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복면달호> 대본을 들고 제가 3년을 돌아다녔어요. 그런데 드디어 시나리오가 차태현 씨 손에 넘어 갔을 때, 그 당시 차태현 씨 매니저가 옛날에 제 매니저더라고요. 무려 3년을 같이 일했던 사이였던 거예요. 그걸 안 순간, 내가 그 친구에게 잘했는지 잘못했는지, 내가 잘했을까? 잘해줄 걸, 혹시 눈물 나게 한 일은 없었을까? 별의별 생각이 다 들더라고요. 온갖 기도를 다했어요. 그리고 부디 잘해줬기를 바라며 매일 저녁 전화했어요. 차태현의 심리 변화가 어떻게 돌아가고 있는지 너무나 궁금해서요. 너무 불안한 거예요. 안한다고 하면 어쩌나 하고요.”

- SBS <힐링캠프, 기쁘지 아니한가> ‘차태현’ 편에서 MC 이경규의 한 마디

[엔터미디어=정석희의 그 장면 그 대사] SBS <힐링캠프, 기쁘지 아니한가> ‘배우 차태현’ 편은 재미와 감동 두 가지를 다 잡았다는 표현이 딱 맞는, 그야말로 버릴 것이 없는 시간이었다. 공황 장애를 앓은 이력이라든가 인기 하락 같은, 암울하다면 암울한 이야기들도 있었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시종일관 유쾌하면서도 유유자적할 수 있다는 게 참으로 신기했다. 초대 손님인 차태현 씨뿐만 아니라 지켜보는 시청자들까지 찌든 일상으로부터 치유된 느낌을 받았는데, 솔직하고 소탈하고 진중한 차태현 씨의 매력을 다시금 확인할 수 있는 시간이었지 싶다.

저렇게 아무 때나 바른 소리 제대로 해주는 좋은 친구 하나 있으면 여한이 없겠다는 생각도 들었고, 첫사랑과 오랜 연애 끝에 결혼해 친구처럼 살아가는 순정만화 같은 러브 스토리를 듣고 나니 내 딸도 더도 덜도 말고 그 같은 사람을 만났으면 좋겠다는 바람도 생겼다. 특히 미래에 대한 원대한 꿈보다는 바로 지금 이 순간을, 현재를 소중히 여길 줄 아는 현명함은 롤러코스터에 견줄만한 스타로서의 굴곡진 세월 뒤에 얻은 값진 교훈인지라 더 가슴에 와 닿았던 것 같다.

그런데 현재 내 곁에 있는 사람들을 소중히 대하는 게 중요하다는 교훈은 MC 이경규 씨가 털어 놓은 <복면달호> 제작 당시의 일화 속에도 담겨 있었다. 차태현 씨가 영화 <복면달호>에 캐스팅될 예정이라는 소식이 전해지자 차태현 씨의 팬들은 앞다퉈가며 결사반대에 나섰고 제작자인 이경규 씨 스스로도 혹여 이 영화가 실패로 돌아가 <복수혈전>에 이어 ‘망한 영화 시리즈’에 차태현 씨까지 엮여 놀림거리가 될까봐, 그게 걱정이었다 한다.

하지만 워낙 수년 째 캐스팅에 난항을 겪어온 터라 마지막 희망이다시피 한 차태현 씨에게 기대를 걸 수밖에 없었는데 마침 차태현 씨의 매니저가 예전 이경규 씨의 매니저였다는 사실을 알게 된 후 고민에 휩싸이고 말았다고. 거의 24시간 붙어사는 매니저이기에 억하심정으로 혹시 훼방이라도 놓으면 어쩌나 싶어 노심초사 했다는데, 세상사 인연의 소중함을 새삼 깨닫게 되는 대목이 아닐 수 없다.






사실 차태현 씨는 이경규 씨와 매니저의 통화 내용을 다 알고 있었다고 한다. 시나리오가 마음에 들기도 했지만 제작자인 이경규 씨의 열정적인 노력에 감동해 출연을 결심했다고. 그러나 만약 매니저가 이경규 씨에 관해 좋지 않은 기억을 가지고 있었다면 어땠을까? 결과는 불을 보듯 빤하지 않은가. 3년을 함께 했었다 하니 일거수일투족을 꿰뚫고 있었을 게 분명하고 만약 그릇된 인간성이 드러났다면 어떤 식으로든 내색을 할 수밖에 없지 않았겠나. 다행히 매니저가 호의를 가지고 가교 역할을 잘해준 덕에 <복면달호>가 빛을 볼 수 있었던 것이다.

예능 프로그램 안에서는 ‘버럭’과 ‘호통’, ‘극도의 이기주의’로 명성이 자자한 캐릭터지만 이경규 씨의 실제 모습은 전혀 다른 모양이다. 나 역시 살아가는 동안 뜻밖의 인연의 고리에 소스라치게 놀라곤 한다. 그때 단추를 잘못 끼웠다면 어땠을까 싶어 안도의 한숨을 내쉰 적도 있고, 반대로 그때 왜 감정 조절을 못했을까 후회했던 적도 있다. <힐링캠프, 기쁘지 아니한가>를 통해 얻은 ‘지금 함께 있는 옆 사람에게 최선을 다하자’라는 교훈, 두고두고 잊지 말자!


칼럼니스트 정석희 soyow@entermedia.co.kr


[사진=SB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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