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8만원 세대의 저자 우석훈, 의 이준익을 만나다

젊은이들, 골방에서 광장으로 나와야
88만원 세대의 저자 우석훈, <평양성>의 이준익을 만나다



[오동진의 생생인터뷰] 천만 흥행감독 이준익의 <평양성>이 예상과 달리 다소 힘에 부치는 모습이다. 지난 달 27일에 개봉된 이 영화는 지난 2주간 150만 정도의 관객을 모았다. 당초 예상과 목표는 300만명 선. <평양성>의 흥행에 다소 적신호가 들어와 있는 것은 역설적으로 영화의 ‘속내가 깊기’ 때문이다. 영화 속에 의미를 강화하면 흥행에 어려움을 겪는다는 ‘이상한’ 공식을 다시 한번 확인하는 셈이다. <평양성>은 신라가 삼국을 통일하기 직전 당나라와 연합군을 결성, 평양성에서 연개소문의 아들 셋과 최후 결전을 벌인다는 내용이다. 그런데 그 과정에서 웃지 못할 촌극이 벌어진다는 얘기다. 생각해 보면 지금 현실 정치나 사회사건도 촌극의 연속일 수 있다. 어쨌든 이런 상황, 곧 <평양성>이 주춤거리는 상황에 대해 <88만원 세대>의 저자 우석훈 박사가 반발을 하고 나섰다. 특히 2,30대 젊은 층들이라면 <평양성>을 제대로 좀 봐야 하는 것 아니냐는 것이 우 박사의 충고다. 10일 오전 KT&G 상상마당에서 진행된 이준익 Vs 우석훈의 난장, 쾌도 대담을 정리한다.

우석훈(이하 우) : (이준익 감독이 제작을 맡았던 <달마야 놀자> 시리즈를 이 감독의 연출 작품으로 착각한 듯) 지금도 <달마야 놀자> DVD를 갖고 있다. 언제 봐도 재미있다. <즐거운 인생>을 보고는 낙원상가에 가서 기타를 샀다. 이번 영화 <평양성>도 재밌게 봤다.

이준익(이하 이) : 고맙다. 내 영화가 호오가 엇갈릴 때가 많지만 종종 이렇게 골수 팬을 만나 반갑고 고맙다. <즐거운 인생>때문에 낙원상가 매출이 올랐다는 얘기를 듣고 놀란 적이 있다. <간첩 리철진>같은 경우에는 심지어 북한에서 교육용으로 쓰인다는 얘기도 들었다.(웃음) 이번 작품의 전작에 해당하는 <황산벌>은 봤는지?

우 : 당연히 봤다. 그런데 솔직히 <황산벌>을 처음 봤을 때는 이 감독의 생각에 동의하기 어려웠다.

이 : 왜? 어떤 점이?

우 : 영화가 너무 민족주의적이라고 봤다.

이 : 김유신(정진영)의 마지막 대사때문인가? 당나라를 향해 ‘다 쓸어 버리겠다’고 말하는 대목 말이다.

우 : <황산벌>은 전반적으로 그런 색채가 강했다. 하지만 이번 <평양성>은 민족주의적이라기 보다는 자주적이라는 느낌이 들었다. 특히 고구려가 개발한 신무기를 둘러싸고 당나라 장수와 김유신 간에 벌이는 신경전이 그랬다. 신무기의 위력에 놀란 당나라 측은 평양성을 점령함과 동시에 그것을 확보하려 하지만 김유신은 부하들에게 곧바로 부숴버리라고 명령한다. 신무기가 당나라 쪽에 넘어가면 결국 삼국 전체를 장악하려는 그들의 야심을 실현시켜 주는 꼴이 된다는 것인데, 이게 참 상징하는 바가 크다고 봤다. 그런데 <평양성>을 <황산벌>의 속편이라고 얘기하는 것이 옳았나?

이 : 마케팅 측면에서 흥행이 잘됐던 영화에 기대려 했던 것은 어쩔 수 없는 과정이었다고 본다. 그런데…무슨 얘기를 하려는 것인지 안다. 그렇게 두 작품을 연결시키다 보니 <평양성>에 대한 오독이 생긴 것 같다. <황산벌>의 코미디가 그대로 이어져 올 것이라는 기대감도 컸을 것이고. 하지만 <평양성>은 <황산벌>보다는 현실상황에 대한 얘기를 더 많이 풀어 놓은 작품이다. 신무기 얘기가 나왔으니까 하는 얘긴데, 영화를 본 사람들 가운데 상당수는 그게 북한의 핵개발을 상징하는 것이냐라고 묻더라. 맞다, 그렇다. 그걸 염두에 두고 이야기를 만들었다.

