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살림하는 남자들’, 살림을 사는 게 예능이 되는 남자예능의 씁쓸함

[엔터미디어=TV삼분지계] ◾편집자 주◾ 하나의 이슈, 세 개의 시선. 각자의 영역을 가지고 대중문화와 관련된 글을 쓰고 있는 정석희·김선영·이승한 세 명의 TV평론가가 뭉쳐 매주 한 가지 주제나 프로그램을 놓고 각자의 시선을 선보인다. 엔터미디어의 [TV삼분지계]를 통해 전문가 세 명의 서로 다른 견해가 엇갈리고 교차하고 때론 맞부딪히는 광경 속에서 오늘날의 TV 지형도를 그려볼 수 있는 단초를 찾으실 수 있기를.

나라가 이 모양이어도 누군가는 살림을 한다. 어쩔 수 있나. 가만히 집안에 앉아만 있어도 빨랫감이 쌓이고 밥은 먹어야겠고 먹은 그릇은 씻어야 하는데, 하물며 밖에서 옷에 촛농이라도 묻혀오면 그 뒷수습도 해야 할 것 아닌가? KBS 2TV에서 새로 시작한 <살림하는 남자들>은 육아(MBC <아빠, 어디가?>, KBS2 <슈퍼맨이 돌아왔다>)와 요리(tvN <집밥 백선생>)에 이어 가사에 도전하는 기혼남들에게 카메라를 들이민다. 원래 여성의 영역인 게 당연한 것처럼 취급받던 영역이 하나 둘 씩 남성도 함께 해야 하는 영역인 것으로 자리 잡는 과정의 일환일텐데, 멤버들 살림살이는 그렇다 치고 프로그램의 살림살이는 잘 꾸려지고 있을까? 각자 제 몫의 가사노동을 하며 살고 있는 [TV삼분지계]의 세 평론가가 들여다봤다.



◆ 남자들의 또 다른 ‘체험 여성 삶의 현장’

육아, 요리에 이어 이번엔 가사다. 주로 여성들의 의무로 여겨지던 분야에 도전하는 남자들의 예능이 점점 영역을 확장 중이다. 특히 가사노동예능은 기존의 남자 육아, 요리 예능이 정작 그보다 힘든 빨래나 청소 같은 분야는 도외시한다는 지적을 보완한다는 점에서 의의가 있다. 첫 회부터 화제를 모은 봉태규 같은 경우는 이미 ‘도전’이나 ‘의의’의 차원도 뛰어넘었다. ‘살림은 도와주는 게 아니라 같이 하는 것’이라는 발언과 능숙한 살림꾼의 면모는 ‘집밥이 곧 엄마, 아내의 손맛’이라는 프레임을 깨는 데 지대한 공헌을 했던 백종원 못지않게 남성 선구자로 평가 받을 만하다.



하지만 한 발 떨어져 보면 이 방송 역시 남자들의 또 다른 ‘체험 여성 삶의 현장’에 지나지 않는다. 여성들에겐 일상적인 노동이 남성들에게는 예능의 소재가 될 수 있다는 것부터가 씁쓸하다는 기존의 비판을 벗어나지 못하는 것이다. 이러한 예능들은 일차적으로는 고정된 성역할의 경계를 허무는 긍정적 효과도 있지만, 남성들이 지배하는 예능계의 전체적 맥락에서 보면 여성의 소외를 더욱 공고히 할 뿐이다.

당장 이 프로그램에 ‘구색 맞추기’식으로 등장하는 윤손하의 활용이 그렇다. 그녀는 직업 배우임에도 단지 기혼여성이라는 이유만으로 ‘살림 전문가’의 입장에서 남성 패널들의 살림솜씨를 평가하는 역할을 요구받고, 때로는 ‘저만큼 할 수 있느냐’면서 오히려 검증 대상이 되기도 한다. ‘살림이란 작은 관심’이라는 한참 부족한 말로도 박수 받는 남자들의 예능을, 온종일 가사노동에 지친 여성들이 밤 11시까지 기다려줄지 의문이다.

