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날의 분위기’ 이걸 어떻게 발칙한 로맨틱 코미디라고 할 수 있나

[엔터미디어=듀나의 영화낙서판] (본문 중 영화 내용의 누설이 있습니다. 영화를 관람하실 분들은 참고 바랍니다.) KTX를 탔는데, 옆자리에 앉은 처음 보는 남자가 “저… 오늘 웬만하면 그쪽이랑 자려고요.”라고 말을 건다면 여러분은 어떤 생각이 들까? 이런 상황에서 어떤 이야기가 만들어질 수 있을까?

이게 <그날의 분위기>란 영화의 도입부이다. 이 영화의 마케팅팀은 진짜로 이런 말을 하는 남자를 맹공남, 그런 말에 넘어가지 않으려는 여자를 철벽녀라고 분류하며 일반화시키려 시도한다. 아마 이들은 이 이야기를 ‘요새 젊은이들을 그린’ ‘발칙한(아직도 이 표현을 쓰는 사람이 있나?)’ 로맨틱 코미디로 팔려는 모양이다.

하여간 이 영화를 파는 사람들에게 남자주인공의 행동은 ‘발칙하고’, ‘도발적’이다. 그 이유는 단 하나인데, 그는 섹스(!)에 대해 남들이 잘 안 하는 이야기를 거리낌 없이 하기 때문이다. 그렇기 때문에 그는 심지어 ‘멋있는’ 캐릭터가 된다. 와.

정상적으로 생각해보자. 이런 상황에서 정상적인 사람이 취해야 할 행동은 무엇인가. 그 남자의 말을 받아주나? 심지어 그는 미리 빨대를 꽂아놓은 바나나맛 우유까지 내밀고 있다. 그걸 받아 마시지 않으면 철벽녀가 되는 건가? 여기서 가장 상식적인 태도는 될 수 있는 한 그에게서 멀리 떨어지고 그런 일이 반복된다면 열차 직원을 불러 도움을 청하며 어떤 경우에도 그 미리 빨대를 꽂아 둔 우유에는 손도 대지 않는 것이다. 이것은 섹스나 로맨스에 방어적인 ‘철벽녀’의 행동이 아니라 이 험한 세상에서 자발적으로 살아남길 원하는 정상적인 사람의 행동이다.

<그날의 분위기>의 각본은 이 영화를 만든 사람들의 섹스에 대한 태도가 얼마니 촌스러운지를 보여준다. 두 성인이 낯선 곳에서 만나 원나잇 스탠드를 하는 건 충분히 있을 수 있는 일이고 다른 사람이 참견할 일도 아니다. 둘 중 하나가 배우자나 오래 사귄 애인이 있다면 문제가 되겠지만 그 역시 그들의 문제이다. 하지만 여기에도 최소한의 순서라는 것이 있다.



특히 남자의 경우 상대방에게 자신이 강간범이나 연쇄살인범, 기타 수상쩍은 변태가 아니라는 확신을 주어야 한다. 이 기초적인 조건을 무시한다는 것은 이들에게 섹스나 원나잇 스탠드라는 조건이 철저하게 관념적이라는 증거밖에 안 된다. 이것은 도발적인 것이 아니라 유치한 것이다. 하긴 도발적이 되려고 노력하는 것 대부분이 유치하다.

모든 이야기가 현실세계의 논리를 따를 필요는 없다. 누군가는 우리가 현실에서 누리지 못하는 판타지를 제공해야 한다. 그것이 정치적으로 심하게 불공정한 것도 있을 수 있는 일이다. 하지만 거기에도 한계와 조건이 있다. 이런 종류의 판타지를 전문적으로 제공하는 장인들은 늘 그 판타지의 한계와 의미를 의식하고 있다. 하지만 <그날의 분위기>를 만든 사람들은 그들의 판타지가 가진 문제점을 인식하지 못한다. 그들에게 그것은 그냥 ‘발칙한’ 로맨틱 코미디이기 때문에.

이 발칙함의 촌스러움이 극에 달하는 부분은 마침내 여자와 원나잇 스탠드를 하게 된 남자가 갑자기 여자를 ‘지켜주고 싶은’ 마음이 들어 섹스를 포기하는 장면이다. 자기 딴엔 양심이 생긴 모양이고, 작가들은 이게 캐릭터에 깊이를 더해주는 장치라고 생각하는 모양인데, 웃기지도 않는 소리이다. 지금까지 그가 섹스와 자신과 섹스한 여자들을 어떻게 생각했는지 보여주는 한심한 증거일 뿐이다. 이런 캐릭터로도 얼마든지 영화를 만들 수 있다. 하지만 그게 로맨틱 코미디라고?

칼럼니스트 듀나 djuna01@empas.com

[사진=영화 <그날의 분위기>스틸컷]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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