우 : 그래서인지 이번 영화는 또 어떤 면에서는 너무 직설적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직설화법의 영화가 대중적인 성공을 거두기는 어렵지 않나?



상업영화의 틀을 깨고 싶었다

이 : 그래서 지금 좀 힘들다.(웃음) 100만, 200만 관객을 모으는 것 역시 쉬운 일이 아니지만 그보다는 좀더 잘 들기를 바랐다. 물론 나도 잘 안다. 이 영화가 상업적인 성공을 거두기 위해서는 어떤 방향과 방법에 더 신경썼어야 했는지를. 하지만 솔직히 오기가 생겼다. <님은 먼곳에>를 하고 <구르믈 벗어난 달처럼>를 만들면서 상업적인 타협보다는 힘들더라도 젊은 세대들의 문화 소비 패턴을 바꾸는 쪽으로 기여해야 한다는 생각을 했다. 그리고 또 한편으로는 흔히들 소비주체로 분류되는 20대들만이 소비를 하게 하는 패턴이 아니라 생산주체인 3,40대들이 소비에 적극 나서게 해야 한다고 생각했다. <평양성>이 개봉하기 전에 기자들에게 그렇게 얘기했다. ‘이번 영화가 흥행에 실패하면 상업영화 감독을 그만두겠다’고. 일부에서는 벌써부터 그 약속을 지킬 거냐고 묻는다. 하지만 그때 내가 했던 얘기의 본질은 상업영화의 코드를 바꾸는 게 이렇게 어려우면 나 스스로가 상업적인 길을 포기해야 하는 것이 아니냐, 우리 모두가 상업영화의 정석이라는 것을 좀 스스로 깨뜨려야 하는 것이 아니냐는 것이었다. 어쨌든 그 말의 여파가 만만치 않다는 것, 신경쓰이는 대목이다.(웃음)

우 : 근데 그게 그리 쉬운 일이 아니다. 학생들, 젊은이들, 흔히들 88만원 세대로불리는 요즘 젊은이들은 보다 개인적이고 직접적인 관계를 맺기를 원한다. 늘 소외돼 있으니까. 어디서든 소외의 대상이 될 수밖에 없으니까. 어쨌든 그들은 자신이 바로 주인공이 돼서 누군가에게 초대받았다는 느낌 같은 것을 갈망한다. 영화에 대한 취향도 거기서 결정되는 것 같다. 그런 영화 가운데 젊은 친구들이 꼽는 대표적인 작품이 일봄 오기가미 나오코 감독의 <카모메 식당>같은 작품인 것 같다.(<카모메 식당>은 <안경> <토일렛> 등과 함께 오기가미 나오코의 대표작으로 꼽히며 일명 ‘슬로우 푸드型’ 영화라 불릴 만큼 조용하고 私적인 이야기 구조를 갖고 있는 작품이다-편집자註.) 미안한 얘기지만 내가 가르치는 일부 여학생들 가운데서 <님은 먼곳에>를 보고는 마초(macho)적이라느니 反페미니즘적 영화라느니 불만이 많았다. 그래서 그런 얘기를 들을 때는 종종 시끄럽다며 입을 막아 버리곤 했지만(웃음) 한편으로 생각하면 감독의 생각과 요즘 젊은이들의 생각에 차이가 크다는 것을 보여주는 대목이 아닌가 싶다. 아마도 영화 <평양성>도 다소 큰 얘기, 거대담론에 근접해 있는 얘기 구조, 정치사회학적 지형도를 보여주려 했다는 점에서 그 ‘초대’의 느낌이 젊은이들에게는 덜했던 것 같다.



이 : 그게 20세기형의 광장문화와 21세기형의 골방문화의 차이다. 예전에는 모두들 광장에서 놀았다. 광장에서 공부하고 광장에서 토론하고, 또 광장에서 데모했다. 모두가 모두에게 연결돼 있었다. 그런데 지금은 그 같은 광장문화가 거세된 시대다. 대개가 광장보다는 자기만의 골방을 택한다. 그러다 보니 균형있는 사회적 시각이 결여될 가능성이 매우 높다. <평양성>은 광장문화 격 영화다. 20대들 가운 가운데 이 영화가 산만하다고 느끼는 친구들이 있다고 들었는데 그런 문화의 차이 때문이라고 생각한다.

