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수단’이 제작될 수 있다는 것 자체가 진정한 미스터리다

[엔터미디어=황진미의 편파평론] ▲이 영화 반(反)▲. (본문 중 영화 내용의 누설이 있습니다. 영화를 관람하실 분들은 참고 바랍니다.) <무수단>은 DMZ에서 벌어진 미스터리를 다룬 영화이다. DMZ으로 수색을 나간 수색대원이 실종되자, 최정예 특임부대가 DMZ 안으로 파견된다. 24시간 안에 실종된 수색대원을 찾고, 원인을 제거하라는 명령이다. 특임부대의 부팀장을 맡은 신중위(이지아)는 생화학전 전문 엘리트 장교이다. 여기서 중요한 단서들이 도출된다. 실종사건은 생화학전과 관련된 비밀을 품고 있을 것이고, 군사기밀인 만큼 상부에서는 정보를 은폐하려 들 것이다. 그러니까 관전 포인트가 대략 정해진다. 영화가 숨겨 둔 생화학전과 관련된 비밀은 무엇일까, 그리고 미지의 적과 상부의 은폐작전 사이에 낀 신중위와 부대원들은 살아남기 위해 어떻게 행동할 것인가.

◆ DMZ의 생화학전이라는 소재를 이토록 얄팍하게 다루다니!

영화 <무수단>의 초반은 나쁘지 않다. 최전방 특유의 긴장감이 잘 살아있는데다, 남성중심의 조직 내에서 여성장교를 둘러싼 성차적 긴장도 적당히 묘사되어 있다. 특히 DMZ의 통문을 통과한 순간부터 수색을 벌이면서 쌓아가는 공간적인 긴장감이 뛰어나다. 사방이 지뢰밭인 가운데, 풀숲이나 안개에 가려 앞이 잘 보이지 않아서, 금방이라도 뭔가가 튀어나올 것만 같다. 더욱이 같은 시각 북한군도 통문을 넘어 남하하고 있기 때문에, 언제든 지뢰가 터지든 교전이 발생해도 이상할 게 전혀 없다. 여기에 음산하게 깔리는 미지의 대상에 대한 공포가 더해진다. 영화 <프레데터> 등에서 보았던 제3의 시선이 자주 미지의 존재를 환기시키며, 훼손된 시신들이나 병사들의 실종은 긴장감을 더한다.

<무수단>의 좋은 점은 딱 여기까지다. 제3의 시선이 남발되는가 싶더니, 기필코 모습을 드러낸 미지의 존재는 허접하기 이를 데 없다. 이것은 단순히 조악한 특수효과나 빈약한 예산을 탓하는 게 아니다. 훨씬 더 많은 비밀이나 사연을 품은 존재로 그릴 수도 있었지만, 극히 단순한 존재로 그리고만 상상력의 빈곤을 탓하는 것이다. 생화학전을 둘러싼 비밀의 실체도 빈약하긴 마찬가지이다. 공교롭게도 <무수단>이 촬영에 들어간 시기는 2015년 7월초이다. 살아있는 탄저균이 오산기지에 배송된 사건으로 여론이 들끓던 때였다. 또한 메르스의 창궐로 신종 감염재난에 대한 우려가 한껏 고조되었던 시기이기도 하다.



사실 생화학전에 대해서는 태평양전쟁 때 일본 731부대나 한국전쟁 때 미군의 세균전 등에 대해 상당한 자료가 누적되어 있다. 2015년 1월 영화제작자 임종태는 <한국과 중국에서의 세균전에 관한 국제과학위원회의 사실조사 보고서>(일명 <니덤 보고서>)원본을 입수하여 전문을 공개했다. 2차 세계대전 종전 직후 미군은 생체실험을 자행했던 일본의 731 부대 책임자인 이시이 시로를 사면하는 조건으로 생체실험 자료를 넘겨받는다.

