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워크래프트’, 게임과 영화의 두 세계가 본격적으로 조우하다

[엔터미디어=황진미의 편파평론] △이 영화 찬(贊)△. (본문 중 영화 내용의 누설이 있습니다. 영화를 관람하실 분들은 참고 바랍니다.) <워크래프트: 전쟁의 서막>은 1994년에 출시된 게임 <워크래프트: 오크와 인간>을 영화화 한 작품이다. <워크래프트> 시리즈는 20년이 넘는 세월동안 4편의 시리즈와 8편의 확장팩이 출시되었다. 또한 게임을 원작으로 한 여러 편의 소설이 출시되어 방대한 세계관을 구축하고 있는데, 최근 출간된 <월드 오브 워크래프트 연대기>는 ‘워크래프’ 만의 가상 판타지 세계를 집대성하고 있다.

<워크래프트: 전쟁의 서막>은 컴퓨터그래픽과 모션 캡처 등을 통해 웅장한 볼거리를 제공한다. 특히 공간에 대한 묘사가 탁월하며, 오크의 몸을 생동감 넘치게 재현한 기술은 놀라울 정도이다. 스토리도 나쁘지 않다. 게임을 전혀 접해보지 않은 관객의 경우 인물들에 대한 설명이 부족하여 인과관계가 성글다는 느낌을 받을 수 있지만, 이해하지 못할 정도는 아니다. 새를 타고 다니는 안두인 로서를 비롯하여 전사들의 활극은 호쾌하다.

다만 액션의 오밀조밀함을 살리지 못한 점이나 결정적인 장면이 너무 쉽게 끝나버리는 것 등은 아쉬움으로 남는다. 하지만 전체적으로 보았을 때, 만족스러운 서사와 비주얼을 지닌다. <반지의 제왕>에 비견할 수는 없을 지라도 <혹성탈출: 반격의 서막>정도와 비교한다면 얼추 체급이 맞을 것이다.

<워크래프트: 전쟁의 서막>은 2006년에 영화화가 발표된 이후 10년 만에 나온 역작이자, 원작게임의 제작사인 블리자드사의 입김이 강하게 작용된 영화이다. 블리자드사는 이번 영화의 성패에 따라 후속작은 물론이고, <스타크래프트>, <디아블로> 등 다른 게임의 영화화도 시도할 계획이라고 밝힌바 있다. 미국 관객들로부터는 낮은 평가를 받았지만, <월드 오브 워크래프>의 저변이 넓은 중국 관객들로부터 열광적인 반응을 끌어내고 있어서, 이번 영화의 결과가 어떤 미래로 이어질지 귀추가 주목된다.



◆ 탈 중심적인 게임의 세계관

영화 <워크래프트: 전쟁의 서막>은 오크족의 전사 듀로탄의 내레이션으로 시작된다. 오크족이 사는 땅이 황폐화되어, 인간과의 전쟁이 불가피해졌음을 고뇌하는 내용이다. 듀로탄 부부를 비롯한 오크족의 정예부대는 어둠의 문을 통해 인간들이 사는 땅 아제로스에 들어온다. 이 과정에서 듀로탄의 아들이 태어난다. 이러한 영화의 도입부는 영화의 무게중심이 오크에 놓여있음을 명백히 한다. 고뇌하고, 사랑을 나누고, 가족을 구성하는 주체가 모두 오크다.

인간들의 세계는 한참 후에 등장한다. 어둠의 기운을 감지한 떠돌이 마법사 카드가는 최고의 전사 안두인 로서와 함께 인간계를 수호하는 마법사 메디브를 찾아간다. 듀로탄은 혼혈인 가로나를 통해 인간종족과 협상을 시도하지만 실패하고, 듀로탄이 속해있던 서리늑대 부족은 굴탄에 의해 멸족 당한다. 굴탄의 어둠의 마법이 땅을 황폐화시키고 모든 것을 타락시키는 것을 안 듀로탄은 굴탄의 비열함을 오크족들에게 알리기 위해 자신을 희생한다.

한편 굴탄과 함께 어둠의 문을 연 것이 메디브라는 것을 안 카드가와 안두인 로서는 그를 처단한다. 인간과 오크와의 전면전이 일어난 가운데, 직접 출전한 인간의 왕 레인은 오크족과의 화해를 위해 자신을 희생한다. 그러나 왕을 추모하려는 인간들에 의해 오히려 확전이 암시된 가운데, 이후 듀로탄의 살아남은 아들이 인간에게 입양되는 것을 끝으로 후속편을 기약한다.



영화 <워크래프트: 전쟁의 서막>은 인간과 오크의 세계를 동등하게 보여주는데, 무게 추는 살짝 오크 쪽으로 기울어져 있다. 보통 인간과 타종족의 대결을 보여주는 판타지 전쟁물에서 인간은 선이고, 타종족은 악이라는 구도를 취하기 쉽다. 그러나 영화는 그러한 길을 가지 않는다. 인간과 오크는 각자의 절실한 이유에 의해 대결하고 있다. 언뜻 보았을 때 인간세계는 중세유럽과 비슷한 정도의 문명을 건설하고 있고, 오크는 황무지에 사는 야만적이고 호전적인 고대 종족으로 묘사되어 있는 것 같지만, 영화는 오크의 세계도 전사의 명예를 중시하는 나름의 정신문화를 가지고 있음을 강조하여 보여준다.

