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최종병기 활’, 정치와 역사를 숨겨 거둔 성공

[엔터미디어=오동진의 영화일기] 영화는 정치와 역사를 숨겨야 성공한다. 개봉 2주만에 300만 관객을 모으며 승승장구하고 있는 <최종병기 활>이 그렇다. 이 영화는 1600년대 광해군에서 인조반정으로 넘어간 직후, 격랑의 시대를 다루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그 같은 정치상황을 병풍처럼 두르기만 할 뿐 전면에 내세우지 않음으로 해서 오히려 대중적 성공을 거두고 있다.

영화 속 몇 가지 장면으로 당시의 역사를 재구성하면 이렇게 된다.

♦ 주인공 남이의 집안은 왜 몰락하는가=영화의 첫 장면은 주인공의 집안이 역적으로 몰려 쑥대밭이 되는 것으로 시작된다. 영화는 관객들로 하여금 이 같은 상황이 왜 벌어지고 있는지 짐작치 못하게 한다. 하지만 이후의 과정으로 볼 때 1623년 인조반정 직후의 상황이라는 것을 알 수가 있다. 인조반정은 서인이었던 이서와 이귀 등이 선조의 자식 가운데 한 명이었던 능양군을 앞세워 일으킨 쿠데타였다. 이 일로 광해군은 일거에 권좌에서 쫓겨난다. 이서 일파와 선조의 제2 정실이자 광해군의 계모였던 인목대비는 광해군을 등에 업고 권력을 휘둘렀던 북인 중 특히 대북파(大北派)를 역적으로 몰아 대대적으로 제거하는데 영화에서 주인공의 집안이 바로 이 파벌에 속하는 권세가였던 셈이다.

대북파는 광해군의 치적 중 가장 뛰어난 것으로 꼽히는 자주 북방외교의 중심 세력이었다. 당시 중국은 명 왕조가 쇠퇴하고 만주를 기반으로 하는 후금 세력이 새로운 패자로 등장하던 때였다. 광해군은 밑으로는 일본 도쿠가와 이에야스 정권과 화의를 하고 북으로는 명-후금과의 균형 외교를 통해 나라를 지키려 했는데 이 같은 외교술을 실행해 나가던 것이 대북파였다. 하지만 조정의 서인과 남인(당시 조정은 서인-동인으로 나뉘었다가 다시 동인이 북인과 남인으로 갈라서고 또 북인은 대북파와 소북파로 나뉘던 복잡한 시기였다. 역사적 인물로 잘 알려진 이항복 등은 서인이었으며 <홍길동전>으로 이름을 떨친 허균은 북인 소속이었다.)은 끊임없이 명에 대한 사대주의적 외교론을 주창, 끝내 광해군을 몰아내고 역사를 퇴행시킨다.

천신만고 끝에 대참사에서 목숨을 건진 남이(박해일)가 잔혹하게 참수된 아버지의 지시에 따라 찾아 간 한 토호(이경영)의 집에서 그를 처음으로 대면하는 장면은 이 영화가 당시 역사에 대해 어떤 입장을 가지고 있는 가를 짐작케 한다. 토호는 묻는다. 죽어간 니 애비가 생전에 남긴 말이 무엇이더냐? 남이가 대답한다. 외교를 모르는 인사들이 조정을 장악하니 이 나라가 곧 전쟁의 나락으로 떨어지게 될 터, 그것이 큰 걱정이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아니나 다를까. 오로지 명나라를 바라보고 살던 조선의 조정은 곧 후금의 침략으로 아수라장으로 변한다. <활>은 바로 그 과정을 따라간다.

♦ 남이의 누이 자비가 서군과 혼사를 맺을 때 마을을 침략한 군사는 어디 소속인가=영화 <활>은 1627년 후금의 1차 침략과 1636년 청으로 국호를 개칭한 후금의 제2차 침략을 의도적으로 뭉개서 하나의 사건으로 묶어 놓는다. 서사 구조로 볼 때 영화 속에서 벌어지는 전투의 과정은 병자호란이 아니라 후금의 침략으로 벌어진 일들이다. 당시 후금은 여진족의 전설적인 장군이자 지도자였던 누루하치가 사망한 직후 그의 넷째 아들인 홍태시가 전권을 잡았을 때이다. 홍태시는 조선 정벌을 주창하던 호전적인 인물이다. 서쪽의 명을 치기 위해서는 동쪽의 조선 정벌이 필수적이라는 것이다. 영화에서 토호의 마을을 공격하는 쥬신타(류승룡) 부대는 후금의 왕자를 모시고 있으며 이 왕자는 누루하치의 십수명 아들 가운데 한명으로 보인다. 쥬신타 부대는 여진족이 자랑하는 8기군 가운데 하나로 침투, 침략에 능한 유격대였다.

영화에서 토호 집안의 외곽에 있던 조선 수비대가 전투 한번 제대로 못하고 맥없이 성을 내주게 되는 장면은 지나치게 허술해 보인다. 하지만 당시 후금과의 전쟁을 앞둔 시기에 조선 군대의 주요 전술은 진지 방어전이었다. 침투전에 능한 후금에 비해 조선 군술은 취약할 수밖에 없었으며 의도했는지의 여부는 확실치 않지만 영화는 바로 그 점을 올바로 묘사하고 있다.

쥬신타 부대의 약탈 후 자비(문채원)와 서군(김무열)을 비롯한 마을 사람들 대부분이 오랏줄에 묶여 압록강을 건너 끌려가는 장면이 나오는데, 이는 포로를 자국의 군사로 활용해 전투력을 증강시키려 했던 후금의 전술에서 나온 것이다. 영화 <활>의 설정, 곧 하나밖에 없는 혈육의 누이가 죽지 않고 포로로 끌려 가고 그녀를 구출하기 위해 주인공이 후금 부대의 뒤를 좇는 이야기 구조는 이 같은 역사적 맥락에서 비롯된 것이다.

만약 영화 <활>이 지나치게 역사적 사실에 매여 있었다면 오히려 이야기의 긴장감을 높이지 못했을 것이다. 역사적 맥락을 잘 알되, 그것을 앞에 두기 보다는 의도적으로 뒤에 배치시킴으로써 영화 <활>은 자신이 내세우고 있는 주요 테마, 곧 ‘추적’의 드라마를 완성도 있게 구축하는데 성공했다. 그런 측면에서 봤을 때 영화 <최종병기 활>은 영리한 기획의 승리다. 상업영화라면 무엇을 포기하고 무엇을 윤색하며, 무엇을 강조해야 하는지를 잘 알아야 한다. <최종병기 활>이 파죽지세의 흥행세를 보이는 것은 그 때문이다.


칼럼니스트 오동진 ohdjin@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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