칼럼니스트 김선영 herland@naver.com



◆ 중요한 것은 변화, 진화, 개화

과거 남자 종을 일컫는 노(奴)에 마음 심(心)을 더하면 ‘노하다’는 뜻을 지닌 노(怒)가 된다. 누가 시켜서 하는 일은 그만큼 마음이 편치 않다는 얘기다. 해도 해도 끝도 없고 표도 안 나고, 손을 놓으면 대번에 티가 나는 살림. 공들여 청소를 해놔도 반나절 안에 다시 매연에 찌든 먼지가 앉는가하면 잠깐 사이 설거지가 쌓이고, 분리수거거리는 방심했다가는 감당을 할 수 없게 불어나 버린다. 살림을 재미있어서 하는 사람도 있겠지만 수십 년을 해도 제자리걸음인 사람도 있다. 제각기 능력치가 다르기에 누가 더 하느냐 덜 하느냐를 두고 왈가왈부할 필요도 없고 뭘 잘 못한다고 해서 나무랄 일도 아니다.



KBS2 <살림하는 남자> 첫 회에서 봉태규는 ‘살림은 도와주는 것이 아니라 함께 하는 것’이라는 개념 발언으로 칭찬을 받았다. 옳다. 그러나 살림에 정답은 없다. 어차피 가족이란 개념도 달라졌고 따라서 협업과 분업을 통해 함께 사는 구성원들이 마음 편하면 되는 것. 언젠가 한 요리 프로그램에서 성시경이 ‘요리의 완성은 설거지’라는 명언을 남겼다. 하지만 요리는 좋아하나 뒤처리는 질색인 사람도 있지 않나. 요리를 잘 하면 요리를, 청소를 잘 하면 청소를, 분리수거에 자신이 있으면 쓰레기를 전담하면 된다. 어쨌든 혼자 산다면 또 모를까 ‘살림맹’이 되어서는 곤란하다. 같이 기거하는 누군가의 마음에 ‘노’(怒)가 소복소복 쌓이기 때문이다. <살림하는 남자>, 중요한 것은 변화다. 김승우가 어떻게 진화할 것인가, 김일중이 어떻게 개화할 것인가. 이제 시작이니 시간을 두고 지켜보자.

칼럼니스트 정석희 soyow59@daum.net



◆ 살림이 낯선 남편들을 위한 [TV유치원 하나둘셋]

가사노동을 조금이라도 해 본 사람들은 안다. 이처럼 노력 대비 티도 안 나고 칭찬해주는 사람도 없는 노동이 드물다는 것을. 그래서 <살림하는 남자들>을 보고 있노라면 조금은 기분이 이상해진다. 한꺼번에 가스렌지 3구를 사용하며 요리를 해치우는 봉태규의 살림 노하우나 치밀하게 분리배출을 하는 문세윤의 꼼꼼함은 보는 것만으로도 기분이 경쾌해지지만, 다 보고 나면 그 일을 수십 년째 어떤 칭찬도 보상도 없이 일상적으로 해오고 있는 어머니 세대의 여성들 생각이 먼저 나는 것이다. 저 이들은 왜 이리도 일상적인 노동을 수행하는 것만으로도 칭찬을 받고 예능의 소재가 되는 거지?



이것이 <살림하는 남자들>의 난처함이다. <살림하는 남자들>의 실체는 김승우처럼 마음만 앞서는데 실제 결과물이 그에 안 따라주는 남편이나, 김일중처럼 마음도 별로 없고 결과물은 참담한 남편들을 하나부터 열까지 차근차근 교화시키는 일종의 교육 프로그램이다. 이를테면 양치하는 법만 잘 익혀도 “우리 친구 참 잘 했어요.”를 연발해야 하는 [TV유치원 하나둘셋] 같은. 프로그램은 김승우와 김일중의 시선에서 봉태규나 문세윤을 ‘별나고 뛰어난 존재’로 몰아갔다가, 이내 ‘살림은 도와주는 게 아니라 같이 하는 것’이라는 봉태규와 일상적인 노동을 당연하게 수행하는 문세윤의 모습에서 감화받는 식의 문법을 고수한다. TV 앞에 앉아 “저거 봐, 남자들은 다 저렇다니까?”라는 뻔한 항변과 “요즘 남자들은 안 그렇거든?”이라는 반론을 주고받을 부부의 대화 호흡을 노린 설계다.

프로그램을 통해 실질적인 변화를 일으켜야 하는 타겟 시청자가 김일중처럼 살림은 전혀 안 살아 보고 양말은 아무데나 벗어놓는 남자들이니, 마냥 손가락질을 하면 따라오지도 않을테고 어떻게든 어르고 달래며 함께 가보자고 청유해야 하는 것이다. 일상적으로 살림을 사는 이들이 보기엔 유난스럽지만 어쩌겠는가. 상대는 고추를 사오랬더니 어느 고추를 사야할지 몰라 종류별로 다 사오는 김일중인데.

칼럼니스트 이승한 tintin@iamtintin.net

[사진=KB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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