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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자에 새겨진 사람의 무늬, 인문(人文)
기사입력 :[ 2016-02-12 16:54 ]


구로디지털단지의 ‘구로’에는 무슨 이야기가 담겨 있을까

[엔터미디어=백우진의 잡학시대] “소셜미디어에는 상상하지 못했던 정보와 지식, 식견의 세계가 있었다. 인간도처유상수(人間到處有上手)라는, ‘곳곳에 뛰어난 사람이 있다’는 말을 종종 떠올리게 됐다. 그리고 그렇게 각 영역에서 경지에 이르렀거나 영역을 넘나들며 아우르는 분들에게 감탄하고 배우게 됐다.”

전에 쓴 글의 일부다. 이 글을 읽은 한 사내 독자가 문구에 의문을 제기했다. ‘인간도처유상수’(人間到處有上手)가 아니라 ‘인생도처유상수’(人生到處有上手)가 맞지 않느냐는 말이었다. 나는 ‘인간’을 고집했고 글은 위와 같이 원문대로 실렸다.

오늘 자료를 검색해보니 ‘인생도처유상수’가 그를 포함해 사람들에게 더 친숙한 표현인가보다. 그 출발은 유홍준 씨가 제공한 듯하다. 그는 <나의 문화유산답사기6>의 부제를 그렇게 붙였다. ‘인생도처유상수’란 ‘우리 삶의 도처에서 숨어있는 고수들을 만나게 된다’는 뜻이란다.

말이야 뜻이 통하면 그만이지만, ‘인생 도처’라는 표현이 좀 어색하다. 인생은 장소보다는 시간의 개념이 어울린다.

그래서 위 문장에 ‘인생’보다 ‘인간’이 어울린다고 생각했다. <유광종의 지하철 한자 여행>을 읽으면서 내 생각을 확인하게 됐다. 저자는 중국 고대 문자학을 연구한 중국 전문가로 중국 권역에서 12년 동안 생활했고 중앙일보에 ‘한자로 보는 세상’을 1년 동안 쓴 바 있다.

저자는 “인간이라는 단어가 이제는 ‘사람’을 가리키고 있지만 원래의 쓰임은 다르다”며 ‘사람이 머무는 곳, 사람이 사는 세상의 뜻이라고 봐야 한다”고 설명한다. 이 단어는 한자 세계에서 초기부터 ‘사람’이 아니라 ‘사람들이 모여 사는 곳’을 뜻했다. 그는 “불교에서도 중생의 살아가는 길을 여섯 갈래의 육도(六道)로 나눴을 때 ‘사람 사는 곳’을 인간(人間), 인계(人界) 등으로 표현했다”고 예를 든다.

‘인생도처유상수’라는 문구의 ‘원본’인 ‘인간도처유청산’(人間到處有靑山)의 ‘인간’이 그런 경우다. 이 말은 ‘세상 곳곳에 뼈가 묻힐 곳이 있다’는 뜻이다.

천년 넘게 애송되는 이백의 시 ‘산중문답’(山中問答)에도 이 용례가 나온다.

무슨 뜻으로 청산에 사느냐 묻는데, 問如何事棲碧山
웃고 대답 없으니 마음이 한가롭다. 笑而不答心自閑
복사꽃 흐르는 물 아득히 나아가니, 桃花流水杳然去
여기는 딴 세상, 인간세계 아니로다. 別有天地非人間

이 책은 사람들이 한자에 새기고 한자로 풀어낸 인문(人文)을 들려준다. 이 책을 읽으면 역 이름에서 출발해 중국과 우리나라의 역사와 인물, 이야기, 생각과 시문(詩文)으로의 짧은 여행을 즐길 수 있다.

‘구로디지털단지’의 ‘구로’(九老)에는 무슨 이야기가 담겨 있을까. 저자는 “우리 백과사전 등에는 등장하지 않지만, 이 ‘구로’라는 말은 과거 동양사회에서는 그리 낯설지 않았다”고 말한다. 당나라 백거이가 말년에 자신을 포함해 아홉 명이 어울렸는데 그들이 동호회에 붙인 이름이 ‘구로’라고 설명한다. 백거이는 당시 번성한 도시 낙양(洛陽)의 동쪽 향산(香山)에 거주했고 구로회는 이곳에서 모였다. 그래서 이 모임은 ‘향산구로회’라고 불렸다. (구로디지털단지 자리에는 어느 구로가 있었는지는 전해지지 않는다.)

이 책에는 더 보완이 필요해 보이는 부분도 있다. ‘영등포’의 뜻이다. 이 책은 ‘영등’(永登)은 ‘영원한 풍년’, ‘내내 풍년이 든다’는 뜻이라며 “그런 풍년을 기원하는 옛 농촌 사회의 소박한 염원이 담긴 단어가 바로 永登’이라고 풀이한다.

이 설명을 듣고 생각난 단어가 ‘영등제’다. 풍어를 기원하는 어촌 풍습이라는 기억이 떠올랐다. 영등제를 <한국세시풍속사전>은 “음력 이월 초하룻날 영등신을 대상으로 하는 제사”라고 설명한다. 이어 “영등신은 비바람을 일으키는 신이므로 영등제를 풍신제(風神祭)라고도 하며 해안을 중심으로 한 여러 지방에서는 영등제를 마을제사로 모시거나 축제로 행하는 경우가 많다”고 덧붙인다. 이 영등은 한자로 燃燈으로 적는다. ‘연등’이 ‘영등’으로 발음되다가 永登으로도 표기된 것일까.

저자는 머리말에서 “언어의 깊은 뜻을 알면 그로써 더 먼 곳을 향해 생각을 더 펼칠 수 있다”며 “한자가 담고 있는 자양분을 길어 올려 우리의 생활을 윤택하게 할 수 있을까 하는 기대를 품고 이 책을 썼다”고 들려준다.

칼럼니스트 백우진 <한화투자증권 편집위원> smitten@naver.com

[사진=책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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