월화드라마의 열탕남 유아인 vs 냉탕남 박해진

[엔터미디어=소설가 박진규의 옆구리tv] 시크한 분위기의 냉미남과 부드러운 분위기의 온미남의 온도 차는 생각보다 크진 않다. 그들 모두 실은 여성팬을 위협하지 않는 사랑스러운 온도의 미남이긴 마찬가지다. 한국 드라마에 등장하는 남자주인공들의 분위기 또한 이 온도에서 크게 벗어나지 않는다. 그들이 외계인이든 프로파일러든 재벌가의 아들이거나 상관없이 다들 그렇다.

하지만 최근 SBS 월화드라마 <육룡이 나르샤>의 이방원을 연기하는 유아인과 tvN 월화드라마 <치즈인더트랩>에서 대학 선배 유정으로 등장하는 박해진은 좀 다르다. 이 두 월화드라마의 남자주인공들은 꽤 위협적인 온도를 지녔다. 그리고 두 배우는 그 온도를 적절하게 희석하는 대신 각자 연기 스타일에 맞게 끝까지 밀어붙인다. 한쪽은 너무 뜨거워 이글거리는 열탕남으로, 나머지 한 사람은 바라보는 시선만으로 얼어붙는 냉탕남으로.

<성균관스캔들>의 걸오를 시작으로 밑바닥 소년들이 지닌 날것의 매력을 연기하던 배우 유아인은 <완득이>를 지나 <밀회>의 피아니스트 이선재에서 그 정점을 찍는다. 하지만 그가 보여준 매력들을 지루하게 총합한 영화 <깡철이>의 실패 때문이었을까? 이 영리한 배우는 폭발적 재능을 지닌 밑바닥 소년들을 떠나 어느새 스크린에서 다른 종류의 인간형으로 변신한다.

2015년 유아인은 <베테랑>, <사도> 두 편의 영화를 통해 기갈 들린 인간의 내면을 강렬하게 보여주었다. 안타깝게도 이 젊은 사내들의 목마름은 결코 채워질 수 없는 것들이다. 금수저인 조태오는 모든 걸 다 가졌지만 끊임없이 무언가를 손에 쥐려 버둥거린다. 그 공허한 미소와 몸짓은 바로 자본주의 시대의 전형적인 목마름이기도하다. 한편 날 때부터 왕의 아들로 태어난 사도세자 또한 목말라 하는 젊은이다. 이 세자의 갈증을 채워줄 수 있는 것은 대단한 것이 아닌 아비의 사랑이다. 하지만 왕은 평범한 아버지가 아니기에 그 사랑을 채워주지 못하고 결국 아비와 아들의 관계는 파국으로 치닫는다.



두 편의 영화에서 자신의 새로운 캐릭터를 만들어낸 유아인은 <육룡이 나르샤>의 이방원을 통해 스크린에서 보여준 광기를 마음껏 풀어헤치는 인상이다. 특히 이방원은 가질 수 없는 것에 기갈 들린 자가 아닌 손에 쥘 수 있는 것을 놓치지 않으려 다른 것을 불사르는 인물이다. 다만 이방원이 지닌 권력에 대한 뜨거운 욕망의 불꽃을 <육룡이 나르샤>의 유아인은 기존의 사극과는 좀 결이 다르게 표현한다.

사실 사극의 단골 등장인물인 이방원은 욕심 많고 냉정하지만 배포가 큰 대장부로 묘사되는 일이 흔했다. 하지만 <육룡이 나르샤>의 이방원은 냉정하고 욕심 많기보다 뜨거운 마음의 불꽃을 지닌 소년이다. 그 불꽃은 때론 그를 여리고 불안에 떠는 남자로 뒤흔든다. 하지만 어느 순간 내면의 불꽃이 두려움을 땔감으로 자신을 불사르기 시작하면 그는 과감하게 모든 것을 불태운다.

