잖아요? 그러면 과연 10대들은 어떤 방송을 보는가 싶어서 조사를 해본 게 있는데, 이게 좀 재미있어요. 아예 TV를 안 보는 이들의 비율이 생각보다 상당히 높은 거예요.” “그럼 그들은 뭘 보며 노나요?” “인터넷 방송 있잖아요. 아프리카나 다음TV팟. 그게 더 재미있다는 거죠. 소재의 제한도 없고, 실시간으로 방송하는 이와 소통하고, 규모가 작으니까 시청자의 욕구를 반영하는 속도도 더 빠르고.”

내가 눈이 어두워 미처 그걸 주목하지 못 했구나 하며 머리를 긁적이고 돌아온 지 두 달쯤 지났을 무렵, 지상파는 본격적으로 인터넷 방송과의 접목을 시도했다. 올 2월 파일럿 방송을 띄운 이래 올 한해 가장 중요한 예능 프로그램의 자리에서 내려올 줄 모르는 MBC <마이 리틀 텔레비전>이 그것이다. 어찌 보면 기술의 발달이 불러온 광경 중 가장 드라마틱한 광경이 아닐까? 불과 이십여 년 전만 해도 방송이란 거대 자본과 인력들 없이는 운영이 불가능한 것이었다. 아마추어 무선 라디오 중계기로 해적방송을 한다는 사실 자체가 극을 흥분으로 이끌어가는 동력이었던 <볼륨을 높여라>가 불과 1990년 영화였으니까 말이다.

그러나 90년대 말 윈앰프 샤우트캐스트 플러그인의 등장으로 개인이 인터넷을 통해 라디오 생방송을 하는 것이 가능해졌고, 2000년대 중반 팟캐스트가 등장하며 음성기반 인터넷 개인 방송의 영토는 훨씬 더 광활해졌다. 비슷한 시기 출범한 유튜브와 아프리카는 개인 인터넷 비디오 방송까지 가능하게 만들었는데, 이렇게 최근 이십여 년 동안 등장한 신기술을 활용한 개인방송은 미약했던 시작을 잊게 할 만큼 창대한 현재를 자랑한다. 인터넷 방송을 하는 이들은 높은 몸값을 받고 MCN(다중 채널 네트워크) 기획사에 섭외가 되고, 이들의 콘텐츠 파워는 젊은 시청자 층을 움직이며 지상파까지 위협한다.



수십 년간 독점적인 지위를 유지하던 지상파 또한 인터넷 방송 시대의 위력을 실감하고는 제 보폭을 맞췄다. SBS 파워FM <씨네타운 S>나 러브FM <송은이, 김숙의 언니네 라디오>처럼 지상파 출신 인력들이 보다 더 자유로운 방송을 하기 위해 팟캐스트로 시작한 인터넷 오디오 방송이 도로 지상파 라디오로 역수출되는 사례가 생기는가 하면, <마이 리틀 텔레비전>처럼 인터넷 비디오 방송에서만 통용되던 코드를 활용한 방송이 지상파 전파를 타기도 한다.

인터넷 방송이 이렇게 폭발적으로 성장할 수 있었던 이유는 무엇이었을까? 앞서 언급된 “소재 제한 없음, 실시간 소통, 기민한 피드백” 등이 주 비결이겠지만 어찌 보면 그것 또한 결과론적인 이야기다. 앞서 언급한 강점들의 뒷받침이 될 진짜 근본적인 키워드는 “누구나 할 수 있다”는 점이다. 콘텐츠만 있으면 대단한 자본이나 기술 없이도 누구나 방송을 할 수 있다는 점이, 기존 지상파나 케이블에선 찾아볼 수 없었던 새로운 소재와 문법의 방송을 가능하게 했다. 참여하는 이들이 기하급수적으로 증가한 만큼 ‘노잼’인 방송들도 많아졌지만, 반대로 ‘꿀잼’인 방송들을 만나게 될 가능성도 더 높아진 것이다.



하지만 이것도 이제 옛날이야기가 될지 모른다. 지난 3일 국무회의를 통과한 신문법 시행령 개정안은, 정부가 언제든 마음만 먹으면 인터넷 기반의 새로운 시도들을 간단하게 검열하고 통제할 수 있음을 암시하고 있으니까 말이다. ‘취재 및 편집인력 3명 이상’을 인터넷신문 등록 요건으로 정해두었던 기존의 시행령을 ‘취재 및 편집인력 5인 이상 상시 고용’으로 강화하는 것을 골자로 한 이번 개정안은, 표면적으로는 인터넷 매체의 난립과 광고시장 교란을 막겠다는 목적을 앞세우고 있다. 그러나 조금만 더 자세히 들여다보면, 이 개정안이 결국 인터넷을 기반으로 한 독립언론들을 솎아내고 길들이는 쪽으로만 작용할 것이란 걸 알 수 있다. 신규등록만을 제한하겠다는 것이 아니라, 이미 수년간 고생하며 자리를 잡아가고 있는 기존 언론사들에게도 1년 간의 유예기간을 줄 테니 개정된 등록 요건을 충족해 오라 요구하겠다는 게 골자니 말이다.

