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간이탈자’ 곽재용 감독의 월드, 영원회귀의 사랑

[엔터미디어=황진미의 편파평론] △이 영화 찬(贊)△. (본문 중 영화 내용의 누설이 있습니다. 영화를 관람하실 분들은 참고 바랍니다.) <시간이탈자>는 <엽기적인 그녀>, <클래식> 등을 만들었던 곽재용 감독의 신작으로, 최근에 인기를 끌었던 드라마 <시그널>과 비슷한 타임워프의 설정을 갖는다.

1982년과 2014년 제야의 종소리가 울리는 보신각 주위에서 두 명의 남자가 칼에 맞은 뒤, 두 남자는 꿈을 통해 서로의 삶을 들여다본다. 1983년을 사는 지환(조정석)은 꿈속에서 본 2015년의 건우(이진욱)의 삶을 통해 약혼녀 윤정(임수정)의 죽음을 알게 된다. 지환이 윤정의 죽음을 막기 위해 동분서주 하는 가운데, 건우는 윤정과 똑같이 생긴 여자 소율(임수정)을 현실에서 만나게 된다.

◆ 스릴러는 무슨, 곽재용 감독의 세계관이라네

영화 <시간이탈자>가 32년의 시간차가 나는 두 세계에 속한 두 남자들이 과거의 범죄사건을 해결하려 한다는 점에서 일단 스릴러로 보는 시각이 존재한다. 하지만 이것은 영화에 대한 온전한 이해로 보기 힘들다. 따라서 스릴러를 기준으로 만듦새를 평가하며 <시그널>과 비교하거나, 곽재용 감독이 왜 전공을 바꾸어 스릴러를 찍었을까 하는 식의 논의는 대체로 무용하다. <시간이탈자>는 로맨틱코미디를 위주로 하면서 혼성 장르적 시도를 끼얹었던 <엽기적인 그녀>나 <사이보그 그녀>와 마찬가지로, 혼성장르의 형식을 띈 로맨스 영화다.

또한 주제의 측면에서 보았을 때도, 곽재용 감독의 일관된 세계관이라 할 수 있는 영원 회귀적 사랑을 담는다. <엽기적인 그녀>도 결국 운명으로 예비 되었던 만남을 이야기하였고, <클래식>은 대를 이은 사랑이야기이며, <사이보그 그녀> 역시 시간을 거슬러 영원히 계속되는 사랑에 관한 이야기이다. <시간이탈자> 역시 환생을 통해 이어지는 사랑이라는 측면에서 곽재용 감독 특유의 사랑관을 품고 있다. 스릴러의 외피를 쓰고 있을 뿐 본질은 멜로이며, 타임워프라는 판타지는 ‘다시 태어나도 너를 알아보고 다시 사랑 할테야’를 시전하기 위한 장치이다.



영원회귀의 사랑관을 가진 곽재용 감독에게 타임워프의 설정은 낯선 것이 아니다. <엽기적인 그녀>에도 ‘미래에서 온 인간’에 대한 이야기가 나온다. 타임캡슐도 중요한 모티브이다. <클래식>은 똑같이 닮은 모녀가 그 남자의 아들과 대를 이어 사랑을 한다. 자식들은 자신도 모르게 부모들의 연애를 반복하며 이어간다. 아담한 시골집의 모티브가 여기서도 등장한다. <사이보그 그녀>는 ‘미래의 내’가 사이보그인 그녀를 보내 나를 지키고 과거의 가장 후회스러운 순간을 바꾸도록 한다. 메모리칩만 갈아 끼운 얼굴이 똑같은 여주인공이나 과거의 시공간에 속한 유년의 나를 바라보는 향수어린 장면이 여기서도 등장한다.

요컨대 <시간이탈자>는 곽재용 감독이 과거 로맨스 영화를 찍으면서 시도하고 버무려 넣으려 했던 온갖 시간성에 관한 장치들을 훨씬 세련되고 덜 억지스러우며 완성도 높은 상태로 변형 가공하여 집어넣은 작품이다. 그러니 사랑 영화를 주로 찍던 곽재용 감독이 종목을 바꾸어 타임워프 스릴러에 도전했다는 식의 말은 지극히 표피적인 발언일 뿐이다.



