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간이탈자’, 시간을 초월하는 로맨스를 보여주고 싶었겠지만

[엔터미디어=듀나의 영화낙서판] 곽재용 감독의 신작 영화 <시간이탈자>를 지지해야 할 몇 가지 사적인 이유가 있다. 하지만 아무리 극도로 관대해져 내 사심을 모두 계산에 넣더라도 이 영화를 지지하기는 어려운데, 그 세 가지 이유는 다음과 같다.

◆ 타임리프 장르, 무성의한 기성품 재활용

개인적으로 타임리프 장르를 좋아하지 않는다. 이건 이 장르에 속해있는 작품들을 싫어한다는 말이 아니다. 단지 타임리프라는 소장르를 굳이 만들어 그를 의식하며 작품을 만들 필요까지는 없다는 말이다. 장르는 기본적으로 핑계다. SF나 판타지의 경우에는 불가능을 용납하는 핑계다. 장르 안에 소장르를 넣고 그 안에 소장르를 또 넣는다면 그건 핑계에 핑계에 핑계를 계속 허용한다는 뜻이다. 결국 자기가 하는 건 별로 없고 남들이 만든 틀을 생각없이 쓰게 된다. 핑계는 적을수록 좋다.

<시간이탈자>는 우리가 사는 세계와 전혀 다른 허구의 세계를 배경으로 하는 영화다. 1980년대와 2010년대의 한국이 나온다고 속지 말기 바란다. 우리가 살고 있는 세계에선 1980년대에 사는 사람과 2010년이 사는 사람이 시간을 초월해 정보를 교환하는 일은 일어나지 않는다. 당연히 영화는 우리 세상과 피상적으로만 비슷한 다른 우주를 그리고 있는 것이고, 영화는 이 가상세계의 법칙을 최대한 꼼꼼하고 정확하게 그려야 한다. 왜 이런 일들이 일어나는지 정확하게 설명할 수 없다고 해도 인과율이 어떻게 적용이 되고 주인공들이 그 세계의 법칙을 어떻게 이용하는지를 설명해야 한다. 무엇보다 그 법칙들은 그 자체가 하나의 개성이 되어 작품을 지배해야 한다.

하지만 <시간이탈자>에서는 여기에 대한 고민이 전혀 없다. 게임을 하고 있긴 하지만 그 규칙은 모두 남으로부터 빌려온 것이라 자기만의 개성이 없고, 이야기에 맞게 법칙을 왜곡하고 있으니 이들의 모험은 공허하다. 무엇보다 주인공들의 행동이 엉망이다. 예를 들어 우리의 주인공들은 중간에 1980년대와 2010년대를 연결하는 중요한 인물의 존재를 알아차릴 수밖에 없는 단계에 온다. 하지만 그들 중 어느 누구도 2010년의 그 인물과 대화할 생각을 하지 않는다. 그 인물이 빈틈을 채워줄 결정적인 정보를 갖고 있는 게 분명한데도. 그건 그들이 비정상적으로 어리석거나 미리 맞추어진 이야기에 끌려가고 있다는 뜻이다. 이런 상황이 영화 내내 끝도 없이 일어난다. 무성의한 기성품 재활용의 결과이다.



◆ 여자들에게 정보를 주지 않는 한국 영화 속 남자들의 나쁜 버릇

물론 이 영화에서 임수정이 연기하는 1인 2역의 캐릭터는 두 남자의 구조 대상으로만 존재한다. 이것만으로도 충분히 나쁜 클리셰지만 오늘은 조금 다른 종류의 클리셰에 대해 이야기해보기로 하자.

이 영화에서 가장 결정적인 정보는 1980년대의 여자주인공이 특정한 일자에 특정 장소에서 살해당한다는 것이다. 이 정보를 갖고 있는 사람이 해야 할 일은 무엇일까? 무슨 일이 있어도 그 일이 일어나지 않도록 하는 것이다. 그리고 그러기 위해 할 수 있는 가장 손쉬운 방법은 무엇일까? 여자에게 그 정보를 전달하는 것이다. 그건 손쉬운 일이다. 이미 여자주인공은 남자가 미래를 본다는 사실을 알고 있기 때문이다. 그 이야기를 완전히 믿지 않을 수도 있지만 목숨이 걸렸고 쉽게 피할 수 있는 상황이라면 그 정보만으로도 자신의 목숨을 구할 수 있다. 그렇다고 해서 살인범이 살인을 포기한 건 아닐 테니 위험은 남겠지만 그건 그 다음 일이다. 그런데도 남자는 여자에게 그 정보를 전달하지 않고 혼자서만 사건을 해결하려 한다.