우 : 인문학적 관심이나 수준에 있어 세대차이가 큰 것이 문제다.

이 : 좀전에 <님은 먼곳에>를 거론했지만 젊은 친구들 사이에 베트남전이 어떻게 시작되고 어떻게 끝났는지 모르는 사람이 상당수인 것 같더라. 아마도 나당연합군에 대해서도 깊이 잘 알지 못할 것이다. <황산벌> 때 설문조사를 해봤더니 세상에, 계백장군이 누구인지를 모르더라. 깜짝 놀랐었다. 그래서 어떤 사람들은 <황산벌>을 사투리 개그 영화라고 본다고 하더라.(웃음)

우 : 그런 관점에 보면 <왕의 남자>가 천만 관객을 모은 데는 어떤 비결과 까닭이 있을까 생각해 봤다. 한마디로 거기엔 보러가고 싶어하는 배우, 그것도 예쁜 배우가 나온다는 이유때문이 아니었을까 싶다. 그런 걸 생각하면 영화를 젊은 관객들에게 근접시키는 방법은 참 쉬운 듯 사실은 매우 어려운 일이 아닌가 싶다. 얘기하신 대로 상업적 타협과 작가적 고집이 늘 교차하겠다. 어쨌든 영화적으로도 벌어지는 세대 차이를 극복할 수 있는 방법은 없을까?

이 : 결국은 다양성이 아닐까 싶다. 영화를 좀 다양하게 보다 보면 이런 저런 차이를 좁힐 수 있지 않을까 싶다. 그러기 위해서는 나 자신부터 다양성을 갖춰야 한다고 생각한다. <라디오스타>나 <즐거운 인생>같은 조금은 소프트한 영화도 만들고 이번 <평양성>처럼 직설화법의 영화도 만들고 하는 이유는 거기에 있다. 우박사는 <평양성>에서 가장 인상깊었던 장면이 뭐였나?

민초들의 처절한 생존의 몸부림에 감동

우 : 아무래도 거시기(이문식)가 평양성에 포로로 잡혀 마치 대남방송을 하듯, 신라 백제 병사들에게 연설아닌 연설을 하는 장면이다. 근데 그게 참 찡했다. 전쟁은 결국 가진 자들이 벌이는 것이고 이긴 전쟁은 그들의 차지이고 패한 전쟁은 고스란히 자신 같은 아랫 것들 몫일 뿐이라는 것, 그래서 그 어떤 영웅적 행동보다는 생존하는 것 자체가 중요하다는 얘기를 하는 장면이었다. 예나 지금이나 민초들이 겪는 상황을 보면서 가슴이 아팠다. 아마도 그 장면부터 끝까지 몇번을 울었던 것 같다.

이 : 그 장면 말고도?

우 : 예를 들면 평양성을 고수하려는 둘째 아들 남건의 모습을 보면서도 그랬다. 그는 죽을 줄 뻔히 알면서도 싸움을 벌인다. 근데 그게 쉬운 선택이 아니지 않는가. 큰 형인 남생이 하는 얘기를 들을 때도 그랬다. 현실주의자인 남생은 나당연합군에 투항해 요동 이남 대동강까지의 땅을 약속받고 동생 남건을 치는데 한몫을 하지만 결국 그가 주장하는 것은 고구려가 살기 위해서는 주전보다는 화전을 택해, 일단 살아서 훗날을 기약하자는 것이다. 평양성에 갇혀 다 굶어죽게 생겼는데 전쟁은 무슨 전쟁이냐는 것인데, 그것도 참 처절한 얘기라고 생각했다.

이 : 나의 시선은 줄곧 일개 병졸인 ‘거시기’에게 가 있었다. ‘거시기’는 게다가 패망한 백제의 군사였다. 이번 싸움엔 완전히 당나라와 신라의 총알받이로 나온 것이다. 하지만 이야기가 ‘거시기’의 얘기로만 흘러갔으면 지루했을 것이다. 여기에 신라군은 신라군 대로 고구려군은 고구려군 대로 자기들 안의 당파와 노선 싸움이 만만찮게 존재한다. 영화는 그것도 따라가려 했다. 그리고 또 한편으로는 최종 승리의 주도권을 누가 쥘 것인가, 그럼으로써 통일 삼국을 누가 차지할 것인 가를 두고 끊임없이 정치외교적 기싸움을 벌이는 김유신과 당나라 장수와의 갈등 구조도 이 영화의 주요 포인트 가운데 하나다. 그러다 보니 <평양성>은 사이즈가 점점 커질 수밖에 없었다. 단순히 영화의 외적 규모가 아니라 영화가 담는 내용 자체가 커졌다. 그런 점에서 이번 영화는 <황산벌>과 비교할 수 없을만큼 큰 영화다. 전작인 <구르믈 버서난 달처럼>도 그랬지만 이번 영화를 통해서도 내가 꿈꾼 것은 수평사회의 건설이다.