◆ 게임의 형식을 띤 판타지 극장

영화에서 과거사건을 추리하고 해결하는 과정의 긴장은 헐거운 반면, 뽀샤시한 향수와 예쁜 감성이 중요하게 전달된다. 이를 위해 여주인공이 살해되거나 도망치는 급박한 순간에도 흰 원피스가 나풀거린다. 이것은 스릴러의 관점에서 보자면 리얼리티도 없고 장르적 긴장을 헤치는 일이지만, 영화는 나름 진지하게 이러한 화면과 정서를 고수한다. 지향하는 바가 스릴러가 아닌 로맨스이기 때문이다. 2015년을 사는 건우가 소율과 첫 대면하는 장면은 전형적인 로맨틱 코미디의 분위기이고, 인물들이 두 개의 시간대에 얽힌 신비한 비밀을 알아나가는 과정도 놀라움과 납득이 차곡차곡 쌓이기보다는 ‘운명적 사랑’이라는 당위와 호감에 은근슬쩍 편승하는 식이다. 휴대폰에 대한 우스개도 영화 <써니>의 그것처럼 코믹하게 활용된다.

영화는 전체적으로 아련하고 고풍스러운 러브스토리에 시간과 운명과 죽음을 초월한 사랑이라는 오글거리는 메시지를 담은 멜로물로 보는 것이 적당하며, 범죄사건의 해결이라는 요소는 스릴러의 플롯으로 배치된 것이 아니라, ‘공주를 구하라’ 는 미션을 달성하기 위해 달리는 게임과 비슷한 구조를 지닌다. 그래서 한 가지 사건을 해결하고 나면, 더 어려운 과제가 주어지고, 그것에 의해 보상이 주어지는 식으로 영화가 전개된다. 마침내 목표를 완수하게 되었을 때, 현생의 사랑을 이룰 수 있다. 그것도 게임을 시작하기 전 제로 지점으로 돌아가서.



이를테면 이런 것이다. 영화 속 1983년의 시간대에서 조정석이 겪는 온갖 미션들은 현재의 이진욱이 게임을 통해 겪는 일들과 비슷하다. 현재의 이진욱은 고등학교 음악선생으로, 형사가 되고 싶은 꿈을 가지고 있었다. 또한 화재사건을 비롯해 온갖 학교괴담들을 접하며 살고 있었다. 이를 재료로 그의 판타지 극장이 열린다. 판타지 속 그의 아바타라 할 수 있는 조정석은 온갖 환란의 과정을 통해 매번 더 어려운 과제를 수행하며, ‘나의 공주’(임수정)을 구하고 아이들을 구한다. 게임의 아바타답게 조정석은 사라지고, 다시 머쓱하게 현실로 돌아온 이진욱은 ‘내가 살린’ 임수정의 과분한 사랑을 (환상 속에서) 받으며 으쓱하게 살아간다.

이런 판타지의 구조를 가진 <시간이탈자>는 곽재용 감독 특유의 고풍스러운 사랑관을 현대적인 형식으로 풀어냈다는 점에서 평가할만하다. 관객이 곽재용 감독의 영원 회귀적 사랑에 동의하든 하지 않든 영화를 보는 과정은 즐거우며, 게임을 보는 듯한 흥미진진함을 느낄 수 있기 때문이다. 또한 <엽기적인 그녀>의 ‘운명 지어진 만남’이나, <클래식>의 ‘대를 이른 사랑’보다는 차라리 ‘윤회’가 어차피 판타지라는 측면에서 받아들이기 쉬우며, 그것을 타임워프의 장치와 게임의 플롯을 차용하여 지루하지 않게 전개시킨다는 면에서 상당한 발전을 거두고 있다고 평가할 수 있다. 자신이 가진 편집증적인 사랑관을 새로운 관객들과 소통하기 위하여, 영화의 형식에 상당한 모색을 기울인 50대 감독에게 경의를 표한다.

칼럼니스트 황진미 chingmee@naver.com

[사진=영화 <시간이탈자>스틸컷]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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