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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타투’ 송일국, 그냥 삼둥이 아빠로 남는 게 나을 뻔 했다
기사입력 :[ 2015-12-16 11:55 ]


‘타투’, 이런 망작의 탄생은 과연 누구의 책임일까

[엔터미디어=황진미의 편파평론] ▲이 영화 반(反)▲. (본문 중 영화 내용의 누설이 있습니다. 영화를 관람하실 분들은 참고 바랍니다.) <타투>는 삼둥이 아빠 송일국이 사이코패스 역할을 맡아 화제가 된 영화이다. 또한 <사람을 찾습니다>라는 굉장히 낯설고 서늘한 공포를 안겼던 독립영화로 데뷔한 이서 감독의 차기작으로 기대를 모은 면도 있다. 하지만 영화를 본 심정은 참담하기 이를 데 없다. 영화는 스릴러라고 부르기 민망할 정도로 엉성한데다, 문신이라는 소재에 대한 접근도 지극히 피상적이며, 연쇄살인을 다루는 영화의 태도도 극히 비윤리적이다.

<타투>는 어린 시절 자신을 성폭행했던 남자에게 복수하기 위해, 의사 직업도 포기하고 타투이스트가 된 수나(윤주희)를 비추며 시작된다. 수나는 배에 특이한 흉터가 있는 남자를 찾기 위해 밤마다 클럽을 전전하고 문신을 의뢰하는 손님들의 몸을 살핀다. 어느 날 꿰미기 문신을 의뢰받아 간 곳에서 수나는 지순(송일국)이 자신이 찾는 범인임을 알게 된다. 수나는 자신이 개발한 특수성분의 안료로 지순의 등에 문신을 새겨나가며 복수의 기회를 엿본다. 그러나 수나의 행동을 의심하던 지순은 수나를 다시 위험에 빠뜨린다.

◆ 관음증에 빠진 추잡하고 엉성한 범죄물

<타투>는 복수극으로 출발하지만, 복수극이 되지 못하고 괴상한 범죄물로 빠져든다. 자신이 어떤 사람인지 알려주겠다며 수나에게 유유히 범행을 보여주는 지순의 모습은 섬뜩하다기보다 추잡하다. 자신이 겪었던 고통을 어린 소녀에게 다시 가하는 지순을 보는 수나의 대응은 무력하기 짝이 없다. 평생 복수를 꿈꾸며 살아 온 사람이라고는 믿기 힘들 정도로 질질 끌려 다닌다. 그는 왜 더 적극적으로 행동할 기회들을 놓치는 것일까? 물론 이것도 전혀 이해 못할 상황은 아니다. 수나의 트라우마가 되살아나면서 ‘심리적인 인질’ 상태에 놓인 것이라고 폭넓게 해석할 수도 있다. 하지만 지리멸렬한 수나의 모습에 감정이입이 되지 않는 것은 어쩔 수 없다.

더욱 이해할 수 없는 것은 이러한 범죄에 대한 영화의 태도이다. <타투>는 한 소녀가 지순에 의해 처참하게 성폭행을 당하고, 악랄한 고문을 당하며 서서히 죽어가는 것을 보여주고는 이 소녀의 죽음을 완전히 말소해버린다. 영화는 소녀의 죽음이 신고 되거나 수사되거나 보도되거나 애도되는 등의 아무런 후속 장면을 보여주지 않는다. 소녀의 죽음은 수나의 고통을 상기시키기 위한 수단으로 쓰였을 뿐이다. 영화는 수나를 통해 피해자의 고통을 이야기하는 듯하지만, 실제로는 피해자의 고통을 관음증 적으로 전시할 뿐이다.



다방 아가씨가 살해되는 장면이나, 구찌(서영)가 살해되는 장면도 마찬가지이다. 영화는 반복해서 강간과 섹스와 교살 플레이 등을 보여주며 관음의 수위를 높인다. 그렇다고 이러한 장면에 인간의 폭력성이나 섹스에 내재된 죽음충동 등에 대한 성찰이 숨어 있는 것도 아니다. 영화는 반복적으로 피해자의 고통을 전시하거나, 피 칠갑으로 끝나는 섹스장면을 중계할 뿐이다.

◆ 고통과 문신과 사이코패스에 대한 피상적 접근

여기에 무슨 의미가 있을까. 영화는 문신을 전면에 내세우지만, 문신에 대해서도 색다른 의미를 도출하지 못했다. 감독은 사이코패스가 자신과 타인의 ‘고통’을 즐기는 존재이기 때문에, 통증이 심한 문신을 시술받으며 기묘한 쾌감을 느낀다는 것을 참신한 견해로 생각하는 모양이다. 그러나 영화 <타투>는 ‘자신과 타인의 고통을 즐기는 사이코패스’에 대해 영화적으로 충분히 형상화해내지 못했으며, 몇 마디 피상적인 대사와 장면으로 처리할 뿐이다.

문신이 지닌 관능성이나 섹스의 죽음충동에 대해서도 영화는 겉핥기식이다. 마스무라 야스조의 <문신>이나 오시마 나기사의 <감각의 제국>에 비해, 단 1그램도 의미를 더하지 못한다. 심지어 범죄와 문신을 이미지 적으로 결합한 영화로 치자면, 2007년도 한국영화 <무방비도시>에 비해서도 한참 떨어진다. <무방비도시>에서 손예진은 신비한 여성 타투이스트로 분해 섬뜩한 매력을 보여주었다.



영화 <타투>는 자신이 소재로 삼은 문신, 사이코패스, 교살플레이에 대해 일말의 의미 있는 성찰을 내놓지 못한다. 꽤나 많은 분량을 차지하는 오형사(권현상)을 중심으로 한 형사물의 차원에서 보더라도 처참하기 이를 데 없다. 경찰조직을 무시한 채 공익요원과 더불어 단독수사를 펼치던 오형사가 개인적으로 수나의 사연과 관련 있음이 알려질 때, 조악하고 관습적인 서사에 실소를 금할 수 없다.

영화가 이지경이다 보니, 배우들의 연기도 안타깝기 그지없다. KBS 예능 <슈퍼맨이 돌아왔다>의 삼둥이 아빠로 고착된 이미지에 변화를 주기 위해 출연을 결심했다는 송일국의 입장을 이해 못하는 건 아니지만, 사이코패스라는 어려운 역할을 맡아 ‘역시 전혀 어울리지 않는다’는 인상을 주는데 그친 송일국을 보는 심정이 편치만은 않다. 이서 감독 역시 안타까운 건 마찬가지다. <사람을 찾습니다>라는 선연한 데뷔작을 찍은 이서 감독이 어쩌다 이런 망작을 찍게 된 걸까. 이런 망작의 탄생은 과연 누구의 책임일까.

칼럼니스트 황진미 chingmee@naver.com

[사진=영화 <타투>스틸컷]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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