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굿와이프’ 전석호·김태우·나나, 이 배우들을 주목하는 이유
[엔터미디어=TV삼분지계] ◾편집자 주◾ 하나의 이슈, 세 개의 시선. 각자의 영역을 가지고 대중문화와 관련된 글을 쓰고 있는 정석희·김교석·이승한 세 명의 TV 평론가가 뭉쳐 매주 한 가지 주제로 각자의 시선을 선보인다. 엔터미디어가 선보이는 새 코너 [TV삼분지계]를 통해, 세 명의 서로 다른 견해가 엇갈리고 교차하고 때론 맞부딪히는 광경 속에서 오늘날의 TV 지형도를 그려볼 수 있는 단초를 찾으실 수 있기를.
tvN 금토드라마 <굿와이프>는 ‘연기 잘 한다’는 칭찬을 하나마나 하게 만드는 캐스팅을 자랑한다. 요컨대 화면 안에서 이미 김혜경이 되어 살고 있는 전도연의 압도적인 연기력 앞에서 그걸 굳이 글로 풀어 설명하려는 시도는 얼마나 맥 빠지는 일인지. 그럼에도 불구하고, [TV삼분지계]는 주연을 제외한 나머지 캐스팅 중 각자 눈여겨보고 있는 배우들을 다뤄 보기로 했다. 물론 이렇게 한 명씩 다뤄도 아직 다 찬사를 못 보낸 훌륭한 배우들이 많은 작품이지만 말이다.
◆ 전석호, 현실적인 말단 악역 캐릭터의 대표주자
드라마 <미생>은 실제로 여러 ‘미생’들에게 기회가 됐다. 배우 전석호도 <미생>을 통해 얼굴을 알리기 시작한 배우 중 한 명이다. 짜증스런 얼굴로 신입 ‘여’사원을 무시하고, 찌든 세파에 순응하며 강자에게 앞장서서 굴복하고 약자에게 군림하는, 실제로 어디선가 본 듯한 현실적인 악당 상사 하 대리가 바로 그다. 그 후 <굿바이 싱글> <봉이 김선달> 등 최신작과 광고, 오민석과 떠났던 <수상한 휴가> 등에서 얼굴이 뚜렷이 보이기 시작했다.
<굿와이프>에서 전석호가 연기하는 박도섭 검사는 <미생>에서 보여준 현실적 말단 악역 이미지를 이어받은 인물이다. 출세 지향적이지만 야망과 능력이 소박해 김혜경(전도연)이 변호사로 성장하는데 밑거름을 깔아주는 법정 스파링 상대다. 검사 역이라고 하지만 더 정확하게는 사사건건 만나 깨지는 샌드백 역할이다. 그래서 출연 배우 중 유일하게 리액션이 연기의 8할을 차지한다. 한두 번 깨지고 밀리는 게 아니기 때문에 같은 공간, 같은 상황에서 기고만장에서 답답함과 난처함을 거쳐 분노와 좌절로 이어지는 감정선을 매번 색다르게 풀어내야 한다. 별다른 대사도 없이 몸짓, 표정, 한숨만으로 지루하지 않게 그림을 만들어야 한다. 우리네 일상이 고단함의 반복인 것처럼 현실적인 밉상 악역이 갖는 고충인 셈이다.
하지만 전석호는 저열하게 웃고 즐기다가 당황하고 당혹스러우며 짜증과 절망이 교차하는 패턴을 맛깔난 연기로 소화하며 자신의 캐릭터를 구축했다. 꽤 높은 수준의 밉상을 떨어 혹시나 모를 감정이입마저 철저히 차단한다. 이 정도면 완벽한 역할 수행이다. 게다가 말단 악역이지만 김단(나나)와의 버스정류장 장면을 보면 단순 샌드백 역할이 끝은 아닌 듯하다. 앞으로 펼쳐질 굴욕의 리액션 퍼레이드와 함께 그가 품은 반전이 기대가 된다.