이시이 시로는 한국전쟁 중 연이어 한국에 왔으며, 1952년 초 북한과 만주지역에 세균전으로 추정될만한 대규모 감염이 일어났다. 1952년 국제과학위원회는 공식적인 역학조사를 벌여 사람들이 페스트, 콜레라, 탄저병, 장티푸스에 감염되어 사망했음을 밝혀냈다. 영국의 생화학자 니덤의 주도하에 작성된 총 670쪽짜리 보고서에는 “2차 세계대전 당시 일본이 전염병을 확신시키는데 이용한 것과 유사한 세균전 기술을 미 공군이 한국에서 사용했다는 결론을 내릴 수밖에 없다”고 기술되어 있다. 최악의 전범 이시이 시로는 노후에 연금을 받으면서, 미군 생화학 실험실에 자주 드나들며 생화학무기 개발에 관여했다고 전해진다.

731부대의 생체실험 자료를 그대로 승계한 더그웨이 연구소는 이후 미 국방부 산하 생물화학 실험실로 중추적인 역할을 하고 있는데, 바로 이 연구실이 2015년 6월에 한국의 오산기지를 비롯하여 세계 86개의 연구실로 살아있는 탄저균을 배송한 연구실이다. 한편 미 육군소속의 엣지우드 화학생물학 센터는 2013년부터 본격적으로 ‘주피터(포탈합동위협인식) 프로그램’을 한국에 정착시키며 생화학전을 준비하고 있으며, 미 육군공중보건국은 별도의 작전을 수행할 수 있는 6곳의 실험실을 한국에서 운영 중이다.



세계 최고 수준의 생화학전 능력을 갖춘 미군을 비롯하여 북한군, 한국군이 팽팽한 긴장상태로 대치하고 있는 DMZ은 생화학전이 일어날 가능성이 높은 지역이고, 그만큼 다채로운 상상이 가능한 곳이다. 따라서 DMZ을 배경으로 생화학전을 다룬 영화를 구상할 때, 약간의 조사에 상상력을 가미하면 풍부한 서사를 만들 수 있다. 그러나 <무수단>은 게으른 발상으로 영화를 얄팍하게 구성한다. 영화는 초반에 한국군 수뇌부가 특별한 비밀을 알고 있다는 듯 연막을 피우지만, 사태는 ‘무수단’이란 제목이 암시하는 대로 흘러간다.

‘무수단’은 북한의 로켓 발사대가 위치한 함경북도 ‘무수단리’에서 따온 미사일 이름이다. 북한의 공격무기인 ‘무수단’이란 제목이 가리키듯, 알 수 없는 공포의 대상 혹은 생화학전의 비밀은 북한군부의 몫으로 수렴된다. 초반에 연막을 피웠던 한국군부의 역할은 어느새 소멸된다. 호전적인 북한 장군의 모습과 유치한 생체실험 장면이 스크린에 등장하는 순간, 2000년에 남한의 국방부가 봉인했다는 폐 벙커의 비밀은 서사의 뒤안길로 사라진다.



◆ ‘GP506’은 얼마나 잘 만든 영화였던가!

DMZ에서 벌어지는 생화학전의 음모라는 소재를 이토록 얄팍하고 유치하고 풀어낸 것도 아쉽지만, 부대원들의 캐릭터와 행동을 유의미하게 살려내지 못하는 것은 더욱 실망스럽다. 조대위, 신중위를 비롯해 중사, 하사, 병장 등에 이르는 부대원들 모두는 어떠한 이유와 심리에 의해 움직이는지 전혀 분간되지 않는다. 이들은 모두 우왕좌왕 할 뿐이다.

<무수단>을 장르적으로 가장 유사한 영화 ‘GP506’과 비교해보면 단점이 명확하다. ‘GP506’은 반전을 비롯하여 플롯이 다소 복잡하게 짜인 탓에 서사가 단숨에 읽히지 않는다는 단점을 지니지만, 긴장이 고조된 상태에서 각각의 인물들이 나름의 성격과 의지에 의해 움직이는 모습이 잘 드러나 있다.

