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응팔’ 류준열, 이보다 더 최적화된 캐스팅 또 있을까

[엔터미디어=소설가 박진규의 옆구리tv] 이보다 더 배역에 잘 어울릴 수는 없다. tvN <응답하라 1988>에서 여주인공 덕선(혜리)의 미래 남편감 후보 중 한 명인 정환을 연기하는 류준열이 그렇다. 언뜻 보면 <가재미>를 쓴 1970년생 문태준 시인의 고교시절 인상이 이렇지 않았을까 싶다. 지금은 중년인 문태준 시인도 1988년에는 혈기 넘치는 고교생이었을 테니까. 눈두덩이 살에 가려진 작은 눈과 눈보다 더 먼저 눈에 띄는 크고 두툼한 입술, 그래서 살짝 투박하고 퉁명스러워 보이는 인상. 표정이 얼굴에 확 드러나지 않기에 이 남자의 좋고 싫은 감정은 마냥 ‘덤덤덤덤’으로 느껴진다. 하지만 두툼한 입술 덕에 한번 웃으면 그 웃음이 꽤 시원해서 보는 사람을 기분 좋게 만든다.

1980년대 고교생들 중에는 이런 남자들이 많았다. 그러니까 지금처럼 남자들이 감정표현이 자연스럽지가 않아서 더 무뚝뚝하고 더 감정 없어 보이는 얼굴들 말이다. 더구나 정환의 캐릭터 자체가 날라리와 모범생 사이에서 균형추 역할이 기본이라 말없이 묵직한 친구다. 하지만 이런 남자들도 분명 사랑에 대한 설렘과 떨림, 그리고 한숨이 공존하기 마련이다.

이 무뚝뚝한 남자도 평범한 사람이기에 사랑 때문에 흔들린다. 물론 상대는 쉽게 이 남자의 감정을 알아차리기 힘들다. 아무리 이 남자가 사랑 때문에 흔들리고 있어도 그의 눈을 자세히 보지 않으면 도무지 감정을 알아채기 힘들기 때문이다(실제로 드라마 상에서도 덕선은 정환의 감정을 쉽게 눈치 채지 못한다. 또한 덕선에 대한 사랑이 표정에서 뚝뚝 떨어지는 택이(박보검)와 그 사랑이 그냥 어색한 눈 깜빡거림과 답답한 얼굴로 표현되는 정환을 한번 비교해 보라). 그리고 그런 남자들의 외모나 분위기는 무언가 배우 류준열과 닮은 구석이 분명 있었던 것 같기도 하다.



그런데 <응답하라 1988>에서 배우 류준열의 캐스팅이 적절한 건 이런 분위기 때문만은 아니다. 드라마가 진행되면 될수록 그는 1980년대 무뚝뚝한 고교생의 감정이 어떤 건지 정말 제대로 보여줄 줄 안다는 생각이 든다. 웃는 게 익숙하지 않은 녀석이 멋쩍게 몰래 웃을 때의 표정 같은 것들 말이다. 혹은 친구였던 덕선에게 이성의 감정을 느끼게 된 후 혼란스러워서 하는 심리 또한 적절하다. 그리고 결정적으로 절친 택이가 덕선을 좋아한다는 사실을 알게 된 후 짓는 정환의 표정 변화는 이 드라마의 백미 중 하나였다. <응답하라 1988>을 시청하는 남자들 중 본인이 과거 무뚝뚝한 고교생이었다면 류준열의 연기에 공감하는 이들이 제법 되지 않을까?

“하지 마, 하지마 소개팅.”이란 대사 또한 마찬가지다.

덕선이 류준열을 떠보려는 심리로 소개팅을 나가겠다는 말에 정환은 이렇게 대답한다. 물론 이 대답에는 겉보기에 아무런 감정이 담겨 있지 않다. 멜로물의 주인공처럼 떨리는 목소리도, 액션물의 주인공처럼 허세도 없다. 그냥 무뚝뚝하지만 자연스러운 남자의 감정이 담겨 있다.



아마 이런 자연스러움 때문에 정환이란 캐릭터가 <응답하라 1994>의 쓰레기(정우)나 <응답하라 1997>의 윤제(서인국)와는 차별화가 되는 것 같다. 사실 <응답> 시리즈에는 친구나 동생처럼 여긴 여자에게 사랑의 감정을 느끼는 남자주인공들이 반드시 도돌이표처럼 등장한다. 하지만 과거의 작품들에서 두 남자들은 드라마 상의 멋진 남자 캐릭터에 가까웠다. 하지만 <응답하라 1988>의 정환은 비슷한 캐릭터지만 판타지가 아닌 리얼에 가깝다. 드라마가 아닌 추억 속의 남친 같은 유형인 셈이다.

그 남자는 그림처럼 잘생기거나, 사탕처럼 달콤한 말을 할 줄도 몰랐다. 하지만 풋풋하던 시절에 나를 좋아했던 혹은 나와 사귀었던 나만의 남자다. 아마 여성들이라면 <응답하라 1988>을 시청하면서 그런 남자의 기억 하나하나를 류준열의 정환을 통해 다시 재발견하는 재미가 있을 법도하다. 그리고 <응답하라 1988>의 큰 재미는 추억의 재발견이란 점에 있기에 정환 역의 류준열은 이보다 더 잘 어울리기 힘들다.

칼럼니스트 박진규 pillgoo9@gmail.com

[사진=tv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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