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양락, 어째서 14년차 DJ가 간단 말도 못하고 하차했을까

[엔터미디어=정덕현의 이슈공감] 그는 마지막까지 자신이 하차하는 줄 몰랐다고 한다. 결국 늘 그래왔듯이 다시 생방송으로 돌아오겠다는 멘트가 그의 마지막 멘트가 되었다. 최양락이 MBC 표준FM <재미있는 라디오>에서 하차했다. 프로그램 자체도 폐지되어 버렸다. 2002년부터 무려 14년을 이어온 방송이다. 도대체 뭐가 문제였기에 간다는 말도 못하고 DJ는 하차했고 프로그램은 마치 기다렸다는 듯이 폐지됐을까.

이에 대한 MBC 측의 공식적인 입장은 ‘청취율 하락’이라고 한다. 또 최양락에게 예우를 갖춰 개편 사실을 통보하도록 했다고 한다. 하지만 이 사안을 바라보고 있는 대중들의 입장은 다르다. <재미있는 라디오>에서 그간 최양락이 해온 시사풍자 개그 코너들 때문이라는 것이다. 전직 대통령들과 현직 정치인들의 성대모사를 통해 당대의 정치 현안들을 재밌게 다루던 코너들이 한 마디로 밉보였다는 것.

이 프로그램의 많은 애청자들은 하지만 바로 그 정치 시사 코너들 때문에 이 프로그램을 애청했다고 밝힌다. 그도 그럴 것이 정치 시사 풍자 개그는 몇 년 전부터 보기 힘든 귀한 소재들이 되어버렸다. 가끔 <개그콘서트>에서 시도되곤 했지만 대부분은 사라져버리기 일쑤였다. 풍자를 한 개그맨이 피소되는 일도 잇따랐다. 최근 개그맨 이상훈이 어버이연합으로부터 피소된 일도 있었다. 물론 많은 대중들은 이럴 때마다 해당 개그맨을 지지하고 격려하지만 당사자들이 받는 압박감은 어쩔 수 없다.



그러니 최양락이 해온 <재미있는 라디오>에서의 정치 시사 풍자가 유독 속 시원하고 프로그램 제목처럼 ‘재밌게’ 다가온 건 당연한 일일 게다. 하지만 지난 2014년 이 프로그램은 개편을 통해 대부분의 시사 풍자 코너들을 없애고 대신 그 자리에 심심한 콩트를 채워 넣었다. 아마도 최양락은 물론이고 이 프로그램의 애청자들도 아쉬울 수밖에 없는 대목이었을 것이다.

청취율이 빠진 건 결국 이처럼 방송사의 정치적 입장에 의해 프로그램의 핵심적인 재미를 들어낸 결과이지 최양락의 문제라고 보기는 어렵다. 이렇게 보면 이번 최양락의 하차와 프로그램 폐지는 어째 본말이 전도된 느낌이 강하다. 굳이 ‘재미있던’ 라디오를 ‘재미없게’ 만들어놓고 떨어진 청취율을 들어 하차와 폐지를 결정한다는 건 최양락과 애청자 모두가 납득하기 어려운 일이다.

그런데 어째 이 사안은 지금의 MBC가 처한 위기를 압축적으로 보여주는 것만 같다. 최근 몇 년 간 MBC는 시청자들의 신뢰를 잃어가고 있다. 보도와 시사교양이 시청자의 귀와 입이 되어주지 못한 지 오래고 심지어 교양은 아예 그 팀 자체가 궤멸됐다고 해도 과언이 아닐 정도로 방송사에서 존재감이 사라져 버렸다. 한때는 드라마 공화국이라고까지 불리던 MBC는 최근 몇 년 간 막장드라마 논란으로 몸살을 앓아왔다. 이제 남은 건 예능이라고 하지만, 많은 PD들이 떠나고 있는 건 이마저도 안정적이지 않다는 걸 반영한다.



결국 이런 위기가 생겨난 건 저 <재미있는 라디오> 사안이 보여주고 있는 것처럼 정치적이고 사업적인 결정이 만들어낸 결과다. 잘 하고 있는 코너와 프로그램이 사라지고 유능한 PD들은 회사의 입장과 맞지 않는다는 이유로 이상한 부서로 발령이 나 그 능력을 발휘할 수 없게 만들어 놓았다. 남은 건 시청률 수치뿐이다. 제 아무리 비판을 받아도 시청률만 잘 나오면 된다는 사업적인 판단 하에 이런 모든 비상식적인 결정들이 행해진다.

하지만 이건 바로 눈앞만을 보고 있는 근시안적인 결정들이 아닐 수 없다. 결국 방송국은 지속적인 시청자들과의 신뢰를 통해 공고해질 수 있는 것이고 경쟁력을 가질 수 있는 것이다. <재미있는 라디오>의 재미없는 폐지 결정은 그래서 MBC가 현재 직면한 위기의 본질을 드러낸다. 하다못해 예의라도 차렸어야 하지 않았던가. 청취자들이 분노하는 건 무려 14년을 성실하게 해온 최양락은 물론이고 잘 들어왔던 자신들에 대한 예의조차 지켜지지 않았다는 사실이다.

정덕현 칼럼니스트 thekian1@entermedia.co.kr

[사진=MBC, 채널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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