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전기’ 폐지, 방심하다가 뒤통수 세게 맞은 기분이라니

[엔터미디어=정석희의 TV 돋보기] 매주 수요일은 KBS2 TV <동네스타 전국방송 내보내기>(이하 <동전기>)와 만나는 날이다. 그런데 이번 주엔 결방이 됐다. 대신 <신입 리얼 도전기 루키>가 방송됐다. 파일럿 프로그램인가 했는데 아예 신규 프로그램이란다. <동전기>는 15회 만에 막을 내린 것이다. 시청자에게 한 마디 인사도 없이. 다시보기로 확인했더니 지난 주 방송 앞머리에 ‘15회’ 대신 ‘최종회’라고 적혀 있다. 그게 전부다. 제대로 마무리 인사를 전할 시간 여유도 없이 폐지 수순을 밟은 모양이다.

언젠가 다뤄야지 하고 차곡차곡 이야깃거리를 모으고 있었는데, 이거야 허탈하달 밖에. 이젠 KBS를 넘어 대한민국 대표 방송으로 자리 잡은 <전국노래자랑>의 예고편이자 기록이었던 <동전기>. 그래서 내심 <전국노래자랑>이 계속되는 한 <동전기> 또한 쭉 이어지겠거니 믿고 있었는데, 방심하다가 뒤통수를 맞은 기분이다. 약속 장소에 나갔다가 보기 좋게 바람 맞은 느낌이기도 하고.

얼마 전 종영한 JTBC <슈가맨>이나 SBS <동상이몽 괜찮아>처럼 그 동안의 족적을 짚어보는 훈훈한 분위기까지는 아니어도 최소한의 예의는 갖췄어야 옳지 않은가. 3퍼센트 대의 시청률 때문이었을까? 아무리 낮은 시청률이라 해도 나처럼 방송을 기다리는 시청자가 분명 존재했을 텐데, 특히 어르신들이 많으리라 짐작이 되는데 그분들의 심정은 염두에도 없었던 걸까? 게다가 솔직히 요즘 추세로 보자면 그다지 낮은 시청률도 아니지 않나. 누가 답을 좀 해줬으면 좋겠다.

<동전기>는 우리나라 어딜 가나 만날 수 있는 끼 많고 흥 많은 사람들을 위해 마련된 자리였다. 이를테면 tvN <응답하라 1988>의 치타 여사 라미란과 같이 <전국노래자랑>에 도전했다가 부득이한 사정으로 탈락을 했거나 삶의 여유가 없어 출사표조차 던지지 못하는 분들을 찾아내 용기와 기회를 주는 프로그램이었던 것. 우리의 쌍문동 치타 여사가 다시금 기회를 얻어 호피 무늬 옷을 입고 멋진 춤사위를 펼쳤다고 상상해보라. 얼마나 짜릿한 일인가 말이다. 그런가하면 지난 날 멋진 무대를 선보였던 분들을 찾아가 그간의 소회를 들어보기도 했다. 어찌 살아오셨는지 노래 실력은 여전하신지. 전국 방방곳곳을 찾아다니며 우리가 잘 알지 못했던 풍물을 소개하는 한편 소시민들의 인생 여정을 돌아보는 것도 좋았었다.



사실 우리네 방송의 대부분은 서울을 위시한 화려한 도시 중심이 아니던가. 도시를 벗어나 대파밭, 작은 섬, 고된 삶의 터전인 시장통, 산골 후미진 길목에서 만난 그 분들이 전하는 노래를 듣는 일은 우리 속에 오랫동안 꼭꼭 눌러 접어뒀던 꿈을 다시 꺼내보는 시간이기도 했다.

교통사고로 갑자기 세상을 떠난 아들을 가슴에 묻은 한 어머니의 구슬픈 노랫가락도 기억나고, 북한이 고향이신 어르신께서 고향에서 가장 가까운 연천 땅에서 돌아갈 기약 없는 북녘 땅을 가슴에 품은 채 남에서 만난 평생 배필과 오순도순 살아가는 따뜻한 풍경, 그 남편이 아내에게 바치는 세레나데 '내 나이가 어때서'도 기억난다. 또 생사의 갈림길에서 기적적으로 살아났지만 그 후 열세 살 지능으로 살아온 예순 살 중년의 동생과 누나. “저한테는 누나가 엄마 같아요.” 동생의 수줍은 고백과 함께 들려줬던 ‘소양강처녀’. 이런 심금을 울리는 사연과 노래들을 더 이상은 들을 수 없다니.

프로 뺨치는 일반인 가왕들이 하루가 멀다 하고 쏟아져 나오는 마당에 너무나 평범해서 귀 기울이지 않으면 들리지 않는 노래를 부르는 동네스타들을 주인공으로 내세웠다는 게 어쩌면 시대를 역행하는 과한 욕심이었는지도 모르겠다. 그래도 <동네스타 전국방송 내보내기>라는 착한 프로그램을 기획해준 유웅식 PD, 진심을 담은 내레이션으로 감동을 더한 김소현 작가를 비롯한 제작진에게 고마움의 인사를 전하고 싶다. <동전기>를 좋아했던 시청자의 한 사람으로서.

방송 칼럼니스트 정석희 soyow59@daum.net

[사진=KB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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