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슈가맨’, 유재석 못지않은 유희열의 섬세한 배려

[엔터미디어=정석희의 TV 돋보기] “요즘 뭐가 제일 볼만해요?” 질문을 받을 때마다 망설임 없이 답하게 된다. “<슈가맨>을 보세요!” 한 시대를 풍미했으나 어느 결에 사라진, 일명 ‘슈가맨’을 찾아 그들의 히트곡을 재조명해보는 JTBC <투유 프로젝트 - 슈가맨>. 이 프로그램을 권하는 이유는 기본에 더 없이 충실한, 즉 ‘슈가맨’을 알리는 일에 최선을 다하는 방송이기 때문이다. 아무리 화제성 최고인 인물이 역주행송을 부를 ‘쇼맨’으로 섭외되었다고 해도 중심은 언제나 ‘슈가맨’이었으니까.

지난주만 해도 그랬다. 진행자 유재석이 KBS <해피투게더 3>에서 팬심을 드러낸 바 있는 I.O.I 소녀들이 전격 출연했으나 그럼에도 ‘슈가맨’으로 초대된 ‘철이와 미애’와 안수지(아가)에게 맞춰진 포커스는 흔들림이 없었다. 만약에 전소미나 김세정, 최유정에게 한 마디라도 더 건넸다면 기사 한 줄이라도 더 나왔을 것은 자명한 일. 따라서 한 마디로 배려를 아는 방송인 것이다.

가끔 어이없는 소리를 듣는다. 누구도 범접 못할 재능을 가졌다면, 이를테면 연기의 신이라면 사생활 따위야 조금 허술하면 어떠냐고. 그 말에 결사반대인 나는 천하에 없는 탁월한 능력일지라도 그에 우선하는 건 제대로 된 인성이라고 굳게 믿고 있다. 그런 의미에서 방송인에게 가장 필요한 미덕은 말재간이 아닌 배려라고 보는데 유재석이야 이미 정평이 나 있지만 또 다른 진행자 유희열은 어떨지, 녹화 현장 전반에 걸쳐 배려가 있는지, 화면 밖의 상황을 직접 확인하고 싶어졌다. 그래서 방청 신청을 했고 석 달 넘어 기다린 끝에 드디어 방청석에 앉을 수 있었다.



사실 어떤 음악 방송이든 방청객과 제작진의 입장은 대치되기 마련이다. 방청객은 출연료 한 푼 안 받고 반나절 이상의 시간을 할애해야 하고 더구나 <슈가맨>의 경우 출연자가 공지되지 않으니 위험 부담을 안고 오는 입장이 아닌가. 과히 선호하지 않는 인물이 나온다면 고역도 그런 고역이 없을 테니까. 반대로 제작진은 무료로 최고의 무대를 선보이지 않느냐, 그 정도의 불편쯤은 감수해야 옳다는 입장일 수도 있다.

따라서 서로에 대한 이해 유무에 따라 현장의 공기는 판이하게 달라질 수밖에 없는데 그 점에 있어 <슈가맨>은 일단 합격점. 입장까지의 한 시간 남짓한 대기 시간이 다소 지루했으나 불만을 토로하는 방청객은 눈에 띄지 않았다. 흔히 접하게 되는 안전요원의 무례함도 없어서 다행이었고.

“짜고 하는 거 아니었네요?” 지난 주 즉석에서 슈가송 ‘엉덩이’를 재즈버전으로 멋지게 불러준 안수지(아가)의 말대로 녹화는 물 흐르듯이 자연스럽게 진행된다. 물론 대략의 밑그림이야 있겠지만 순전히 진행자들의 감과 연륜에 의해 장면 하나 하나가 퍼즐처럼 맞춰져 하나의 작품이 되는 셈. 솔직히 방송으로 접했을 때는 방청객 중 한 두 분쯤은 사전에 섭외됐거니 했다. 하도 재기발랄한 인터뷰들이 많았기에. 그런데 웬 걸, 백퍼센트 실제 상황이다.



두 MC가 비좁은 방청석을 오르락내리락 누비며 쓸 만한 그림을 찾아내는데 기억에 남는 건 유희열의 섬세한 배려였다. 방청객과 눈높이를 맞추고자 자세를 한껏 낮춰 편히 얘기할 수 있도록 분위기를 유도하는 게 아닌가. “괜찮아요, 어서 얘기해요.” 하는 자상한 눈빛으로. 그렇게나 열과 성의를 다하다 보니 녹화 말미에 이르러서는 체력이 방전된 기색이 역력했다. 유희열을 위해서라도 녹화 시간을 줄일 필요가 있지 싶다.

하지만 녹화가 길어지는 건 출연자들을 최대한 배려하기 때문인 것을 어쩌랴. 그야말로 여한이 없도록, 보여주고 들려주고 싶은 것들을 모두 쏟아내고 갈 수 있도록 자리를 펴주는 두 MC. 모처럼 세상에 모습을 드러낸 ‘슈가맨’을 위한 잔치 한 마당인 것이다. 내가 참여했던 녹화는 ‘슈가맨’으로는 손지창, 나현희가, ‘쇼맨’으로는 이성경, 이이경이 초대된 이번 주 방송분인데 방청객이 선택의 버튼을 누르기 직전에 제작진이 ‘슈가맨’이든 ‘쇼맨’이든 두 진행자든, 누굴 좋아하는 마음은 부디 접어둔 채 순수하게 곡 하나만 보고 택해달라고 신신당부를 한다.

사실 무대 자체만 놓고 보면 이성경 쪽이 더 끌렸다. 그런데 이이경의 노래를 듣고 있자니 그의 대선배 손지창을 향한 진심이 가슴을 파고드는 게 아닌가. 그래서 막판에 마음을 바꿔 이이경을 선택했다. 결국 유재석 편의 유래가 없는 압승. 아마 모두가 비슷한 마음이었나 보다. 방청객의 배려가 만들어낸 결과라고 본다. 배려를 찾아 나섰던 <슈가맨> 탐방. 답은 배려 있음. 그것도 아주 많이!

칼럼니스트 정석희 soyow59@daum.net

[사진=JTBC]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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