5인 이하로 구성된 언론사들을 걸러내고 나면 광고시장 교란이 해소될까? 이번 개정안에 대해 환영의사를 밝힌 한국광고주협회가 지난 6월 한국리서치에 의뢰해 기업 홍보담당자들을 대상으로 진행한 ‘유사언론행위’ 언론사 설문조사에서, 부정적인 보도와 광고협찬을 맞바꾸자 제안한 ‘사이비 언론’으로 지목된 192개사 명단은 전부 5인 이상의 언론사였다. 조선, 중앙, 동아, 매일경제, 한국경제, 조선비즈, 헤럴드경제, 경향, TV조선, 채널A, MBN 등의 대형 언론사들이 리스트를 빼곡하게 채웠다. 현 정권의 실세로 임명된 이들이 실소유주로 있어 정부광고 집행에서 특혜를 받고 있다는 의혹을 사고 있는 보수매체 미디어펜이나 데일리안, 뉴데일리도 예외는 아니다.



검색어 장난질로 어뷰징을 일삼는 왜곡된 인터넷 언론 풍조 또한 5인 이하 언론사와는 별 상관이 없다. 어차피 포털 사이트에서 검색어 장사를 할 수 있는 언론은 이미 포털 뉴스 섹션에 입점해 있는 언론인 것이고, 그 중 대부분은 거대언론 혹은 그 계열사이거나 재벌기업의 자금이 투입된 언론들이다. 기자 이름도 떳떳하게 내걸지 못하고 대신 ‘온라인뉴스팀’이나 ‘이슈팀’ 같은 정체불명의 크레딧으로 민망함을 피하려 발버둥치는 대형 언론사들을 본 기억, 다 한 번씩은 있지 않나.

박근혜 대통령의 재가를 받아 신문법 시행령 개정안이 시행되면, 표면적으로 내건 이유는 충족되지 않은 채 현존하는 인터넷언론의 대부분이 사라지는 결과를 볼 수 있을지도 모른다. 한국인터넷기자협회는 개정안 시행 시 최대 85%의 인터넷언론이 사라질 것으로 전망했다. 누구든 마음만 먹으면 인터넷에서 제 목소리를 낼 수 있었던 인터넷 언론 전성시대가 사실상 저무는 것이다. 그렇게 85%의 언론사가 사라진 자리, 5인 이상을 상시 고용 중인 192개 언론사는 건재할 것이며, ‘기-승-전-유승옥’이라는 새로운 형태의 어뷰징을 선보인 미디어펜 또한 살아남을 것이다.



인터넷 방송 이야기를 하다 말고 왜 갑자기 인터넷 언론 이야기를 하느냐고? 이 다음 규제 대상은 팟캐스트를 비롯한 1인 미디어가 될 것이기 때문이다. 2012년 대선의 판을 뒤흔들었던 <나는 꼼수다> 또한 팟캐스트였고, 대선 직후부터 팟캐스트에 대한 검열이나 규제를 시도하려는 움직임은 지속적으로 포착되어 왔다. 이런 마당에 인터넷 비디오 방송이라고 안전하랴. 당장 각종 시위나 사회적 이슈의 현장을 취재하는 비디오 저널리스트 김정환 씨의 1인미디어 <미디어몽구>는 어쩌고? 당장 아프리카TV나 유튜브에 콘텐츠를 업로드 하는 것조차 규제의 대상이 된다고 생각해보라. 이제 막 개화하기 시작한 인터넷 방송의 전성기는 언제 피었냐는 듯 져버리고 말 것이다.

물론 모든 시장엔 최소한의 룰이 필요한 법이고, 양이 많다고 해서 질이 보장되는 것도 아닐 것이다. 그러나 이렇게 규제로 일관하며 시간을 뒤로 달리는 행위로는 결코 방송과 언론의 질을 보장할 수 없다. 아주 끔찍한 비전이겠지만, 어쩌면 우린 비제이란 단어를 상용하던 지금을 잊고 단파라디오 해적방송에 열광하던 20여년 전 <볼륨을 높여라>의 시간으로 돌아갈지도 모른다.

칼럼니스트 이승한 tintin@iamtintin.net

[사진=SBS, MBC, 아프리카TV, 나꼼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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