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인은 미인으로 활용하고, 미인 아닌 사람들에게도 기회를

[엔터미디어=듀나의 영화낙서판] 얼마 전 마이클 베이에 대한 어처구니 없는 소리를 들었다. 케이트 베킨세일이 2001년 영화 <진주만>을 찍었을 무렵에 대한 이야기를 <그레이엄 노튼 쇼>에서 한 모양인데, 베킨세일이 금발이 아니고 가슴이 크지 않아 촬영 내내 어쩔 줄 몰라했고, 1940년대 간호사 역을 맡은, 막 아기를 낳은 배우에게 몸을 만들라고 요구했다는 부분까지는 그렇다고 쳐도 “케이트가 충분히 매력적으로 보이지 않아 여성관객들을 소외시키지 않을 거 같아서 캐스팅했다”고 떠들고 다녔다는 부분에선 어이가 없어진다.

모든 사람에겐 취향이 있다. 세상 사람들이 다 미인이라고 하는 배우가 자기 눈엔 안 예쁠 수도 있다. 케이트 베킨세일은 지금 활동 중인 최고의 영국 미인 중 한 명이지만 마이클 베이의 눈엔 안 찰 수도 있다. 거기까지 뭐랄 수가 있나. 하지만 보편성과 상식이라는 것이 있다. 자기 눈에 미인이 아니라는 것과 그 사람이 미인이 아니라는 건 완전히 다른 이야기이다. 정상적인 미적 감각을 가진 대부분의 여성 관객들이 케이트 베킨세일을 미인으로 보지 않을 거라는 추정은 어이가 없다. 그리고 마이클 베이가 가정한 동일한 관객들이 바로 그렇기 때문에 베킨세일을 받아들일 거라는 추측은 더더욱 어이가 없다. 마이클 베이는 논란이 커지자 인터뷰를 통해 이 같은 사실을 부인했다.

여성 관객들이 아름다운 여성 이미지를 소비하지 않을 거라는 이상한 미신은 어디에서 왔는지 알 수 없다. 반대로 이런 이미지를 가장 적극적으로 소비하고 생산하는 사람들은 대부분 여자들이다. 그건 아무 서점에 들러 패션 잡지 표지만 봐도 알 수 없는 일이다. 여자들이 이런 이미지를 소비하고 의견을 제시하고 개입하지 않는다면 수많은 여성 패션 모델, 배우들, 아이돌들은 직업을 잃는다. 그리고 세상은 지금보다 훨씬 단조로워질 것이다. 가슴 큰 금발이 아니라면 미인으로 받아들이길 거부하는 마이클 베이 같은 사람들이 <보그> 편집장이 되었다고 생각해보라.



베이의 문제점은 할리우드의 문제점이기도 하다. 여성관객들이 어떤 존재인지에 대한 정확한 상을 갖고 있지 않으며 그 비틀려진 세계관 안에서 프로젝트를 짜는 사람들이 어떤 영화를 만들 것인지에 대해서는 말할 필요도 없지 않을까? 베이가 좀 심한 편이긴 하지만 다른 사람들이 그렇게 대단하게 나을까.

앞의 이야기가 화려하기 짝이 없는 미인을 미인으로 보지 못하는 눈먼 남자 이야기라면 다음은 누가 봐도 멀쩡한 미인을 미인이 아니라고 인정하고 넘어가야만 하는 시청자 이야기다.

tvN 드라마 <또, 오해영> 이야기이다. 이 드라마에서는 두 명의 오해영이 등장하는데, 그 중 한 명은 평범한 그냥 오해영이고, 다른 한 명은 모두가 인정하는 절세미인 오해영이다. 그냥 오해영은 절세미인 오해영과 늘 비교 대상이 되고 열등감을 느끼는데, 이 둘을 연기한 배우는 서현진과 전혜빈이다. 당연히 시청자들은 자기 최면을 걸어야 한다. 누가 봐도 이 두 사람의 미모 격차는 대단치 않거나 없기 때문이다.



두 사람과 같은 학교에 다니는 사람들 중 서현진이 더 예쁘다거나 취향이라고 생각하는 이가 단 한 명도 없었다는 것이 과연 말이 될까? 서현진 캐릭터 제안이 먼저 들어갔던 배우가 김아중과 최강희였다는 이야기는 마찬가지로 괴상하다. 최강희는 서현진처럼 '보통 여자' 연기를 아주 잘 하긴 한다. 하지만 김아중은 늘 공인된 미인이었는데? 아니었을 때는 뚱보 분장을 한 <미녀는 괴로워>의 도입부 뿐이었다. 한마디로 제작진이 그냥 오해영을 캐스팅할 때 미인이 아닌 사람을 염두에 둔 적 자체가 없었다는 말이다.

이건 마이클 베이의 관점과 정반대이다. 대부분이 여성인 시청자들이 평범하거나 그보다 못한 외모를 가진 여자 배우를 거부할 것이라는 믿음. 극단적인 의견 대부분이 그렇듯 이 역시 이치에 맞지 않으며 건강하지 못하다.

이 두 이야기의 교훈은 미인을 미인으로 인식하고 그들을 미인이라고 부르는 건 굉장히 중요하다는 것이다. 이 당연한 사실을 받아들이면 미인을 더 잘 활용할 수 있을 뿐만 아니라 미인이 아닌 수많은 사람들에게 기회가 찾아온다. 제발 시청자와 배우를 믿고 모두에게 기회를 줘보자.

칼럼니스트 듀나 djuna01@empas.com

[사진=tvN, 영화 <진주만>스틸컷]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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