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질병을 꼭 물리쳐야만 하는가
기사입력 :[ 2015-12-24 15:50 ]


[서평] 아툴 가완디 <어떻게 죽을 것인가>

[엔터미디어=백우진의 잡학시대] 임종이 선고된 환자가 호스피스 케어를 받으면 그 시기가 앞당겨질 것이라고들 생각한다.

환자가 인간으로서 존엄성을 유지하면서 죽음을 맞을 수 있도록 돕는 호스피스 케어는 환자와 의료진이 질병과의 싸움에서 패배를 인정한 뒤 시작된다. 환자는 자신의 생명이 얼마 남지 않았음을 받아들이고 의료진은 호스피스 케어 환자를 유린해온 질병을 퇴치하려는 노력을 중단하는 것이다. 이 경우 병세가 치료를 받는 경우와 비교해 더욱 빠르게 나빠져 환자가 더 일찍 사망에 이르리라고 추정할 법하다. 하버드 의과대학 보건대학 교수인 아툴 가완디도 그렇게 짐작했다.

가완디는 “그러나 다수의 연구 결과를 보면 그렇지 않다는 것을 알 수 있다”며 말기 암이나 울혈심부전 환자 4,493명을 추적 조사한 결과를 전한다. 유방암, 전립선암, 대장암 환자들의 경우 호스피스 케어를 선택한 환자와 그렇지 않은 환자의 생존 기간에 아무런 차이가 없었다.

어떤 질병에서는 호스피스 케어가 오히려 생존 기간을 늘리는 듯했다. 췌장암 환자는 평균 3주를 더 살았고 폐암 환자는 6주, 울혈심부전 환자는 6개월을 더 살았다. 이 연구는 경우에 따라 ‘더 오래 살려는 노력을 멈춰야만 더 오래 산다”는 메시지를 들려준다.

◆ 질병을 꼭 물리쳐야 하는가

이 책은 의학의 사명이라고 여겨져 온 ‘질병과의 싸움’이 생명의 숨이 거의 다 한 환자에게는 의미가 없고 비인간적이며 위와 같이 도리어 생명을 단축함을 많은 사례와 연구를 통해 보여주고 호스피스 케어를 비롯한 대안을 제시한다. 저자는 의식이 없는 몸에 온갖 의료장비를 꽂아 넣고 부착해 환자가 그저 숨 쉬면서 생명을 유지하도록 하는 의료 행위에 무슨 의미가 있는지 묻는다. 그는 그런 마지막을 보내기보다는 온전히 자신을 유지한 상태로 가족의 ‘마지막 배웅’ 속에서 평화롭게 세상을 뜨는 선택을 보여준다.

생명의 불꽃을 지키는 데 가망이 없다는 판단에 의심의 여지가 없다면, 불꽃이 자연스럽게 꺼지도록 돕는 호스피스 케어나 완화의료 서비스가 ‘그을음’을 덜 내는 더 나은 방식이라고 비유할 수 있을까. 저자는 개별 환자의 인생과 호스피스 케어나 완화의료 서비스의 발달을 의료제도 속에서 교차하면서 서술한다.

◆ 그렇다면 존엄사는 어떤가

연명치료, 호스피스 케어, 완화의료 이외의 선택이 있다. 환자나 보호자, 의료진이 결정하는 안락사다. 이 결정을 지지하는 사람들은 ‘안락사’ 대신 ‘존엄사’라는 표현을 더 선호한다. 존엄사가 수십 년 전부터 시행된 네덜란드에서는 2012년 현재 사망자 35명 가운데 1명이 존엄사로 세상을 떠난다. 저자는 네덜란드 방식을 지지하지 않으며 존엄사에 불과 3페이지 남짓만 할애한다.

그는 “우리의 궁극적인 목표는 ‘좋은 죽음’이 아니라 마지막 순간까지 ‘좋은 삶’을 사는 것”이라고 주장한다. 이어 “네덜란드는 다른 나라에 비해 마지막까지 좋은 삶을 확보해줄 가능성이 있는 완화치료 프로그램을 개발하는 데 뒤처져 있다”며 “심각한 질병에 걸렸을 경우 다른 방법으로 고통을 줄이거나 삶을 개선시키는 게 불가능하다는 믿음이 강화됐을 수도 있다”고 말한다.

저자와 달리 나는 존엄사라는 제4의 선택은 어디까지나 개인의 결정으로 존중되어야 한다고 나는 생각한다. 개인의 사전적인 결정을 의료진이 실행하기에 앞서 절차와 요건을 충족해야 함은 물론이다.

◆ 요양병원보다 나은 대안들

저자는 이 책의 상당 부분에서 호스피스 전 단계 노령 환자를 어떻게 보살펴야 하느냐를 다뤘다. 이 대목에서도 그는 오랫동안 받아들여진 현대 의학과 사회의 통념을 깨뜨린다. 노인 환자의 투병을 돕기 위해 요양병원에 입원시키고 관리하는 게 최선의 선택이 아니라며 반례를 설득력 있게 제시한다.

요양병원은 환자를 안전한 환경 속에서 통제하고 치료함으로써 질병이 악화되지 않도록 함을 목적으로 한다. 그러나 같은 시간에 일어나고 취침하며 정해진 시간에 주어진 식단에 따라 차려진 음식을 먹도록 하는 통제는 개인의 자유를 침해하고, 자신의 생활에 대한 주도권을 빼앗긴 노인들은 생기가 떨어지고 삶에 대한 의욕도 잃게 된다.

저자는 미국 곳곳에서 새로 시도된 요양병원의 대안을 전해준다. 병원 같은 느낌을 최소로 줄인 공간에서 각자 독립된 자신의 방을 갖고 지내면서 자신의 필요에 따라 의료서비스를 받는 ‘어시스티드 리빙’이 그 중 하나다. 저소득층 노인을 위한 아파트에서 입주자들이 자신이 살아온 집에서 가사도우미의 보살핌을 받고 의료진의 왕진을 받도록 한 사례도 있다. 위생을 지키는 대신 동물을 들여놓고 식물을 재배하도록 해 환자들이 동식물을 보살피고 재배하면서 존재 의의를 느끼고 활기를 되찾도록 한 시설도 소개된다.

요양병원의 대안은 의료비도 적게 든다. 환자와 가족의 선택이라는 측면 외에 의료 재정 측면에서도 이 책에서 제시한 대안을 검토할 이유가 있다는 얘기다.

이 책은 개인과 사회에게 몸 곳곳이 고장난 노후 시기와 불치병에 걸렸거나 임종을 앞두고 있을 때 취할 여러 가지 실질적인 선택을 제시한다. 우리 개개인과 사회가 참고하고 따라야 할 길이기도 하다.

칼럼니스트 백우진 <한화투자증권 편집위원> smitten@naver.com

[사진=부키]

[책 정보]
​아툴 가완디, <어떻게 죽을 것인가>, 400쪽, 부키 펴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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