이처럼 인간 중심성을 벗어난 묘사는 <워크래프트: 전쟁의 서막>이 게임에 기반을 둔 영화이기에 가능한 것이다. 고대로부터 내려오는 신화나 민담은 물론이고 이러한 스토리텔링을 계승한 서사극의 장르에서 적대관계는 ‘선과 악’의 이분법으로 결정되어 있다. 그러나 <월드 오브 워크래프트>와 같은 MMORPG(대규모 다중 사용자 온라인 롤플레잉 게임)에서 선악의 구분은 정해지지 않는다. 이용자가 어떤 진영에 속해 플레이 할지 선택함에 따라 선악은 상대적인 것이 된다.

또한 영화는 전쟁을 앞두고 있는 두 종족의 내부갈등을 상세하게 보여준다. 흔히 전쟁에서 내부갈등은 간과되어 마치 단일한 대오를 형성한다고 인식하기 쉽지만, 실상은 외부의 전선보다 내부갈등이 더 복잡한 양상을 띠기 마련이다. 오크의 세계는 굴탄의 독재와 마법의 남용에 의해 멸망의 기로에 서 있다. 이를 제지하고 인간과 협상을 꾀하려는 듀로탄은 오크의 세계에서 배신자로 찍힌다. 듀로탄은 굴탄의 전횡을 고발하고자 오크족들 앞에서 비참하게 죽는 자기희생을 택한다.



인간세계 역시 굉장한 아이러니에 휩싸여 있다. 어둠의 문을 연 것은 인간세계의 수호자인 메디브이다. 그는 지옥마력에 중독되어 굴탄과 연합해 어둠의 문을 연다. 수호자가 적과 내통하여 공동체의 파멸을 불러 온 것이다. 그의 죄악을 고작 새내기 중퇴 마법사가 알아내어 처단하는 것도 인상적이다. 최고의 전사인 안두인 로서가 왕의 불신을 얻어 출전하지 못하고, 레인 왕의 숭고한 죽음의 의미가 왕국에 제대로 전달되지 못하는 것도 내부 분열에 대한 역설적인 묘사이다.

이러한 각 인물간의 관계도 게임의 세계관을 반영한 것이다. <월드 오브 워크래프트>에서 이용자는 호드냐 얼라이언스냐 하는 진영과, 진영에 속한 10개의 종족과 10개의 직업군을 선택할 수 있다. 즉 ‘진영-종족-직업’이라는 세 가지 정체성에 따라 대립관계와 능력치가 설정되며, 여기에 이용자의 경험치가 더 해짐으로써 다양한 전개가 가능하다. 또한 게임 캐릭터에도 주인공, 악당, 조력자가 존재하지만, 어떤 캐릭터를 선택하느냐에 따라 주인공과 악당과 조력자의 위치가 바뀌게 된다. 영화에서 ‘듣보잡’ 마법사 카드가와 전사 안두인 로서와의 협력으로 인간세계의 수호자 마법사 메디브를 처단하는 탈 중심적인 서사가 가능한 것도 이러한 게임의 성격에 의한 것이다.



◆ 게임과 영화라는 두 세계의 만남

게임은 보통 청소년들의 하위문화로 인식되어 왔으며, 현재 시행되고 있는 ‘셧다운제’가 보여주듯이 청소년들의 중독을 막기 위해 감시하고 제한해야 할 유해매체로 간주된다. 게임이 아이들의 수면을 방해하고, 학교폭력을 일으킨다는 것이 여성가족부와 교과부의 주된 입장이다. 심지어 2013년에는 게임중독을 알콜중독, 마약중독, 도박중독과 묶어서 국가가 통합·관리하고 치료하겠다는 법안을 제출하였다가 반발에 부딪혀 중단되었는데, 정부는 올해 다시 ‘정신건강 종합대책’을 통해 게임중독에 질병코드를 부여하고 학생들을 지속적으로 관리하겠다는 5개년 계획을 발표하였다. 하지만 게임중독에 대한 의학적인 근거는 불분명한 실정이다. 물론 이러한 현상은 낯설지 않다. 텔레비전, 비디오, 인터넷 등이 처음 등장하였을 때에도 어김없이 새로운 미디어에 대한 공포가 있어왔다. 현재 게임은 세대 간 문화격차가 가장 큰 매체로, 세대 간 갈등의 중심에 놓여있다.

게임에 대한 포비아는 비단 한국만의 것은 아니었다. 1999년 콜로라도 총기난사 사건이 일어났을 때, 가해 청소년들이 슈팅 게임에 중독되어 있었다는 식의 보도가 총기소지제한에 대한 논의를 덮는데 활용되었다. 그러나 2012년에 일어난 코네티컷 총기난사 사건에 대한 반응은 달랐다. 재선에 성공한 오바마 대통령은 총기소지에 대한 강력한 규제안을 발표하고, 게임에 대한 규제가 아니라 학생들이 게임을 제작하는 방법을 배울 수 있도록 컴퓨터 프로그래밍을 강화한 교육과정을 도입해야 한다고 언급했다.



