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홍상수의 신작 ‘북촌방향’, 호평 쏟아지는 까닭

[엔터미디어=오동진의 영화가이드] 작품이 더해 갈수록 내면의 심도가 남달라지는 홍상수 감독의 13번째 신작 <북촌방향>은, 언제나처럼, 내용의 발칙함이나 회피하기 어려운 ‘까발림’ 때문에 눈이 가는 영화가 아니다. 이번 작품은 좀 다르다. 많이 다르다. 홍상수는 이번 <북촌방향>에서 기성의 내러티브를 의도적으로 파괴하고 새로운 이야기 구조를 전개함으로써 스타일의 실험을 감행한다.

<잘 알지도 못하면서>에서 <하하하> <옥희의 영화> 등등 이어지는 전작 모두 홍상수는 매번 동네 한 바퀴를 뺑뺑 도는 듯이 보이지만 이번 영화를 통해 그의 작품이 갖고 있는 반경의 범위가 이미 놀랄 만큼 다양해져 있음을 알 수 있게 된다. 단지 그 원이 넓어지는 것만이 아니다. 원의 지름은 때론 턱없이 길어지고, 길어졌다 싶을 때쯤 갑자기 톡, 짧아진다. 홍상수의 이야기가 갖는 신축성은 이제 따라가기가 힘이 들 정도다. 게다가 이번 <북촌방향>에서 홍상수는 아예 자기가 지니고 있는 원형의 구조를 파기하고 네모나 세모꼴의 이야기를 만들려고 하는 것처럼 느껴진다.

<북촌방향>의 핵심은 의도적인 반복과 중첩이다. 기억과 욕망은 중첩된다. 영화는 내내,하나의 에피소드를 계속해서 복사하듯 반복하는 것 같지만 자세히 살펴보면 전혀 다른 이야기임을 알 수 있다. 영화 속의 시간도 마치 살바도르 달리의 녹아 흐르는 시계처럼 앞뒤가 흐트러져 있다. 밤은 갑자기 낮으로 바뀌고 혹은 밤이 밤으로 대체되며 그러다가 뜬금없이 다시 아침으로 돌아 온다. 마구잡이로 장면들을 찍어 대책없이 편집을 해 놓은 것 같지만 영화를 보는 중간쯤 그게 감독의 절대적 의도인 것처럼 느껴져 무릎을 치게 된다.

사실 시간이 계기적으로 흐른다는 것 역시 고정 관념이다. 사람들이 자신의 과거나 가까운 현재 혹은 미래를 그릴 때면 시간의 장벽은 여지없이 무너지게 된다. 마음 속의 기억은 시간에 따른 순서가 없는 법이다. 한 공간에서, 마치 우주평행이론처럼, 여러 일들이 동시에 진행되기도 한다. 그런데 그 무질서의 순간들은 욕망의 농도에 따라 순서가 정해지게 된다. 무엇을 먼저 하고 싶어 했는가야 말로 무엇을 먼저 기억하고, 그 메모리의 파편들을 왜곡시키며, 그래서 결국 이야기를 완전히 다른 것으로 바꾸게 만드는 요소다.

이 영화의 주인공 성준(유준상)이 늘 같은 공간, 곧 북촌을 맴도는 것은 그 때문이다. 그 과정에서 그는 때론 혼자일 때도 있고, 때론 둘일 때도 있으며, 어떤 때는 셋 혹은 넷이 합을 이룬다. 그러나 테마는 같다. 욕망의 뿌리를 찾아 헤매는 것, 바로 그것이다. 성준의 모습을 보고 있으면 인간의 마음 속에 담겨 있는 것은, 그 외피가 어떠하든, 곧 지식인이든 아니든, 혹은 그 무엇이든 추악하기 이를 데 없으며 욕망이란 전차를 따라 잡기 위해 허덕대고 있을 뿐이라는 것을 깨닫게 된다.

주인공 성준은 지방대학에서 교수를 하고 있는 전직 영화감독이다. 전직이라고하기까지는 뭣하지만 아무튼 현재는 영화를 찍고 있지 않다. 짐작컨대 성준은 지금껏 네 편 정도의 영화를 만들었으며 모두 비상업영화였고, 흥행은 한편도 되지 않았지만 오히려 그 때문에 마니아급의 소수 팬들을 거느리고 있는 상태다. 이야기는 성준이 오랜만에 서울에 올라와서 친하게 지내는 선배 영호(김상중)를 만나려는 데서 시작된다. 성준의 북촌기행은 그렇게 딱 한 줄로 밖에 설명되지 않는다. 나머지는 파편처럼 보인다.

영호를 만나기 전, 성준은 영화과에 다닌다는 학생 셋과 술을 마시기도 하고, 2년 전에 잠자리를 같이 했던 제자 혹은 자신의 영화 스태프(김보경)를 찾아 가 다시 섹스를 나누기도 하며, 드디어 영호를 만나고 난 후에는 그가 정말 아끼는 후배라는 여교수(송선미)와 함께 북촌 카페 ‘소설’에서 술을 마시기도 하는데, 급기야는 카페 여주인(1인2역의 김보경)에게 어떻게든 접근해서는 결국 그녀를 품안에 끌어 들이는데 성공한다. 그 사이사이에는 성준의 첫영화에 나왔던 배우(김의성)를 만나기도 하고, 자신을 흠모하는 연출 지망생과 계속해서 부딪히기도 한다. 그리고 다분히 별 기억에 남지 않을 사람들, 또 다른 감독(백종학)과 음악감독(백현진), 중견 연기자(기주봉), 아마추어 사진작가(고현정) 등과의 조우도 계속된다.

반복되는 카페 ‘소설’에서의 음주 장면이 압권이다. 이 장면은 도합 세 번이 반복되는데 상황 설정은 거의 비슷해 보인다. 인물이 세 명이었다가 네 명으로 다시 세 명으로 바뀔 뿐이다. 실제로 성준이 ‘소설’에서 함께 술을 마신 것은 누구일까. 어떻게 된 것일까. 이것은 현실인가 아니면 성준이 기억 속에 재배치 시켜놓은 환상에 불과한 것일까. 분명한 것은, 성준은 반복되는 상황 속에서도 일관되게 한쪽 방향을 향하여 움직이고 있다는 것이다. 삶의 동인은 욕망이다. 그 비루한 실체를 드러내지 않기 위해 기억은, 때론 사람의 이성은 이렇게 저렇게 껍데기를 씌우게 할 뿐이다.

<북촌방향>으로 홍상수는 스스로가 관념철학의 대가급으로 나아가고 있음을 보여줬다. 그의 영화가 좋든 싫든, 홍상수는 사람들로 하여금 생각하게 만든다. 그런데 그 생각의 대상이 세상이나 사물, 사회, 지구, 인류 같은 것이 아니다. 바로 자신 스스로의 마음 속 심연을 들여다 보게 만든다. 생각해 보면 뒤의 것이 앞의 것보다 더 깊고 어둡다. 홍상수는 의도적으로 세상을 바라보는 창문에 커튼을 드리운다. 세상은 절대 바뀌지 않으며 세상이 바뀌었다고 착각하는 것뿐이라고 얘기한다. 우주는 내 마음 속에 있다. 홍상수가 찾으려는 진리가 우리와 매우 다르면서 결국 우리와 같다고 느끼는 건 그 때문이다.


칼럼니스트 오동진 ohdjin@hanmail.net


[사진=영화 ‘북촌방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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