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번 여름, 아니 올해 가장 주목할 만한 예능 ‘바벨 250’

[엔터미디어=김교석의 어쩌다 네가] 업무상 국내에서 방영하는 대부분의 예능, 쇼 프로그램을 시청하는 까닭에 볼만한 TV 예능을 추천해달라는 부탁을 종종 받는다. 최근 그럴 때마다 자신 있게 소개했던 프로그램이 지난 27일을 끝으로 종영한 tvN의 <바벨 250>이었다. 새로운 물결이 잦아든 올해 예능판에서 <바벨 250>은 가장 주목할 만한 실험이자 가장 다음주가 궁금한 커뮤니티였다. 순간 포착과 일상의 관찰이 중요한 관찰형 예능에서 말이 통하지 않는 멤버들이 6개 국어 동시통역사군단의 도움을 받아 함께한다는 설정이 흥미로웠고, 예능은커녕 한국조차 낯선 7개 국적의 다른 문화권에서 살아온 청춘들이 남해의 청정 시골마을에서 쌓은 우정과 추억을 바라보고 있는 것만으로도 따뜻해졌다. 재밌다기보다 더 정확하게 이들을 바라보고 있으면 행복했다.

<바벨 250>의 특별함은 그간 예능에서 전혀 시도하지 않은 언어와 공동체를 주제로 삼은 기획의도에서부터 나타난다. 목적의식을 가진 예능도 흔치 않은데 민속지학적인 실험을 관찰형 예능 형식으로 풀어냈다. “말이 통하지 않는 사람들이 한 공간에 모여 산다면 어떤 일이 일어날까?” “말이 통하지 않는다고 소통도 불가능할까?”라는 의문에서 출발해 한국어, 중국어, 불어, 태국어, 스페인어, 포르투갈어, 러시아어를 쓰는 청춘들이 그들만의 글로벌 공통어, 즉 바벨어를 제작하는 것을 목표로 남해 다랭이 마을에 모았다. 영어 사용은 금지됐다. 따라서 이름을 묻는 등의 간단한 의사소통도 안 되는 상황에서 4~6일 일정의 촬영을 3회 진행하며 총 90일간의 제작 기간을 거쳐 12주간 방영하는 동안 175개 바벨어와 그들만의 삶의 규칙을 만들어갔다.

그러나 안타깝게도 언어적 실험과 예능의 만남이 좋은 성적을 내진 못했다. 아무래도 함께 합숙하는 촬영 기간이 언어를 만들고 일상에 접목하기엔 짧았던 탓에 프로그램의 간판인 바벨어 제정과 사용이 원활하지 않았다. 기획의도와 예능적 재미 사이의 거리가 생긴 것이다. 그리고 보다 완벽한 실험을 위해 기존 예능의 캐스팅 법칙과 철저히 거리를 둔 까닭에 전무하다시피 한 인지도의 한계를 넘어서지 못했다. 포인트는 여기다. 예전 CF에서 어느 건강보조식품 회사 사장님이 말한 것처럼 한 번 맛보면 재미를 느낄 수 있는데 바벨어로는 이 프로그램이 가진 재미와 신선한 맛을 알리고 설득하기가 부족했다.



정의하자면 <바벨 250>은 한국어는커녕, 한국에 대해서 전혀 모르는, 나아가 서로서로 이름부터 배경까지 아무것도 모르는 다국적 청춘들이 모여 살면서 벌어지는 관찰형 예능이다. 이 프로그램의 정수는 의도했던 것과 달리 언어가 아니었다. 각기 다른 문화권에서 온 멤버들은 말도 안 통하는 건 물론, 서로에게 축적된 상대방에 대한 정보가 전혀 없는 모든 것이 리셋된 세상에서의 만남이었다. 언어가 안 통하니 바디랭귀지를 사용하게 되고 그러다보니 서로를 더 자세히 들여다보고 이해하려고 하고 배려를 했다. 편견도, 선입견도, 언어가 아니라 사람 대 사람으로 마음을 들여다보고 마음을 사기 위해 노력했다. 재미와 따뜻함은 여기서부터 피어올랐다.

이는 시청자 입장에서도 마찬가지다. 인지도가 아예 없는 출연자들로만 구성되어 있다 보니 시청자들도 마음을 열고, 모든 걸 새롭게 알아야 하는 색다른 경험에 동참해야만 즐거움과 행복의 티켓을 거머쥘 수 있다. 이기우는 첫 예능 고정 출연이었고 안젤리나만이 SNS상에서 스타였을 뿐 나머지 멤버들은 한국 자체가 처음이었다. 파업의 아이콘 파리지엥 니콜라, 여성 상위 문화가 상식인 베네수엘라의 미쉘, 브라질 남자 특유의 낙천적인 유쾌함으로 최다 분량 소유자 마테우스는 전혀 새로운 얼굴과 캐릭터였다. 안젤리나, 천린 등 여성 출연자의 미모에서 시작된 작은 관심은 소통에 필요한 것은 언어가 아닌 마음임을 확인하는 것으로 이어졌다.



<바벨 250>은 말은 안 통하지만 마음이 열려 있는 사람들이 모여 있는 공간이자 각자 자신의 삶을 치열하게 살아가는 청춘들이 일상을 내려놓고 함께한 추억과 선한 마음이 남는 따뜻한 예능이다. <삼시세끼>가 아재들의 민박이라면 <바벨 250>은 여름밤 청춘들의 캠핑 같다. 약간의 흥분, 조금의 설렘이 감도는 가운데 실제로 우정부터 사랑까지 캠핑에서 있을 법한 감정과 상황들이 이뤄지기도 했다. 인지도 문제, 무자극성의 한계를 겪긴 했지만, 예능 자체로 놓고 봤을 때도 저돌적으로 실험하는 와중에 나영석 사단만큼이나 캐릭터를 잘 살려서 시청자들이 충분히 애정을 느낄 수 있게 한 잘 만든 관찰형예능이다.

매우 도전적이고 실험적이었지만, 그 어떤 예능보다 따스하고 정이 넘친다. 7개국 청춘들이 서로를 위하고 의지하는 모습을 가만히 지켜보면 왠지 모를 흐뭇한 미소를 짓게 될 것이다. 한여름을 함께한 바벨인들의 여정은 이제 마쳤지만, 혹시 아직 <바벨 250>을 보지 못한 분들은 다시보기를 통해서라도 지난여름 따뜻하고 설레는 바벨인들의 이야기를 한번 지켜보길 추천한다. 노파심에 한마디. 마음을 열어라. 혹시 관심이 안 가고 취향에 안 맞는 것 같더라도 최소 4회까지 지켜보고 판단하길 바란다.

칼럼니스트 김교석 mcwivern@naver.com

[사진=tv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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