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돌아저씨’ 작가는 오연서·이하늬 커플이 두려웠던 걸까

[엔터미디어=듀나의 영화낙서판] <태양의 후예> 신드롬이 장안을 휩쓰는 보는 동안 필자는 동시간대에 방영되어 시청률 바닥을 치고 있던 <돌아와요, 아저씨>를 보았다. 인기작에게 밀려서 그렇지 그렇게까지 재미없는 프로그램은 아니었다. 스토리와 캐릭터는 거칠고 투박했지만 빛나는 장면들도 있었고 몇몇 주연배우의 잠재력도 의외로 잘 살린 드라마였다. 단지 보면서 이런 생각은 했다. 결국 마지막회에 가면 실망하겠구나. 얼마 되지 않는 팬들은 마지막회가 끝나기도 전에 작가들을 욕하면서 자기만의 결말을 따로 쓰겠구나.

그리고 정말 그렇게 되었다. 실망을 예상했으면서도 실망을 하다니 어떻게 그럴 수 있느냐고 묻지 마시라. 사람 마음은 그렇게 논리적이지 않다.

왜 그렇게 생각했는지 이유를 들어보시라. 시리즈의 주인공은 얼마 전에 세상을 하직한 두 아저씨다. 한 명은 백화점 직원, 다른 한 명은 손을 씻고 요리사가 된 전직 조폭. 저승에서 이들은 다시 지상의 일을 마무리지을 기회를 얻는데, 한 명은 백화점 회장의 사생아인 남자와 똑같은 모습으로, 다른 한 명은 젊은 여자의 모습으로 돌아온다. 아저씨들이 주인공이지만 정작 아저씨가 아닌 배우들이 아저씨를 연기하고 있다는 것이 이 드라마의 차별지점이다.

여기서 시청자들의 관심을 끌고 또 작가들에게 골칫거리가 되는 것은 여자의 모습으로 돌아온 조폭 이야기이다. 이 아이디어는 가짜 동성애이다. 겉으로는 동성애처럼 보이지만 이성애의 알리바이를 치고 있는 부류로, 이런 것에는 남장여자(드물게는 여장남자), "번개 맞고 영혼이 바뀌었어!", "전생에 이성애 연인이었어!" 등등이 있다. 이 드라마에서 오연서는 이하늬를 사랑하지만 오연서가 사실은 앞에서 김수로가 연기한 남자이기 때문에 그 감정이 허용된다.



하지만 이 알리바이는 흔들릴 수밖에 없다. 우선 이들 커플을 응원하는 팬들은 이 둘이 모두 여자이기 때문에 관심을 가진다. 오연서는 남자처럼 연기하기 위해 최선을 다하지만 그 결과물은 아무리 봐도 남자 같지 않고 그 캐릭터의 매력이 살아나는 부분도 그 어긋나는 지점이다. 게다가 언젠가 이하늬의 오연서에 대한 감정도 그려야하는데 여기에 대한 알리바이가 또 필요해지는 것이다. 그리고 그 알리바이는 결국 드라마 전체를 흔들게 된다.

드라마는 예상 가능한, 아니, 예상보다 못한 길을 택했다. 우선 겁에 질려 이 가짜 동성애 커플의 비중을 줄였다. 둘의 관계가 깊어질 수 있는 장면엔 김수로를 내보낸다. 그리고 이하늬가 드디어 오연서에 대한 감정을 깨닫는 순간에는 갑자기 마법에라도 걸린 것처럼 오연서와 김수로의 진실을 알게 되고, 그 순간 김수로와 오연서는 기억에서 사라져버린다.

한마디로 이하늬는 동성애를 받아들인 순간 감정과 기억을 잃어버린 것이다. 이것은 아무리 봐도 범죄에 대한 처벌이고 은폐이다. 아무리 가짜 동성애라고 해도 결국 판타지이니 적당히 융통성있게 마무리지을 수 있는 여유가 존재하는데 작가들은 상상력이 부족해서, 또는 두려워서 그것도 하지 못한다. 결국 8주 동안 이들에게 감정이입하고 애정을 투자해왔던 시청자들은 분노할 수밖에 없다.



분노하는 팬들을 보고 있으면 이런 생각을 하게 된다. 이 정도 반응을 본다면 여성 동성애 이야기엔 안정적인 틈새 수요가 존재한다. (이들이 모두 동성애자일 거라고 착각하지는 마시기 바란다.) 캐스팅은 생각보다 쉬울 것이다. 남자들의 경우와는 달리 자발적으로 이런 종류의 연기를 하고 싶다고 밝힌 여자배우들은 의외로 많다. 이런 역할은 그들에게 묻혀있던 연기력을 발휘하고 다른 여자배우와 일대일로 연기를 할 기회와 충성심이 강한 팬들을 한꺼번에 제공해준다. 그렇다면 가짜 동성애나 에로 영화, 백합, <여고괴담>의 알리바이 없이 그냥 정상적인 여성 동성애 로맨스 영화를 만드는 건 그렇게까지 위험한 일이 아니지 않을까?

곧 박찬욱의 <아가씨>가 개봉된다. 세라 워터스의 <핑거스미스>에서 줄거리를 가져온 이 영화가 원작에 얼마나 충실할지 알 수 없다. 원작의 젠틀맨을 연기하는 하정우의 비중이 지나치게 큰 것이 걸리고 원작자의 반응이 살짝 미심쩍어 걱정스럽다. 하지만 결과가 어떻게 나오건 <아가씨>는 충무로에서 알리바이 없이 만드는 거의 첫번째 메이저급 여성 동성애 영화가 될 것이다. 그리고 두 여자 주연 중 한 명인 김민희는 이전부터 동성애 영화에 대한 관심을 밝혔던 배우이기도 하다. 이 결과물이 이런 종류의 영화 제작에 어떤 영향을 끼칠 것인지 궁금해진다.

칼럼니스트 듀나 djuna01@empas.com

[사진=SB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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