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엔터미디어=백우진의 잡학시대] 이탈리아 남자를 만나서는 축구 얘기를 꺼내지 말라고 한다. 당신은 본론을 꺼내지도 못한 채 앉은 시간 내내 ‘축구의 이론과 실제’를 주제로 한 강연을 듣게 될 공산이 크다.

마라톤을 좋아하는 사람에게 달리기를 물어보는 일도 삼갈 일이다. 그 단조로운 운동에서 그토록 많은 이야기가 비롯된다는 사실에 당신은 놀랄 것이다.

아마추어 마라토너의 말을 다 듣고 헤어진 다음 집으로 돌아오는 길에 당신은 비로소 깨닫게 되리라. 무라카미 하루키가 왜 그 책을 썼는지. 『달리기를 말할 때 내가 하고 싶은 이야기』 말이다.

무라카미는 오래 달리기를 좋아한다. 그리고 예의 바른 사람이다. 그 책을 쓴 사실로도 그의 됨됨이를 짐작할 수 있다. 무라카미는 주위 사람들에게 달리기 얘기를 몹시 하고 싶어졌다.

그러나 세상은 두 부류의 인간으로 나뉜다. 달리는 사람과 달리지 않는 사람. 후자의 뇌는 달리기 화제가 10분 이상 이어지면 가수면 상태에 접어든다. 사람 좋은 무라카미는 그 상황을 피하고 싶었다. 그런데 달리기에 대해 하고 싶은 얘기는 계속 쌓여만 갔다. 이 책은 그래서 나오게 됐다, 고 나는 추측한다.

맨발 달리기에는 당연히 마라톤보다 훨씬 많은 얘기가 담겨 있다. 그러니 당신은 맨발로 달리는 사람을 조심해야 한다. 그를 만나 이야기를 나누게 되더라도, 예의상이라도 맨발 달리기에 대한 관심을 표명해서는 안 된다. 당신이 얘기를 들으려는 자세를 취하자마자 그는 이야기 보따리를 하나씩 풀어놓을 것이다. 후회는 때늦다. 당신은 한 시간 이상 맨발 달리기 강연을 들을 것이다. 시간 제약이 없다면 그는 세 시간까지 말을 이어갈지도 모른다. 풀코스를 달리는 체력으로.

따라서 당신은 나 같은 ‘맨발의 아베베’ 추종자를 만나게 되면, 정중하되 단호하게 말해야 한다. “감사하지만 그 얘기는 다음에 듣겠습니다. 다음에 말씀해 주시면 잘 듣겠습니다.”

나는 올해 광복절부터 맨발 달리기에 합류했다. 새는 날고 물고기는 헤엄치고 사람은 달린다. 사람은 원래 맨발로 달렸다. 당신은 물어볼 것이다. “처음엔 옷도 안 입었잖아? 좋은 신발을 왜 벗어야지?” 당신은 벌써 낚였다. 맨발 달리기에 비판적이지만 아무튼 관심을 드러냈으니 말이다.

그러나 나 또한 예의를 차리는 사람이다. 맨발 달리기 얘기는 글로 쓸 생각이다. 인류의 기원으로부터 시작해 발에서 끝나는 아주 긴 스토리다. 이달 하순에 나오는 월간중앙 10월호에서 읽으시길.


칼럼니스트 백우진 <이코노미스트 전문기자> cobalt@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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