칼럼니스트 김교석 mcwivern@naver.com
◆ 김태우, 우유부단한 청춘을 연기하던 남자의 성장
친구의 남자 친구를 남몰래 사랑한 한 여자. 그리고 그런 여자의 짝사랑을 알듯 말듯 희망 고문하던 남자. 배우 전도연과 김태우는 조심스럽고 허술해서 더 애틋했던 청춘들의 이야기 영화 <접속>(1997)에서 그렇게 만났다. 그리고 몇 년 뒤 또 다른 사랑 이야기 영화 <동감>(2000)에서의 유지태는 또 얼마나 풋풋했었나. 20년 가까이 세월이 흘러 그 셋이 드디어 tvN <굿와이프>를 통해 만났다. 캐스팅 리스트를 접하고는 어떤 그림을 보여줄지 기대가 컸는데 역시! 감탄사가 절로 나온다. 당시만 해도 하도 순수하고 어리바리해서 다들 늘 순해터진 역할만 맡을 줄 알았더니만 이제는 오가는 눈빛부터가 장난이 아니다. 세 사람의 얽히고설킨 대립 구도가 극의 성공을 좌우하리라고 봐도 과언이 아닌 상황이다.
특히 김태우는 KBS 주말극 <첫사랑>(1996)에서 배용준의 친구로 나왔을 때만해도 선한 얼굴의 청렴한 검사였는데 이번에는 원하는 바를 취하기 위해서는 어떠한 비열한 짓도 서슴지 않는 냉혈 검사 최상일로 등장한다. 드라마가 폭 넓은 공감대를 형성하려면 악역의 행보가 무엇보다 중요한 법. 그러고 보니 최근 그가 맡은 악역은 모두 색깔이 뚜렷하고 개성이 넘쳤었다. SBS <그 겨울, 바람이 분다> 청부폭력배 조무철, SBS <신의 선물 - 14일>의 딸의 실종에 책임이 있었던 두 얼굴의 변호사 한지훈 등. 우유부단한 청년을 연기했던 김태우의 놀라운 변화와 성장에 박수를 보내지 않을 수 없다. 부디 밀리지 않는 기싸움으로 마지막까지 긴장감을 높여주기를.
칼럼니스트 정석희 soyow59@daum.net
◆ 나나, 굳이 애정을 갈구하지 않아도 충분한
로펌 MJ의 조사관 김단(나나)은 프로다. 혜경(전도연)이 “사법연수원 졸업한 지 15년만이다”라고 말하자 “제가 초등학교 졸업했을 때네요”라고 대답할 만큼 어린 나이임에도, 단은 혜경에게 의뢰인이나 사건에 감정적으로 엮이기 시작하면 일이 힘들어진다고 딱 잘라 충고하는 대등한 파트너다. 국과수 연구원에게서 원나잇을 미끼로 사건 정보를 캐내든, 게으르고 무능한 공장 경비를 구워삶기 위해 도수 없는 안경을 쓰고 뻔하디 뻔한 애교를 부리며 경상도 사투리로 동향 사람을 위장하든, 검찰청에 근무하는 친구를 찾아가 정보를 요구하든, 그 모든 행동의 목적은 오로지 일이며 그에게 중요한 건 재판에 필요한 정보를 잘 수집해 재판을 유리하게 끌고 가는 것뿐이다. 자신이 맡은 일을 능란하게 해내는 한, 단은 굳이 ‘좋은 사람’일 필요도 ‘친절한 사람’일 필요도 없다.
원작에서 알리샤(한국판의 혜경)와 투톱 체제를 이뤘던 조사관 칼린다를 따온 캐릭터인 단을 나나가 연기한다는 소식이 처음 알려졌을 때만 해도 걱정하는 이들이 적지 않았다. 중국에서 드라마와 영화를 찍은 적은 있지만, 국내에서 본격적인 연기 활동을 하는 건 처음인 데다가 호흡을 맞춰야 하는 상대가 전도연이라는 사실은 여러 모로 불안한 신호처럼 보였다. 그러나 나나는 단의 매력을 딱 부러지는 발성과 냉소적인 표정, 누구 앞에 서도 위축되지 않는 눈빛으로 그려 보인다. 물론 현장에서 시간을 쪼개 나나를 붙잡고 개인 교습을 해준다는 전도연과 이정효 감독에게 많은 부분을 빚진 것이겠으나, 배운 것을 그만큼 빠르게 습득해 펼쳐 보일 수 있다는 건 그만큼 기본 자질이 갖춰져 있다는 의미도 될 것이다. 마치 단이 그렇듯, 나나 또한 굳이 ‘관심을 가지고 지켜봐 달라’는 당부가 필요 없을 만큼 너끈히 제 자신을 입증하고 있다.
칼럼니스트 이승한 tintin@iamtintin.net
[사진=tvN, 스튜디오 드래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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