이런 이방원의 내면을 적절하게 보여주며 기존의 사극과 대치되는 장면이 바로 선죽교 장면이다. 정몽주(김의성)에게 하여가를 부르며 눈물로 스승을 회유하던 그는 결국 마음을 다 잡고 그를 척살한다. 정몽주의 피가 이방원의 얼굴에 흩뿌려질 때 짓는 유아인의 표정은 만족이 아닌 두려움과 허탈함이다. 하지만 그는 그 두려움 속에 침잠하는 대신 자신을 불사르기 시작한다. 그리고 조선의 건국 이후 이방원이 보여주는 뜨거운 열기는 아마 왕자의 난에 이르노라면 <육룡이 나르샤>를 지글지글하게 만들지 않을까?



반면 tvN 월화드라마 <치인트>의 남자주인공 유정은 열탕남인 이방원과 대척점에 있는 인물이다. 그는 인간의 분노와 슬픔, 두려움 같은 감정들을 사소한 결핍처럼 바라보는 지극히 냉정한 눈을 지닌 미남이다. 안데르센의 동화 <눈의 여왕>에서 악마의 거울 조각이 눈과 심장에 박혀버린 감정 없는 소년 카이가 고스란히 어른이 된 것 같은 모습이랄까? 하지만 배우 박해진이 데뷔 시절부터 이렇게 냉혈한의 이미지로 어필했던 건 아니었다.

KBS 주말드라마 <소문난 칠공주>에서 전형적인 연하남 캐릭터를 연기했던 박해진은 이후의 드라마에서도 꾸준히 그런 류의 온탕남 이미지를 유지했다. KBS 주말드라마의 <내 딸 서영이>나 SBS <별에서 온 그대>까지. 박해진은 남자주인공에게 위협적이지 않고, 여자주인공과 갈등을 빚지 않는 부드러운 미남이었다.

하지만 케이블채널 OCN의 <나쁜 녀석들>에서 천재 싸이코패스 연쇄살인범 이정문을 연기하면서 그는 극한의 변화를 보여준다. 무엇보다 특별한 연기 없이 미소 짓지 않고 무표정하게만 있어도 이 남자에게는 무언가 섬뜩한 기운이 느껴진다. 그건 자정 무렵 불 꺼진 쇼윈도 안에 서 있는 머리 작고 팔다리 긴 마네킹이 불러일으키는 섬뜩함과 좀 비슷할 것 같다.



tvN <치인트>에서 유정은 박해진이 보여주는 극과 극의 매력이 공존하는 인물이다. 지상파 박해진과 케이블 박해진의 오묘한 조화가 유정인 셈이다. 그는 겉보기엔 사랑스러워 보이는 이 캠퍼스물에 한파를 불러오는 인물이다. 하지만 남자주인공 유정의 추운 냉기 때문에 <치인트>에는 묘한 긴장감이 감돈다. 과연 여주인공 홍설(김고은)과의 연애 감정 때문에 따스하고 부드럽게 변모하는 이 남자의 변화는 진심일지, 아니면 사이코패스처럼 냉정한 유정이 보여주는 또 하나의 가면일지 궁금해지기 때문이다.

그리고 여주인공 홍설은 행복을 느끼는 동시에 언제 냉탕남의 빙판에 미끄러질지 모르는 위태로운 길을 걷는다. 상황이 이러하니 부드러운 남자와 냉정한 남자의 얼굴을 자연스럽게 오가는 박해진이야말로 <치인트>의 달콤한 치즈 한 조각 놓인 무시무시한 덫인 셈이다.

그림 같은 배우는 드라마를 실사판 순정만화로 만들고, 빈틈없고 반듯한 배우는 드라마를 안정적인 극으로 이끈다. 하지만 <육룡이 나르샤>의 유아인이나 <치인트>의 박해진처럼 위험한 배우들은 드라마를 아슬아슬한 판으로 끌어간다. 그리고 이야기건 사람이건 아슬아슬한 존재들은 위험한 만큼 언제나 유혹적이다.

칼럼니스트 박진규 pillgoo9@gmail.com

[사진=SBS, tv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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