드라마 PD와 작가의 독선에 시청자들만 괴롭다

[엔터미디어=정석희의 TV 돋보기] tvN 드라마 <치즈인더트랩>이 용두사미 전개로 막을 내리며 많은 지탄을 받았다. 열혈 팬이 마음이 돌아서면 가장 극렬 안티가 된다더니 한 동안 만나기만 하면 이 드라마 얘기로 시간 가는 줄 모르던 이들이 꼴도 뵈기 싫다며 손사래들을 친다. 사람이 몰린다 싶으니 맛이 변해버려 손님이 뚝 끊겨버린 맛집과 다를 바 없다.

드라마를 보다 실망을 하는 경우야 흔한 일이지만 이건 정도가 심하다. 초반에 유래가 없는 수작이라며 극찬이라도 했다면 아마 지금쯤 민망함에 고개를 들지 못했으리라. 도대체 그토록 사랑스러웠던 드라마가 막장 드라마 급으로 변질된 이유는 뭘까? 내가 아닌 남을 제대로 이해한다는 게 쉬운 일은 아니겠으나 어떻게 주요 인물들의 행보가 이렇게까지 공감이 가지 않을 수가 있는지. 일일이 예를 들어 가며 설명하기도 막막할 지경이다.

듣자니 현장에서 이윤정 PD 등 제작진들과 출연자들이 원작과 대본에 상관없이 융통성 있게 연구와 토론을 해가며 드라마를 만들었다고 한다. 단순히 그 말로만 짐작하면 시대의 요구에 부응하는 참신하고 기대가 가는 작법이지 싶다. 그러나 이 드라마는 졸업 작품이나 독립영화가 아니지 않나. 대중의 공감대와 무관한 실험성이 지향점이었다면 감독판을 따로 만드는 편이 옳지 않았을까?

이쪽이 무분별하게 대본을 뜯어 고치는 통에 문제가 발생했다면 SBS 주말극 <그래, 그런 거야>는 정 반대 상황이다. 연기자의 입에 맞게 토씨 하나를 바꾸는 일조차 용납이 아니 된다는 김수현 작가의 작품이기 때문이다. 지나치게 대본에 충실한 탓인지 애 어른 할 것 없이 같은 말투를 쓰는가하면 남녀 구별 없이 시쳇말로 ‘아제 개그’를 하니 어느 지점에서 웃어야 할지 이 또한 막막하지 뭔가. 한 집안 식구가 같은 용어를 쓰는 것이야 그럴 수 있다 치자. 하지만 사돈 마님부터 음식점 직원까지, 등장인물 모두가 한결 같은 어조에다 달변이니 현실성이 없지 않나.



김수현 작가 드라마에 자주 등장하는 표현이 있다. “싫증나.” 시청자도 이제는 싫증이 난다. SBS <인생은 아름다워>, JTBC <무자식 상팔자>에 이어 이번 <그래, 그런 거야>까지, 하루 온 종일 동동거리며 집안일에, 식구들 뒤치다꺼리에 휘둘리는 김해숙 표 어머니도 싫증나고 아내를 위하는 척, 눈치 보는 척하며 실은 나 몰라라 하는 아버지 캐릭터를 보는 것도 질린다. 그러나 반응이 어떠하든 갈 길이 바뀔 리 없는 제작진이니 시청자 편에서 일찌감치 포기할 밖에.

공감대 형성이 바로 불특정 다수를 대상으로 하는 TV 드라마의 필수 요소가 아니겠나. 얼마 전 신드롬을 형성했던 tvN <응답하라 1988>의 인기 요인이기도 하고. 그런데 왜 감독이며 작가들은 이 가장 중요한 ‘공감’을 외면하는지 모르겠다. 감동을 강요하지 말고, ‘참새가 봉황의 뜻을 어찌 알겠느냐’는 식으로 가르치려 들지 말고, 시청자 스스로가 깨닫고 느끼게 해달란 말이다.



각설하고, 앞서의 작품들과 차별되는, 비교적 공감대 형성에 성공한 최근작이 있어 소개하고자 한다. KBS 주말극 <아이가 다섯>이다. 솔직히 KBS 예능 <해피투게더>에서 주인공 소유진을 비롯한 등장인물들이 작품 소개에 나섰을 때만 해도 또 한 편의 막장 드라마의 탄생으로 보였다. 아내 미정(소유진)의 친구(왕빛나)와 바람이 나 이혼을 한 남자(권오중). 믿었던 친구에게 배신을 당한 그의 아내는 애 셋을 데리고 아이 둘인 또 다른 남자(안재욱)와 당당히 새 출발을 하게 된다나? 그래서 아이가 다섯이란다. 무슨 이런 말도 안 되는 스토리가!

그런데 막상 뚜껑이 열리고 보니 반전이다. 불륜남녀도 한 편으로는 이해가 가는 구석이 있고 불륜녀의 친정어머니(김청)도, 손녀딸 하나만을 바라보고 살아온 미정의 외할머니(성병숙)며 딸이 죽은 후 사위 상태(안재욱)를 아들처럼 여기고 살아가는 처갓집 식구들, 그리고 아들을 사돈댁에 빼앗겼다고 심란해하는 상태의 부모님까지 누구 하나 공감이 가지 않는 인물이 없다. 그래도 불과 4회 밖에 진행이 되지 않은 극 초반인지라 목소리를 높여 칭찬을 할 수가 없어 유감이다. 혹시라도 이 드라마 역시 맛이 변할까봐.

흔히 막장 드라마 제작진들은 시청자들이 현실을 모른다며 볼멘소리를 한다. 설마 시청자들이 현실이 드라마보다 더 해괴망측하다는 사실을 모를 리가 있겠는가. 시청자가 원하는 것은 개연성 있는 공감이다. 부디 이제 막 발을 뗀 드라마 <아이가 다섯>이 마지막 걸음까지 시청자와 한 호흡으로 함께 느끼며 울고 웃을 수 있기를.

칼럼니스트 정석희 soyow59@daum.net

[사진=tvN, SBS, KB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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