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배틀 트립’, 이 성의 없는 진행을 왜 애꿎은 시청자가 감수해야 하나

[엔터미디어=정석희의 TV 돋보기] 부스스해진 머릿결, 뭘 사용하면 윤기가 되살아날까? 발 각질 제거 팩이 있다는데 진짜 효험이 있으려나? 그러다 괜스레 피부나 상하는 건 아닐까? 뷰티에 관한 의문이 생기면 방송인 김정민에게 묻고 싶어진다. 어쩐지 정답을 알려줄 것 같아서. 5년이 넘게 뷰티 프로그램 On Style <겟잇 뷰티>에 참여해 끊임없이 노력해왔으니 아마 전문가들 못지않은 정보력을 지녔을 게다.

그런가하면 건강 문제라면 전 아나운서 정은아를 떠올리게 된다. 건강 정보 프로그램 KBS <비타민>을 10년 가까이, 그리고 연이어 채널A <나는 몸신이다>를 수년 째 진행해왔기 때문이다. 뿐만 아니라 맛 프로그램의 원조인 SBS <결정 맛 대 맛>으로 쌓은 식재료에 관한 지식도 상당할 터, 소소한 의학 상식을 넘어 명의, 적절한 민간요법 등 어지간한 궁금증이라면 즉시 해소해주지 않을까?

또한 남희석은 채널A <이제 만나러 갑니다>를 2011년부터 진행해오는 사이 새터민에 관한한 독보적인 전문성을 갖게 됐다. 진행자로서의 덕목이 소통을 위한 적당히 얕고 폭넓은 지식이라지만 연륜에 의해 깊이가 더해지다 보면 어느새 신뢰감이 따른다.

맛 정보 프로그램의 백종원과 음악 프로그램의 성시경처럼 자신의 본업을 기반으로 진행에 뛰어든 이들도 있다. 백종원이야 자타공인 맛 프로그램을 위해 준비된 인물이겠고 노래 대결 프로그램에서 동료 가수들과의 교감은 물론이고 일반인 참가자들의 곡 해석을 돕고 아우르는 일까지, 그야말로 ‘열일모드’인 성시경. 음악 프로그램에 이보다 최적화된 인재는 없으리라.

이처럼 좋아하는 일, 잘 하는 일에 투입된 진행자와 별 관심이 없는 분야를 맡게 된 진행자는 차이가 있을 수밖에 없다. 잘 모르는 분야를 하나 둘씩 알아가는 과정도 흥미롭겠으나 적어도 메인 진행자라면 큰 그림을 읽을 줄 알아야 하고 그러기 위해서는 많이, 잘 알고자 노력하는 건 기본이 아니겠나.



그런 의미에서 출연자들이 팀을 이뤄 여행지의 다양한 매력과 팁을 소개하는 프로그램 KBS2 <배틀 트립>은 진행이 참 아쉽다. 비슷한 시간대의 SBS <그것이 알고 싶다>에는 못 미쳐도 MBC <마이 리틀 텔레비전> 보다는 높은 시청률이건만 왜 화제성은 떨어질까? 물론 자극성이 없다는 것이 가장 큰 이유일 게다. 그러나 이미 마니아 팬들이 생겨나 ‘배틀 트립 따라잡기’가 이뤄지는 마당에, 소장 가치가 충분히 있음에도 존재 자체를 몰랐다는 이들이 있으니 안타깝지 뭔가. 여행지를 소개하는 부분은 정보와 재미 면에서 손색이 없지만 솔직히 스튜디오 분량은 의문이다.

우선 그 많은 MC들이 굳이 필요한가? 여행 경험이 풍부해보이지도, 딱히 관심들도 없어 보이는데? 그러다보니 기억에 남는 대사 한 마디가 없나하면 신선하지도 유익하지도 않고. 스튜디오 분량만 따로 놓고 보면 별 특색 없는 토크쇼처럼 느껴진다. 시작부터 지금까지 무려 10개월 째 한결같다. 정성스레 음식을 만들었으나 그릇 선택을 잘 못한 경우라면 지나친 비유일까?



얼추 비용을 저울질해도 주체인 여행보다는 스튜디오 쪽으로 기울지 싶다. 그렇다면 배보다 배꼽이 큰 상황이 아닌가. 차라리 아예 스튜디오 분량을 없애거나 아니면 해박한 여행 지식을 갖춘 진행자를 기용해 실전 경험을 나누는 식으로 변화를 주거나, 어떻게든 선택과 집중이 필요하다. 아울러 경비와 일정, 동선 등을 한 치의 오차 없이 ‘배틀 트립 레시피’로 정리한다면 이젠 국민 조리법으로 떠오른 KBS2 <생생정보통> ‘황금 레시피’처럼 얼마든지 사랑 받을 수 있으리라고 본다.

아무리 규모가 작은 회사라도 채용 기준이 전문성과 경험, 열정이라는 건 상식이다. 그런데 왜 방송 프로그램 진행자의 조건은 여전히 인지도와 스타성인지 모르겠다. 배우려 들지 않고 노력하지 않는, 성의 없는 진행을 왜 애꿎은 시청자가, 언제까지 감수해야 하는가.

방송 칼럼니스트 정석희 soyow59@daum.net

[사진=KBS, 채널A, On Style, SB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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