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디션 세상, ‘위키드’처럼 배려하면 안 될까

[엔터미디어=정덕현] 어쩌다 우리는 경쟁을 당연한 현실로만 받아들이며 살게 된 걸까. TV만 켜면 여기 저기 쏟아져 나오는 게 오디션 프로그램이다. 걸 그룹이 되기 위한 <프로듀스101> 같은 오디션이 있는가 하면 힙합 뮤지션들의 <쇼 미 더 머니> 같은 오디션도 있다. 대형 기획사들이 참여하는 <케이팝스타>는 시즌5가 진행 중이고 이 밖에도 <듀엣가요제>, <신의 목소리>, <복면가왕> 등등. 이제 경쟁 없이 음악을 듣는 프로그램 찾기가 쉽지 않아졌다.

물론 프로그램마다 성격은 다 다르다. 경쟁이라고 하지만 <복면가왕>은 다양한 이들에게 공평한 기회를 제공하기 위한 장치로서 복면을 씌우고, <듀엣가요제>나 <신의 목소리>는 기성가수들과 함께 아마추어들이 기량을 뽐낼 수 있는 무대를 만들어준다. 하지만 성격이 다르다고 해도 그 기반이 경쟁인 것은 어쩔 수 없다. 가창력 경쟁을 벌이는 음악 오디션은 그래서 고음이 얼마나 올라가고 목청이 얼마 좋은가 같은 가창력만이 음악의 전부인 양 보여주는 한계를 드러내기도 한다. 음악이 어디 그런가. 조용히 읊조리기만 해도 때론 깊은 감동을 주는 게 음악이 아니던가.

아마도 음악 프로그램들의 이런 경쟁 일변도는 우리가 사는 현실과 무관하지 않을 것이다. 늘 경쟁 속에서 살아가고 살아온 우리들은 어느 순간부터 경쟁 없는 무언가를 밋밋하게 여기고 있는 지도 모를 일이다. 이런 현실 때문이었을까. Mnet의 동요 대전 <위키드>는 거꾸로 우리의 이런 경쟁적인 현실을 되돌아보게 만들었다.

아이들이고, 동요이기 때문에 그랬을 것이다. 제 아무리 오디션 형식을 갖고 있다고 하더라도 동요를 부르는 아이들의 그 순수함 앞에 심사위원도 또 이들을 이끄는 선생님들도 하다못해 무대 밑에서 이들을 바라보는 관객들조차 늘 배려하는 마음이 앞섰다. 좋으면 좋다 싫으면 싫다 말하는 아이들이지만 그래서 때로는 이기적인 모습을 보이기도 하지만 그런 모습조차 부모의 미소를 지으며 바라보자 한없이 귀엽고 예뻐 보였다.



경쟁은 중요한 것이 아니었다. 그들의 노래가 얼마나 다르고 또 저마다의 개성이 넘치며 좋은가를 찾아내기 위한 무대들의 연속. 하랑이의 랩은 그 나이 때의 감성을 머금고 어깨를 절로 들썩이게 만들었고 제주소년 연준이가 ‘고향의 봄’을 끝까지 혼자 부르고 눈물을 쏟아냈을 때 우리 모두는 같이 울 수밖에 없었다. 시연이의 앙증맞은 윙크에는 누구나 마음이 녹아내렸을 것이다.

경연의 끝. 세 팀은 모두 공평하게 상을 나눠 가졌다. 레전드 동요상, 베스트 하모니상, 창작동요상. 사실 누가 이기느냐 하는 건 이미 프로그램 중도부터 전혀 중요한 일이 아니었다. 김용범 PD는 우승자를 한 팀만 뽑는 룰을 없애겠다고 말하기도 했다. 경연이라는 경쟁 시스템이 필요한 건 출연자들의 간절함을 쥐어 짜내기 위한 방식일 뿐이다. 하지만 아이들은 그럴 필요가 전혀 없었다. 모두들 순수한 마음으로 열심히 무대에 임하고 있으니 말이다.

<위키드>에는 경쟁은 없고 배려가 넘쳤다. 그리고 그 사실만으로도 보는 이들을 흐뭇하게 만들었다. 잘 생각해보라. 이 프로그램을 보며 알 수 없는 먹먹함 같은 것이 어쩌면 그 경쟁은 없고 배려가 넘치는 모습들 때문이 아니었는가 하고 말이다. 우리는 경쟁 따위는 지워버리고도 기꺼이 거기 아이들의 목소리에 몰입할 수 있었다.

왜 우리들은 이들처럼 배려할 수 없을까. 무수한 오디션 프로그램을 보다보면 경쟁이라는 현실을 내세워 인간으로서의 최소한의 예의조차 지키지 않는 모습을 가끔 보게 된다. 소리를 지르고 모욕을 주고 그래서 눈물을 뚝뚝 흘리게 만든 다음에 이런 얘길 한다. “이게 다 너희들을 위해서 하는 거야.” 꼭 이래야 할까. 오디션 프로그램도 그렇지만 우리 사는 현실도 꼭 이래야 잘 살 수 있는 걸까. <위키드>처럼 배려해서는 어려운 걸까. 과연?

정덕현 칼럼니스트 thekian1@entermedia.co.kr

[사진=M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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