이러한 인식과 정책의 변화는 게임을 즐겼던 청소년들이 이제 성인이 되어 사회에 진입하게 되었다는 인구학적 세대변천과 맞물려 있다. 이제 게임은 청소년들의 하위문화에서 주류문화로 진입하는 직전단계에 놓여있다고 볼 수 있는데, 1994년에 출시된 게임의 세계관이 할리우드 블록버스터로 재탄생한 <워크래프트: 전쟁의 서막>이 이러한 변화의 분기점으로 작용할 가능성이 높다. 오크와 인간이라는 두 세계의 만남을 그린 이번 영화가 게임과 영화라는 두 세계의 본격적인 조우를 끌어내는 계기가 될 것으로 기대된다.

물론 게임을 영화화하는 작업은 전에도 있어왔다. <툼레이더>나 <레지던트 이블>은 꽤 성공한 사례이다. 그러나 <워크래프트: 전쟁의 서막>은 예전과는 차원이 다른 두 세계의 조우를 보여준다. 전략게임으로 출시된 <워크래프트>의 세계관은 출시 10년 만에 MMORPG <월드 오브 워크래프트>(WOW: 와우)에 의해 계승되었다. 와우는 전 세계에서 가장 인기 있는 MMORPG로, 사실상 지구적 규모로 작동하기 시작한 첫 번째 MMORPG 이다. 즉 <워크래프트: 전쟁의 서막>은 처음으로 전 지구적 규모로 작동한 <월드 오브 워크래프트>의 세계관을 풀어놓으면서, 게임만의 특징이라 할 수 있는 탈 중심적인 서사를 담고 있다는 점에서 특징적이다.



◆ 21세기 종합예술, 게임

지금 필요한 것은 게임을 병리화 하는 것이 아니라, 게임이라는 매체가 지닌 성격과 가치를 제대로 보는 것이다. 게임이 지닌 산업적인 성격은 물론이고 문화적이고 심리적인 측면을 이해해야 한다. 게임은 산업의 규모만 놓고 보자면 영화나 드라마 같은 기존의 문화시장을 훨씬 능가하는 지배적인 문화콘텐츠이다. 또한 게임은 IT 기술을 바탕으로 하지만, 서사, 그래픽, 음악 등 수많은 문화적 요소를 집약한 종합예술의 성격을 지닌다. 하지만 게임은 여전히 문화콘텐츠로 인정받기 보다는 단순한 오락으로 간주되기 일쑤다. 이는 게임을 하는 사람과 하지 않는 사람 사이의 단절이 크고, 특히 게임을 하는 청소년과 하지 않는 부모사이의 세대적 단절이 큰 탓이다.

그러나 게임을 매체의 측면에서 고찰해보면, 신문->텔레비전->인터넷->게임으로 매체가 변천해오면서 수용자들의 능동성과 상호작용성이 점차 커져 왔으며, 게임이야말로 능동적인 상호작용이 극대화된 첨단의 매체임을 알 수 있다. 가령 이용자들이 게임스토리에 적극 개입하여 수정하거나 새로 구성하는 것이 가능한데, 이는 창작자가 완결 지어놓은 세계를 수용하는 텔레비전이나 영화와는 다른 ‘열린 구조’를 갖고 있다. 즉 이용자들은 게임 속 시공간을 단순히 시청하는 것이 아니라 개입하고 체험하게 되는데, 이를 통해 현실감과 몰입감이 높아진다.



가령 와우에 접속한 이용자들은 아바타를 성장시키기 위해 다양한 활동을 통해 경험을 축적하고 능력을 향상시킨다. 여기저기 가상공간을 돌아다니며 뭐든 할 수 있는 ‘오픈 월드’가 있고, 퀘스트로 대변되는 구체적인 목표가 주어지기 때문에, 이용자는 그것을 수행함으로써 성취감을 느끼고 조금 더 어려운 과제에 도전하게 된다. 이러한 과정을 통해 이용자들은 현실세계에서는 맛볼 수 없는 보상과 의욕과 적극적인 생산성을 경험하는데, 이러한 체험을 무가치한 것으로 매도하는 것은 옳지 않다.

요컨대 게임을 통해 다양한 체험과 현실세계의 시뮬레이션이 가능하다. 특히 캐릭터를 통한 롤플레잉은 이용자에게 새로운 정체성을 부여하는데, 이용자는 게임에 참여함으로써 미디어를 통한 자아표현을 체험하며, 유대와 소통을 통해 새로운 사회화의 국면을 맞는다. 이른바 ‘게임-자아’가 탄생하는 것이다. <워크래프트: 전쟁의 서막>의 개봉을 계기로, 게임이 능동성과 상호 작용성이 큰 뉴미디어이며, 21세기 종합예술이라고 인식하는 사람들이 많아지길 기대해본다.

칼럼니스트 황진미 chingmee@naver.com

[사진=영화 <워크래프트: 전쟁의 서막>스틸컷]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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