이에 반해 <무수단>은 인물의 개성과 관계를 입체적으로 구성하지 못한다. 이들의 행위는 이유를 따지기 힘들 정도로 단편적이고 우연적이다. 가장 많은 정보를 아는 사람이자 주인공이기도 한 신중위조차 어떠한 주체적 행위나 결단을 하지 못한다. (장갑도 끼지 않고 가검물을 채취하는 몇몇 장면에선 전문성마저 의심스럽다.) 군 수뇌부에 대한 악의적인 묘사도 얄팍하긴 마찬가지다. 캐릭터를 전혀 구축하지 못한 채, 아무런 내적 필연성 없이 서사가 이리 저리 흘러간다.



밀리터리 호러의 관점에서 보더라도 ‘GP506’이 훨씬 세련되었다. 증오와 대립이 켜켜이 쌓인 DMZ이라는 역사적 공간과 기이한 공격성을 발현시키는 괴 전염병의 존재는 잘 어울린다. 여기에 군대라는 조직의 폐쇄성이 맞물리면서 자멸을 향해 치닫는 서사가 상당히 설득력 있게 전개된다. ‘GP506’에서 공포의 실체는 인격화된 괴물이 아니라, 부지불식간에 퍼지는 전염병과 서로를 믿지 못하는 관계의 파탄이다. 그러나 <무수단>은 공포의 대상을 굳이 괴수의 형상으로 인격화함으로써 공포의 격을 떨어뜨린다.

‘GP506’의 경우 국내에 거의 없던 좀비물의 장르적 변용이란 측면에서도 평가할만하다. 기이한 신체의 변형이나, 떨어져 나간 사지가 꿈틀대는 장면은 좀비물의 흔적이다. 영화는 특정 장면보다 분위기에 의해 좀비물과의 유사성을 보이는데, 가령 공포와 광기에 사로잡혀 서로 총질을 해대는 군인들이나 어두운 조명아래 누가 누구인지 구분되지 않는 군인들의 모습은 흡사 좀비처럼 보인다.

반면 <무수단>의 경우 더 뚜렷한 좀비의 형상을 등장시키면서도 좀비영화가 지닌 공포의 본질을 오인한다. 좀비영화가 무서운 이유는 징그러운 괴수가 하나 등장해서가 아니다. (그건 괴수영화이다.) 사방에 좀비가 들끓으며, 누가 좀비인지 알 수도 없고, 아무리 죽여도 끝나지 않으며, 나 또한 좀비가 될 거라는 ‘불명확한 경계’가 공포의 본질이다. 이것은 감염공포의 본질이기도 하다. 그러나 <무수단>의 경우 생화학전에다 좀비의 구체적 형상을 가져다 쓰면서도, 좀비물이나 감염공포의 본질인 ‘경계 없음’을 활용하지 못한다. 마지막 순간 신중위를 통해 본격적인 공포가 막 시작되려는 순간 영화는 끝난다. ‘GP506’으로 치자면, 이제 서사의 30%가 진행된 상태에서 막을 내리는 셈이다.



<무수단>을 보면 궁금증이 밀려온다. 이미 ‘GP506’이라는 밀리터리 호러물이 있었고, 참신한 시도에도 불구하고 흥행에 실패한 전력이 있지 않은가. 그런데도 훨씬 질이 떨어지는 시나리오로 어떻게 <무수단>을 만들겠다는 생각을 한 것일까. 더구나 촬영이 이루어진 2015년은 한국전쟁의 생화학전에 대한 <니덤 보고서> 전문이 공개되고, 메르스 창궐로 감염공포에 대한 사회적 경각심이 높아졌으며, 미군이 탄저균·페스트균 등을 17차례 국내에 반입해 왔음이 밝혀지고, 주피터 프로그램을 비롯해 현재 미군이 한반도에서 준비 중인 생화학전의 얼개가 드러난 해가 아니던가.

이러한 일련의 사건들로 인해 영화가 다루는 소재에 대한 관객들의 인식이 급격하게 높아졌음에도 불구하고, 무려 8년 전에 만들어진 유사장르의 영화보다 훨씬 격이 떨어지는데다 현실세계의 공포도 제대로 반영하지도 못하는 영화가 어떻게 만들어지고 개봉에까지 이를 수 있었는지, 그것이 진정한 미스터리다.

칼럼니스트 황진미 chingmee@naver.com

[사진=영화 <무수단>스틸컷]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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