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북앤시네마> 마이클 코넬리의 <라스트 코요테>와 영화들

[오동진의 북앤시네마] 국제선 비행기를 탈 때, 딱 갖고 가기 좋은 마이클 코넬리의 책들은 이른 바 포켓 북 혹은 펄프 픽션의 대명사급이다.

같은 사회부 기자 출신으로 <양들의 침묵> 시리즈를 쓴 토마스 해리스가 보다 하드 코어적이고 철학적이라면 코넬리는 그에 비해 다소 깊이가 얕고 말랑말랑한 편이다. 코넬리 스스로 정신적 스승이라고 생각한다는 레이몬드 챈들러(1930~40년대에 전성기를 누렸던 미국의 대표적인 하드 보일드 작가. <빅 슬립> <기나긴 이별> 등을 썼으며 그중 <빅 슬립>은 험프리 보가트와 로렌 바콜이 나온 1946년 영화로도 유명하다. 챈들러가 창조한 인물이 사립탐정 필립 말로우라면 코넬리의 얼터 에고는 해리 보슈다.)의 작품들이 어둡고 강하다면 코넬리의 책들은 묘하게도 경쾌한 느낌마저 준다.

그건 아마도 챈들러의 소설들이 알프레드 히치코크나 하워드 혹스 류의 흑백영화의 원작이 됐던 것과 달리 코넬리의 것들은 빠른 액션과 스펙터클이 넘쳐나는 21세기형 영화의 원전이 되기 때문인 것으로 보인다.

어쨌든 마이클 코넬리의 해리 보슈 시리즈는 읽는 맛이 쏠쏠하다. 그렇다고 그의 시리즈가 지나치게 가볍다고 평가절하될 만한 것이라는 얘기는 아니다. 클린트 이스트우가 2002년 코넬리의 원작으로 감독과 주연을 맡은 <블러드 워크>는 비교적 깔끔한 하드 보일드 영화로 손꼽힌다. 그의 또 다른 작품 <링컨차를 타는 변호사>도 곧 영화로 개봉될 예정이다. 마이클 코넬리가 현재 할리우드에서 가장 잘 나가는, 무엇보다 인정받는 작가임을 보여주는 대목이다.



코넬리의 신작 <라스트 코요테>는 <블러드 워크> 이후 가장 주목받을 만한작품이다. 무엇보다 대중문학이 영화와 어떻게 접점을 이루는지를 보여준다. 영화로 따지자면 코넬리의 책들은 작가주의적이거나 비상업적 예술영화 쪽이라기 보다는 대중상업영화의 장르적 특징에 잘 들어맞는다. ‘안전한’ 상업영화이되 오히려 그렇기 때문에 편한 마음으로 즐기게 되는 영화들. 코넬리의 이번 <라스트 코요테>가 꼭 그런 작품이다.

40대 초중반의 주인공 해리 보슈는 LA경찰국 소속의 민완형사다. 아니 민완형사였다. 지금은 직속상관(이지만 내심으로는 그걸 인정하지 않는)인 형사과장 파운즈 경위에게 폭력을 행사해 정직처분을 받은 상태다. 욱,하는 성격의 해리 보슈는 자신이 사명처럼 여기는 경찰 일로 돌아가기 위해 전전긍긍한다. 해리 보슈는 정신과 상담의의 히노조스라는 여의사에게 자신의 폭력적 성향의 근원에는 어린 시절 살해된 어머니에 대한 기억이 있음을 밝히고 그 살해범을 좇아 나선다. 보슈의 어머니는 그가 열살 때인 1964년 길거리에서 잔인하게 살해된 채 발견됐다. 해리 보슈의 어머니는 매춘부였다. 그녀에 대한 살인사건은 미제로 남아 있다.

1990년대 중반을 시대배경으로(소설에서는 초창기 시절의 모바일폰이 묘사되며 초고속 인터넷 검색따위는 언급되지 않는다.) LA와 플로리다, 라스베가스와 산타 모니카 등을 종횡무진 오가며 활약하는 해리 보슈의 뒤를 쫓는다. 자신의 어머니를 죽인 살해범. 그리고 그 살인을 둘러싼 정치적 음모와 은폐의 냄새들. 무엇보다 보슈는 이 사건이 30년이 지난 콜드 케이스(미제사건)이지만 여전히 ‘현재적’이라는 것을 깨닫게 되고 소스라치게 놀라게 된다. 어머니를 죽인 살인자가 현재도 여러 사건들과 씨줄낱줄로 얽혀 있기 때문이다. 과연 해리 보슈는 어머니의 살해범을 찾게 될 것인가. 통쾌한 응징의 복수극을 펼칠 수 있을 것인가.



<라스트 코요테>는 하드 보일드이면서도 하드 보일드답지 않게 인간적이고 따뜻한 구석이 넘쳐나는 소설이다. 매춘부였지만 자신에 대한 어머니의 사랑을 뒤늦게나마 인정하고 받아들이는 다 늙은 아들에 대한 얘기여서일까. 후반부 쯤에서는 코끝이 시큰해지까지 한다. <라스트 코요테>에서 해리 보슈는 심지어 기막힌 사랑에 빠지기도 한다. 보통 이런 경우에는 여자가 팜므 파탈(妖婦)형으로 남자의 ‘등에 칼을 꽂기’ 일쑤지만 이번 작품에서만큼은 좀 다르다. 물론 이번 여자 재스민에게도 충격적인 과거가 있어 놀랍기는 하다. 하지만 해리 보슈는 여자를 놓치거나 버리지 않기 위해 ‘필사적으로 잡는데’ 성공한다. 코넬리의 하드 보일드가 인간적인 느낌을 갖게 한 건 해리 보슈의 많이 등장하진 않지만 그만큼 강렬한 러브 스토리때문이다.

<라스트 코요테>는 그러나, 로 유명한 제임스 엘로이의 자전적 논픽션 <내 어둠의 근원>에 많은 부분 빚을 지고 있다는 생각을 지우기가 어렵다. 물론 <라스트 코요테>가 <내 어둠의 근원>을 모사했다는 얘기는 결코 아니다. 하지만 우연인지는 몰라도 <내 어둠의 근원>도 어머니의 살인사건을 뒤좇는 얘기이며 그 어머니 역시 매춘부로 오인받았다. <내 어둠의 근원>은 무엇보다 제임스 엘로이 자신의 실제 얘기다. 제임스 엘로이는 자신의 그 같은 삶을 바탕으로 희대의 하드 보일드 명작으로 꼽히는 <블랙 다알리아>를 썼다. 따라서 그런 면에서 보면 <라스트 코요테>는 <블랙 다알리아>와 <내 어둠의 근원>에 한 수 뒤지는 셈이 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라스트 코요테>는 ‘따뜻한’ 하드 보일드라는 점에서 읽는 내내 책을 손에서 놓치 못하게 만든다. 다 읽고 나서 결코 후회하게 만들지 않는다. 더구나 이 책 때문에 <블랙 다알리아>와 <내 어둠의 근원>을 다시 찾게 만든다. 꼬리에 꼬리를 물게 하는 하드 보일드 일기. 독서광들에게는 더할 나위 없이 매력적인 일이다.


칼럼니스트 오동진 ohdjin@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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