우 : 패전한 백제군들이 사선 맨 앞줄로 끌려가는 것을 보면서 이상하게도 광주에 있는 패트리어트 기지나 제주도에 있는 미국해군기지가 연상됐다,고 하면 지나치다고 할 건가?(웃음)

이 : 그렇지 않다. 영화의 요소요소마다 현실의 우리사회 모습을 반영한 게 많다. 다양한 시각으로 읽어줬으면 좋겠다. 한편에서는 영화가 매우 직설적이고 화끈한데 결론으로 이어지는 부분에서는 보수적이고 퇴행적이다,라는 지적도 받는다. 전투의 결과와 상관없이 거기서 빠져 나온 ‘거시기’와 그의 여자 얘기로 끝내게 되니까. 어떤 사람들은 그거아먈로 지나친 가족주의로의 회귀가 아니냐고 불만스러워 한다. 근데 나는 그게 훨씬 리얼리티가 있다고 봤다. 우리 역사에서는 민중이 톱으로 올라간 적이 한번도 없다. 로빈 훗 같은, 완결된 형태의 민중의 영웅이 없었던 것이다. 우리에게도 동학농민혁명의 전봉준이 있었지만 일찌감치 외세에 의해 처단되는 비운을 맞았다. 어느 역사에서는 우리는 그랬다. 그렇기 때문에 영화속에서 ‘거시기’가 갑자기 영웅적 행동을 하게 되는 건 작위적일 거라고 봤다. 결론을 끌어가기가 예상외로 힘들었는데 조금 무정부주의적으로 결말을 맺자고 생각했다. 전쟁과 전투와 상관없이, 바깥 세상으로부터 멀리 떨어진 장소를 찾은 두 남녀가 새로운 삶을 살아가는 모습으로 가게 하자고 생각했다. 어떤 사람들은 이걸 두고 가족주의라고 생각하겠지만 난 오히려 이데올로기적 유토피아를 건설하려는 아나키스트적 발상이라고 생각한다.

우 : 영화가 갖고 있는 여러 함의, 정치적이고 계급적인 태도에 많은 부분 동감한다. 난 특히 이번 <평양성>이 좋게 느껴졌던 것은 영화의 스탭들이 마치 길드조합의 조합원처럼 지내는 것처럼 보여서이다. <평양성>은 영화 프로덕션이라면 이런 사람들이, 이런 마음으로, 또 이런 조건을 서로 양보하고 공유하며 만들어 나가는 것이라는 점을 보여주는 영화같다. 신라 왕으로 나왔던 황정민씨 같은 경우는 노 개런티로 출연했다고 들었다. 정진영 씨 같은 경우는 이 감독과 이번까지만 다섯번째 작품이고. 다른 스탭들도 오랫동안 같이 일했던 사람들이라고 들었다. 이런 프로던션 과정이 안정적이고 지속적으로 이어졌으면 좋겠다. 길드형 프로덕션들이 많으면 많을수록 젊은 친구들이 일할 수 있는 공간도 늘어날 것이다. 요즘 젊은 친구들 사이에 영화계에서 일하고 싶어하는 사람들이 굉장히 많다. 이런 친구들을 조금씩이나마 적극적으로 수용할 수 있는 상황이 되기를 진정으로 희망한다.

이 : 세계관이 맞는 사람과 대담을 하니 기분이 너무 좋다. 이번 작품이 사극만으로 네편째다. 내가 계속 사극을 만드는 이유는 시대적 담론을 담아내기에 아주 좋은 그릇이라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이번에 난, 수직계열화가 첨예하게 이루어지는 영화산업 환경속에서 수평사회를 꿈꾸는 내용의 영화를 만들었다. 어찌 보면 그것 자체에서 충돌이 빚어진 셈이다. 하지만 굴복하지 않겠다. 계속해서 이런 영화를 만들 것이다. 오늘 만나서 정말 반갑고 감사했다.

우 : 같은 생각이다. 너무 반갑고 감사했다.

(대담 사회, 정리 : 오동진 영화전문기자)


칼럼니스트 오동진 ohdjin@hanmail.net


[사진 = 전성환 기자 shjeon0877@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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