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박정현·임상아, 강호동은 누구에게 더 호감을 느꼈을까

[엔터미디어=정석희의 TV 돋보기] 날로 세계화로 치닫는 추세지만 여전히 우리나라에서는 우리나라 사람이 우리말을 잘 못해서는 문제가 된다. 국적이 어디로 되어 있건 지난 사연이 어떻건 한국인의 피가 흐르는 이상 우리나라 말을 정확하게 잘 하는 게 마땅하고 옳은 일로 여긴다. 반면 우리나라 말을 유창히 구사하는 외국인에 대해서는 호감도가 수직 상승하기 마련이다. <미녀들의 수다>를 통해 발군의 한국어 실력을 보인 따루나 크리스티나 같은 외국인들이 바로 그 점으로 인정을 받아 자주 모습을 보이게 된 게 아니겠나. 그게 우리네 정서인 것이다.

그런 의미에서 가수 박정현은 R&B의 요정이라 불릴만한 실력을 갖췄음에도 서툰 우리말과 발음으로 인해 끊임없는 지적을 받아왔다. 한국에서 활동한 세월이 얼만데 아직도 우리말을 잘 못하는 것이냐는 눈총에 내내 시달려 왔는데, 왜 한국말에 서툴 수밖에 없었는지 그 까닭을 MBC <황금어장>‘무릎팍 도사’에서 솔직하게 털어 놨다.

처음 한국에 온 이래, 15년간의 노력 끝에 이제는 우리말로 수다를 떨 정도가 되었지만 솔직히 말하자면 지금도 영어가 훨씬 편하다는 박정현. 그녀가 우리말을 제대로 습득하지 못한 이유는 일단 집안 사정 때문이었다. 간호사로 밤이고 낮이고 일을 할 수밖에 없었던 그녀의 어머니는 두 남매를 돌볼 시간 여유가 없었고 한국인이 극히 드문 지역이었던 터라 우리말을 가르쳐줄 사람이 아예 없었던 것 같다. 더구나 학교에 동양인은 단 세 명, 그것도 한국인은 박정현과 동생뿐이었다고 하니 우리말을 배울 기회가 있을 리 있나. 그리고 또 경상도 분이셨던 어머니가 혹여 아이들이 사투리를 쓰게 될까봐 직접 우리말을 가르치기를 꺼려하셨다고. 지금이야 세월이 좋아져 사투리가 매력적으로 들린다는 소리도 들리지만 당시 분위기로 보자면 충분히 이해가 되는 대목이다.

그런데 눈여겨 봐야할 부분은, 미국 명문 컬럼비아대 우등상 수상에다가 아이비리그 수재 클럽 가입까지 되어 있다는 박정현 그녀가 ‘무릎팍 도사’에 나와 영어를 거의 쓰지 않았다는 사실이다. 무의식중에 툭툭 튀어나올 법도 하건만 보통 사람들보다도 더 영어 단어 사용에 신중을 기하더라는 얘기다. 오죽하면 박정현이 ‘김연아 선수가 발성 연습을 조금만 더 하면’이라고 말하면 자막이 오히려 ‘기본적인 발성 트레이닝을 받으면’이라고 뜰 정도였으니까.

사용한 영어라고는 외국인들이 ‘무릎팍 도사’를 ‘Kneecap Fortune teller'라고 부르며 즐겨본다는 일화를 전했을 때, 그리고 어릴 적 ’Sleep over' 즉 파자마 파티에 가고 싶었다며 그네들의 문화를 설명할 때 등, 피치 못할 몇몇 상황뿐이었다. 그리고 강호동을 비롯한 MC들이 잘 알아듣지 못하는 눈치를 보이자 또박또박 짚어가며 단어에 대한 설명을 보태기도 했다. 그런 배려 깊은 모습들이 참으로 지혜롭다는 생각이 들었다. 현명하게도 그녀는 15년의 세월을 보내는 사이 우리네 정서를 제대로 꿰뚫게 된 것이다.

지혜롭기로는 2PM의 멤버 닉쿤도 만만치 않다. 영어에 능통하다고 들었지만 방송에서 사용하는 모습은 지금껏 거의 볼 수가 없었으니 말이다. 잘은 못해도 어떻게든 영어가 아닌 우리 단어를 조합해 설명해보려고 애쓰는 모습이 항상 대견하기만 한데 닉쿤 또한 박정현과 마찬가지로 우리나라 사람의 마음을 얻는 법을 잘 알고 있지 싶다.









흥미로운 건 ‘무릎팍 도사’ 방송 하루 전날, SBS <강심장>에서 MC 강호동이 또 다른 영어 사용자를 만났다는 것. 미국 뉴욕으로 건너가 가방 디자이너로 성공한, 한때 연기자이자 가수였던 임상아가 돌아와 12년 만에 예능에 모습을 보였는데 그녀의 성공 스토리도 인상적이었지만 시종일관 섞어 쓰는 영어 단어와, ‘뭔 소리래?’ 하는 어리둥절한 표정의 강호동도 관전의 재미였다.

워낙 외국어를 많이 사용하는 패션계라고는 하지만 인명을 입에 올릴 때도 어찌나 실력을 발휘하는지 또 다른 MC 이승기가 일일이 다시 한 번씩 짚어줘야 할 정도였으니까. 강호동에게 썼다는 편지에 ‘아내 분께서 아무쪼록 제 마음을 예쁘게 받아주시길’ 운운한 걸 보면 자신의 브랜드인 ‘상아백’을 선물한 모양인데 그녀의 성공 스토리 자체가 ‘상아백’의 성공 스토리이기도 하고 또 방송 다음날 '상아백‘ 서버가 다운되었다는 기사를 보고나니 좀 씁쓸하다는 생각이 든다. 결국 예능 프로그램이 개인 상품을 홍보해준 셈이 되어버린 게 아닌가. <강심장> 제작진이 보낸 비행기 티켓으로 서울에 왔다는 임상아, 그녀의 귀국 목적이 과연 <강심장> 출연뿐이었을지 궁금하다.

어쨌거나 한국말과 한국 생활에 익숙해지고자 애를 써온 박정현, 그리고 혈혈단신 뉴욕으로 건너가 성공한 임상아. 누가 더 성공했는지 비교할 필요는 없지만 사람의 마음을 얻는 점에서만큼은 박정현이 승자이지 싶다. 왜냐하면 ‘무릎팍 도사’ 이후 박정현이 몇 배는 더 좋아졌으니까.


칼럼니스트 정석희 soyow@entermedia.co.kr
그림 정덕주


[사진=MBC, SB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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