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정도면 많이 풀리신 거예요. 그렇게 예쁜 딸인데 누가 저 같이 데려가는 걸 가만히 있겠어요. 저 같으면 아마 안 봤을 거예요. 안 될 것 같아서 그랬어요. 그래도 ‘따님을 주십시오, 잘 살겠습니다’하고 허락 받고 데려가서 못 사는 것보다는 몰래 데려가서라도 잘 사는 게 낫지 않겠어요? 남자로서 약속과 책임을 지키는 거죠.”

- SBS <배기완 최영아 조형기의 좋은 아침>에서 유현상의 한 마디

[엔터미디어=정석희의 그 장면 그 대사] <배기완 최영아 조형기의 좋은 아침>에서 ‘유현상의 가족 상봉기’가 방송됐다. 아내와 아들들이 거주하는 시애틀로 떠나기 전, 한때는 사위를 원수로 여겼을 장모님을 모시고 식사하는 자리에서 유현상은 장모님의 심경이 충분히 이해가 가고 남는다고 했다. 집안의 반대를 딛고 살아온 우여곡절의 20년이라지만 결혼 당시의 분위기는 온 국민의 결사반대와 부딪혔다 해도 과언이 아닌 상황이었다.

지금이야 박태환 선수가 수영으로 세계무대를 쥐락펴락하는 세상이지만 고 조오련 선수가 1970년 방콕 아시안 게임에서 금메달을 땄을 때만해도 아시아 제패로도 열광해 마지않았던 우리나라가 아니었던가. 게다가 조오련 선수 이후 맥이 뚝 끊기다시피 했다가 1982년 최윤희 선수가 뉴델리 아시안 게임에서 금메달 3관왕에 올랐다는 사실은 수영의 불모지였던 이 나라 이 땅에 한 줄기 빛과 같은 존재로 부각되기 시작했음을 의미한다.

더구나 연예인 못지않은 단아한 외모로 인기가 높았던 '아시아의 인어' 최윤희가 아니었나. 그랬던 그녀가 13년 연상의 록커, 그룹 '백두산'의 리더 유현상과 비밀 결혼식을 올렸다는 소식은 화제의 수준을 넘어 그야말로 핵폭탄과 같은 충격이었다. 아마 납치며 보쌈이라는 단어를 떠올린 사람들도 많았으리라.

그처럼 온 국민을 한 순간 공적으로 돌려놨던 유현상 씨가 몇 년 뒤 ‘여자야’를 부르며 트로트 가수로 전향했을 때도 사람들은 역시 곱지 않은 눈길을 보낼 수밖에 없었다. 가족을 부양하기 위한 어쩔 수 없는 선택이었겠지만 돈 때문에 록을 버렸다는 팬들의 질책들을 그는 어떻게 견뎌냈을까? 그리고 백두산 팬들로부터 술병을 맞기까지 해가며 번 돈 모두를 IMF 때 ‘백두산 프로모션’이라는 기획으로 잃었을 때 또 어떤 마음이었을까? 결국 이런저런 사정으로 2001년 아내가 두 아들을 데리고 유학길에 오르는 바람에 10년 째 기러기 아빠 신세인 유현상 씨. 조금이라도 가족에게 돈을 더 보내고자 가게를 운영하며 직접 노래도 부르고 허드렛일도 거드는 모습에서, 일손을 도와줄 매니저를 두고 싶지만 그 돈을 아이들을 위해 더 쓰고 싶어 혼자 운전을 하고 다닌다는 유현상 씨에게서 남자로서의, 아버지로서의 강한 책임감이 느껴졌다.





가족이 한 자리에 모인 게 무려 3년만이라는 유현상 씨는 아이들을 돌보느라 자신의 관리에는 통 신경을 못 쓰는 아내 최윤희 씨를 위해 화장품 몇 가지와 건강식품을 준비하는 섬세함을 보였다. “그때는 정말 예뻤죠. 지금은 내가 고생을 시켜서 그런데, 여기에 친구가 있겠어요. 주위에 아는 사람이 있겠어요. 만날 청바지에 티셔츠만 입고 있으니 뭐, 누가 봐주는 사람도 없고. 그저 아이들 뒷바라지만 하고 남편 걱정만 하고 있으니까 미안하고. 앞으로 더 잘해줘야죠.” 아내가 남자가 할 일을 혼자 도맡아 다 하니까, 더구나 남자 아이들이니 얼마나 힘들겠느냐며 아내 걱정이 마르지 않는 유현상 씨를 보며, 능력이 있는 아내가 가족을 위해 희생하고 있는 걸 안쓰러워하는 모습을 보며 처음으로 최윤희 씨가 결혼을 잘 했다는 생각이 들었다.

아들들의 증언에 따르면 엄마가 아빠를 훨씬 좋아한다나? 어쩌면 대중이 그간 엄청난 오해를 했는지도 모르겠다. 안티 천만을 불러온 험난한 출발이었지만 한결같은 모습으로 아내를 사랑하고 책임감 있게 가족을 지키는 모습에서, 세상에 굴하지 않고 꿈을 향해 달려온 ‘백두산’의 리더 유현상 그에게서 남자의 기개가 느껴졌다. 또한 그의 트로트 곡 ’여자야‘도 남다른 감동으로 다가왔다. ‘여자야, 약해지면 안 돼. 한동안 못 본다고 잊혀지겠니. 하룻밤의 정도 아닌데’ 아내 최윤희 씨를 앞에 두고 눈물로 부르던 노래, ‘여자야’. 두고두고 못 잊지 싶다.


칼럼니스트 정석희 soyow@entermedia.co.kr


[사진=SB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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