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섹시 가수들, 이효리 빈틈을 노려라

[서병기의 프리즘] 이효리는 요즘 가수 활동을 하지 않고 있다. 이효리는 유기견을 보호하는 데 앞장서며 인도의 극빈층 아동을 돌보기도 했다. ‘1박2일’에도 나온 애견 백통이를 잃어버려 힘들어하는 엄태웅에게 “나도 울고싶다”는 글을 남겼다. 이효리는 표절의 여파가 아직도 작용해서 그런지는 몰라도 최근에는 소셜테이너로서의 행보를 보이고 있다.
 
이효리는 그동안 섹시함과 털털함, 이 두 가지를 가지고 섹시 아이콘의 정점에 올랐다. 그런데 요즘은 이효리가 개점 휴업상태인데도 그 자리의 주인은 쉽게 나오지 않고 있다. 한마디로 섹시한 여가수는 무주공산이다.
 
섹시한 이미지는 잘못 사용하면 득보다 실이 많다. 자칫 부담스럽고 저렴하게 보일 수도 있다. 특히 걸그룹은 귀엽고 상큼 발랄한 이미지를 추구할지언정 섹시미를 인위적으로 강조하다가는 역공을 맞을 우려도 있다.
 
하지만 국내에 섹시한 여가수가 없는 건 아니다. 손담비, 서인영, 채연, 아이비 등이 섹시한 컨셉을 활용해 부분적이나마 제법 큰 성공을 거두기도 했다. 하지만 이들이 섹시미를 전면에 내세워도 이효리만큼의 효과를 보지 못했다.
 
걸그룹 포미닛의 멤버이자 솔로로도 활동하는 현아는 이효리와는 다른 느낌이지만 국내 섹시 아이콘 시장에 깜짝 카드가 될 것으로 기대됐다. 하지만 현아의 경우는 심의, 검열의 외압이 작용했다. 다른 사람보다 더 섹시하고 야해보인다는 게 걸림돌이 돼버렸다. 억울할 수 있다.
 
하지만 야한 농담을 해도 신동엽이 하면 봐주지만 유재석이 하면 과하다고 받아들일 수 있음을 생각할 필요가 있다. 받아들이는 맥락이 다르기 때문이다. 그래서 유재석은 야한 농담을 정리해줄지언정 먼저 ‘섹드립’을 치지는 않는다.
 
이효리의 섹시미에 따라붙는 경쟁력은 자연스러움, 즉 잘 어울린다는 점에서 나온다. 예능에서는 털털한 누이 같은 모습을 보여주다가 무대에서는 ‘유고걸’로 섹시한 카리스마를 연출했고, 이 두 이미지를 자연스럽게 넘나들 수 있다는 점이 매력이다. SBS의 장혁재 PD는 “이효리는 섹시함과 털털함을 잘 배분하는 것 같다. 노래할 때는 섹시한 카리스마를 뿜어내다가 예능에서는 섹시함속의 털털함을 시청자들에게 보여줘 편안하게 다가간다”고 설명한 적이 있다.
 


이효리는 자신의 섹시미에 대해 자신감을 지니고 있다는 점도 큰 강점이다. 노골적으로 섹시함을 자랑하는 게 아니라 섹시미를 체득한 데서 오는 여유 같은 것을 보여준다.
 
우리의 섹시미는 변주 허용 폭이 그리 넓지 않다. 이 점이 후배 가수들이 이효리 이후 섹시한 가수로서의 매력을 충분히 발산시키지 못하는 한가지 이유가 되기도 한다. 가령, 마돈나처럼 섹슈얼리티의 성적 도발을 감행하거나 난해한 콘셉트까지 선보이는 레이디 가가조차도 섹시미의 장르나 변주의 허용 폭이 유연해 개성으로 인정받을 수 있는 여지가 많지만 한국은 아직 그렇지 못하다.
 
하지만 섹시 아이콘이 되면 시장가치가 크게 높아진다. 섹시 가수로 성공하기 위해서는 자신만이 가지는 개성을 섹시미로 체득하는 것은 기본이며 노래를 잘 부른다면 금상첨화다.
 
섹시한 여가수가 노래를 잘 부른다면 매우 큰 경쟁력이 나온다. 아이비가 고양이의 앙칼진 모습을 연상시킨 2집 타이틀곡 ‘유혹의 소나타’로 활동할 때 약간 그런 가능성을 보였었다. 하지만 가창력과 섹시한 느낌을 갖추고도 트렌드세터로서의 존재감과 이를 자연스럽고 능동적으로 소화해내는 끼는 약했다.
 
요즘 노래 잘부르는 아이돌 가수에 대해 칭송하는 분위기가 형성되고 있다. ‘불후의 명곡2’의 효린은 이 분위기의 최대 수혜자다. 마찬가지로 노래 잘부르는 섹시 디바 역시 대접받는다. 솔로가수로서 현아가 ‘버블팝’을 부를 때는 보컬이 조금 더 드러났어야 했다는 아쉬움이 남는다. 이 쪽이 선수층이 얇기 때문에 의외로 블루오션일 수도 있다.
 

칼럼니스트 서병기 <헤럴드경제 기자 >wp@heraldm.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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