여자들에게 필요한 정보를 주지 않는 건 한국 영화나 드라마 속 남자들의 나쁜 버릇이다. 아무 한국 드라마나 영화를 챙겨보라. 주변 남자들이 여자 주인공과 관련된 온갖 비밀을 다 알고 있지만 여자 주인공 혼자만 아무 영문을 모른 채 큰 눈을 껌벅이고 있는 상황과 끝도 없이 마주칠 것이다. 그러는 동안 그 정보를 갖고 있는 연적인 남자 둘은 여자 등 뒤에서 치고 받고 난리가 난다.



대화는 정보의 교환이다. 정보의 불평등한 소유는 결국 권력관계로 이어진다. 그리고 <시간이탈자>엔 여성과 남성 사이에 제대로 된 정보 교류가 이루어지지 않는다. 어느 정도 정보를 주고 받는 위치에 있던 2010년대의 여자주인공도 결정적인 상황에선 그 정보에서 소외된다. 그 정보를 갖고 할 수 있는 일이 전혀 없었던 건 말할 나위도 없고. 당연히 제대로 된 행동이 불가능하고 캐릭터는 피상적이 된다.

1980년대의 연인들은 우리가 보지 않는 곳에서 온갖 중요한 정보를 주고 받으며 연애를 했을 것이다. 그 사실까지 부인할 필요는 없다. 하지만 영화 속에서 우리가 보는 건 오로지 정보를 독점하고 있는 남자들의 일방적인 소동극이다. 영화는 감성을 내세우고 있지만 제대로 된 정보 교류를 보여주지 않는 관계 묘사는 어쩔 수 없이 차갑고 얄팍할 수밖에 없다.



◆ 정상적인 사람의 비정상적인 우선순위

이 영화 속 살인마는 정말 말도 안 되는 이유로 연쇄 살인을 저지르는 인간이다. 그의 두뇌 속에선 우선순위가 기형적인 모양으로 파괴되어 있다. 여기에 대해서는 별 불만이 없다. 세상엔 별별 끔찍한 악당들이 다 있기 마련이니까. 하지만 주인공의 우선순위는 이보다 건강해야 한다.

<시간이탈자>의 남자들, 특히 1980년대 남자주인공이 오싹한 이유도 우선순위 때문이다. 그는 여자친구가 죽은 뒤에도 학생들을 대상으로 한 연쇄살인이 일어난다는 사실을 알게 된다. 정상적인 사람이라면 당연히 학생들을 구하는 게 순서다. 하지만 그는 그들 중 한 명을 지켜보며 살인마를 기다린다. 위기 상황에 놓은 아이를 미끼로 이용하는 것이다. 물론 그 학생을 방치할 생각은 아니었겠지만 살인마의 정체를 밝히겠다는 의지가 우선한다면 당연히 위험부담은 커진다.

프리드리히 뒤렌마트가 이런 집착을 가진 형사를 주인공으로 훌륭한 소설을 쓰긴 했지만 <시간이탈자>는 사정이 다르다. 1980년대의 남자주인공은 그냥 올바른 일을 하는 보통 남자여야만 먹히는 캐릭터이기 때문이다. 비정상적인 인물이 비정상적인 일을 하는 건 괜찮다. 하지만 영화가 정상적인 인물이라고 주장하는 인물이 이런 행동을 한다면 당연히 관객들은 영화 만드는 사람들의 사고 방식을 의심하게 된다. 영화는 시간을 초월하는 로맨스를 보여주고 싶어하지만 실제로 보여주는 건 충분히 영리하지도 않으면서도 편견에 차 있고 오싹한 사고 방식을 가진 이야기꾼의 정신상태다.

칼럼니스트 듀나 djuna01@empas.com

[사진=영화 <시간이탈자>스틸컷]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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