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무릎부터 꿇고 본 최민수가 떠오르는 이유

[엔터미디어=정석희의 TV 돋보기] 사람은 누구나 되돌리고 싶지 않은 기억들이 있다. 고개를 흔들어 떨쳐버리고 싶은, 얼굴이 화끈해지는 기억의 태반은 욱하는 마음을 다스리지 못해 저지른 돌발적인 사고들이다. 나 역시 지금 생각하면 ‘미쳤던 거지’ 싶을 정도로 누군가에게 무례했던 적도 있고 내 기분 나쁘다고 턱없이 남에게 감정의 파편을 튀긴 적도 있었다. 그 기억들이 단순히 민망한 단계를 넘어 부끄럽기 짝이 없는 기억으로 남아있는 건 바로 ‘사과’라는 절차가 없었기 때문일 게다. 사과를 해야 할 대상에게 제대로 된 사과를 했다면 이처럼 마음 한 편에 지워지지 않는 얼룩으로 남아 있을 리는 없으니까.

이런 잊고 싶은 기억들이 나와 몇몇 사람의 머릿속에만 남아 있다면 그나마 다행이다. TV 속에서의 감정 절제를 못해 일어난 순간적인 실수들은 영상 파일로 만들어져 확대 재생산되는, 최악의 결과를 초래하고 만다. 얼마 전 KBS <밴드 서바이벌 탑 밴드>의 한 참가자도 탈락 통보 앞에 무례한 태도를 보여 비난을 샀는가 하면 Mnet <슈퍼스타 K 3> 첫 회 때 감정 조절에 실패한 한 여성의 도발은 하루 만에 온 인터넷을 도배하다시피 했다. 이럴 때 비난을 잠재우는 길은 그저 변명이 아닌 즉각적인 잘못 인정과 사과뿐이지 싶다. 애매모호한 태도를 취할 시엔 결국 그 장면이 평생 꼬리표처럼 따라다닐 수밖에 없지 않겠는가.

시간이 흐른 후이긴 하지만 토크쇼에서 지난날의 과오를 털어놓고 진심으로 사과한 연예인들이 있다. 가수이자 연기자인 이지훈은 SBS <강심장>에서, 최근 MBC <반짝반짝 빛나는>으로 인기몰이를 했던 김현주는 MBC <황금어장>‘무릎팍 도사’를 통해 철없던 시절 저질렀던 오만불손한 행태들을 고백하고 사과했다. 극 전개가 마음에 들지 않는다고 자신이 맡은 캐릭터를 죽여줄 것을 감독에게 요구했었다는 이지훈, 그리고 ‘내 중심으로 돌아가게 작품 좀 못 써주나?’ 하는 어이없는 생각까지 했었다는 김현주. 아무리 그간 이런저런 떠도는 이야기가 무성했어도 그렇게 본인이 진심어린 사과를 하기만 하면 대중은 기꺼이 용서하고 받아들인다. 그게 바로 우리네 인심이 아니겠나.

문제는 사과보다는 변명이 앞설 때다. KBS2 <승승장구>에서 배우 유오성은 MC 김승우의 “먼저 손찌검을 한 건 사실이고, 후회스럽지 않나요?”라는 과거 폭행 사건에 대한 질문에 “후회라기보다 이젠 피하죠.‘라며 변명으로 일관된 답을 했다. 차마 못할 일을 했었다고 깔끔하게 사과했으면 좋았을 일을 피해자를 긁어 부스럼을 만든 속 좁은 사람으로 모는 바람에 피해자가 트위터로 항의하는 상황이 발생, 또 다시 설화에 휩싸이게 되었으니 말이다.






요 며칠 뜨거운 감자로 떠오른 KBS2 <스파이 명월>의 한예슬도 마찬가지다. 초유의 여주인공 잠적으로 인한 드라마 불방 사태는 한예슬의 전격 귀국으로 일단락되었지만 공항에서의 인터뷰는 사과보다 본인이 겪어온 고충을 토로하는 데에 훨씬 많은 시간을 할애해 아쉬움을 남겼다. “정말 많은 분들께 심려 끼쳐 정말 죄송하고요.”라고 말문을 열었으나 스스로를 ’희생자‘로 칭하며 울먹인 점은 공감을 사기 어렵지 싶다. 열악하기로 따지자면 설마 여주인공의 처우가 현장 스태프들보다 더 나빴겠는가. 그렇다고 자신이 고생하는 여러 스태프들의 처우 개선을 위해 총대를 멘 것이라고는 말하지 말자. 자신과 같은 급의 연기자들을 위해서였다면 또 모를까. 물론 촬영 기간 동안 억장이 무너질 일이 허다했으니 그런 극단의 선택을 했겠지만 그 자리만큼은 훗날 부끄럽지 않도록 폐를 끼친 여러 사람들에게 제대로 된 사과를 하는 자리였어야 하지 않을까?

이런 상황들을 볼 때면 노인폭행 사건 연루 당시 무조건 무릎 꿇고 머리 조아려 사과부터 했던 배우 최민수가 생각난다. 그는 결백했지만 연세 많으신 어르신과 문제를 일으켰다는 자체가 도리에 어긋난다고 생각해 변명 없이 사과에 충실했었다. 하지만 진실은 언젠가는 밝혀지는 법, 결국 목격자들의 증언이 잇달았고 그가 무죄라는 사실이 입증되었으나 사과에 소홀한 건 언론도 마찬가지. 앞다투어가며 폭행을 단정 짓던, 추측을 일삼았던 언론들이 정정 보도에는 왜 그리 느린 행보를 보이던지. 잘못된 보도였다고, 이미지로 먹고 사는 연예인의 얼굴에 먹칠을 해 미안하다고 솔직하게 사과를 했으면 얼마나 좋았느냔 말이다. 실수는 사람인 이상 누구라도 할 수 있는 일이다. 허나 사과는 상대방이 기꺼이 가납할 수 있게, 진심을 다해 확실하게 하는 편이 옳다.


칼럼니스트 정석희 soyow@entermedia.co.kr
그림 정덕주


[사진=KBS, SBS, M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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