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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가 ‘시그널’에 진심으로 몰입할 수밖에 없는 이유
기사입력 :[ 2016-02-06 08:33 ]


‘시그널’이 그리는 억울한 희생자들에 대한 진혼곡

[엔터미디어=정덕현의 네모난 세상] 대교 위를 달리던 차량이 갑자기 밑으로 푹 꺼진다. 뒤따라 달리던 차들이 급브레이크를 밟고 붕괴된 다리 밑으로는 떨어진 차량이 보인다. tvN 금토드라마 <시그널>에 담긴 짧은 사고 장면. 아마도 외국인들이 봤다면 왜 굳이 저런 장면을 넣었을까 의구심이 생겼을 지도 모른다. 하지만 우리에게 그 장면은 그리 낯설지 않다. 그 붕괴 장면을 보고 백이면 백 성수대교 붕괴사건을 떠올렸을 테니 말이다.

이 대교 붕괴 장면을 배경으로 다뤄지는 ‘대도사건’도 그렇다. 그것은 흔한 도둑처럼 보일 지도 모르나, 우리에게는 낯설지가 않다. 1982년 군부독재시절 우리 사회를 떠들썩하게 했던 ‘대도사건’을 떠올리게 하기 때문이다. 고위 정부 관리들과 정치인들 같은 부잣집만 털고 유유히 사라지는 이 도둑에게 당시 대중들은 카타르시스를 느끼며 ‘대도’라는 별칭을 붙여주기도 했다. 대도 조세형은 결국 검거되었지만 당시 군부독재에 대한 대중들의 혐오를 읽어낼 수 있는 사건이었다.

이 드라마가 3,4회에 집중적으로 다뤘던 ‘경기남부연쇄살인사건’은 화성을 떠올리게 했다. 영화 <살인의 추억>의 모티브가 되기도 했던 이 사건은 여전히 미제로 남아 당대를 살았던 이들에게는 하나의 트라우마가 되었다. 그러고 보면 1,2회에 다뤄졌던 유괴납치살인사건도 우리 사회에서 꽤 자주 벌어졌던 사건들을 떠올리게 한다. 1991년에 벌어졌던 이형호군 사건은 대표적이다.

<시그널>은 이처럼 우리나라 사람이라면 척 봐도 그것이 어디서 모티브를 가져왔을 거라는 걸 알 수 있을만한 사건들을 다루고 있다. 그것은 취재를 바탕으로 한 이야기이기 때문에 당연한 일일 수 있다. 결국 <시그널>은 현실에서 미제에 남았던 사건들을 드라마로 가져와 풀어내는 작업을 선보이고 있다. 현실이 못한 것을 드라마가 판타지로나마 풀어내려 하는 것.



즉 <시그널>이 우리 사회에서 벌어졌던 큰 사건들을 가져오는 건 그것이 크건 작건 우리들에게 남긴 트라우마 때문이다. 드라마는 그 트라우마를 건드리면서 무전기라는 판타지적 설정을 통해 과거와 현재를 연결한다. 그리고 당대에는 해결하지 못했던 미제사건을 해결하는 것으로 이 트라우마의 극복을 시도한다. 물론 드라마 한 편이 당대의 그 아픔과 고통을 해결해줄 수는 없을 것이다. 하지만 적어도 희생자들에 대한 진혼곡은 충분히 될 것으로 보인다.

이 현실적인 사건의 모티브들은 드라마의 구성적인 측면으로 봐도 꽤 효과적이다. 사실 형사물 같은 장르가 연속극에서 성공하기 힘든 이유는 한 사건만으로 드라마 전체를 채우기가 어렵고 그렇다고 여러 사건들을 다루면 이야기가 편편히 나눠지기 때문이다. 한 사건에 몰두하다가 그게 해결되고 다른 사건으로 넘어가는 그 과정에서 몰입은 깨질 수 있다. 긴장이 흩어지기 때문이다.



하지만 <시그널>은 현실적인 사건들을 구성하면서 그 사건을 이재한(조진웅) 같은 주인공과 연루시킴으로써 몰입도를 높여 놓는다. 사실 이재한 주변에 이토록 큰 사건들이 계속 터지고 있다는 것은 개연성의 비약일 수 있다. 하지만 워낙 현실적인 트라우마가 큰 사건들이기 때문에 시청자들은 이 비약을 기꺼이 허용한다. 드라마를 통해서나마 시청자들도 트라우마를 극복하고픈 욕망이 생기기 때문이다.

그러고 보면 <시그널> 같은 작품이 나오고, 거기에 그토록 몰입하고 있는 우리의 현실에서 씁쓸함이 느껴지는 것도 사실이다. 얼마나 사건사고가 많이 터지고 그럼에도 그 사건들이 해결되지 않고 미제로 남거나 엉뚱한 사람이 억울하게 감방에 가는 비극들이 넘쳐나면 드라마를 보면서까지 이토록 간절한 마음이 생겨나는 걸까.

정덕현 칼럼니스트 thekian1@entermedia.co.kr

[사진=tv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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