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기적’, 멘토제 부작용의 악몽이 되살아난다

[서병기의 트렌드] SBS ‘기적의 오디션’이 6주간의 생방송 체제가 시작됐다. 지난 9일 12명의 도전자가 연기 대결을 펼쳐 정예진과 김난아가 탈락의 고배를 마셨다.
 
생방송 체제는 몇 가지 허점을 드러냈다. 우선 시간 배분을 제대로 하지 못했다. 이는 김난아의 탈락소감을 듣지 못하고 급히 마무리한 정도의 아쉬움에서 끝나지 않았다. 초반에는 다소 여유있게 진행하더니 중반이후부터는 시간에 쫒겨 시청자들도 숨넘어가는 줄 알았다. 탁재훈과 김소원 아나운서의 진행의 호흡도 맞지 않았다.

심사위원들도 시간에 쫒기는 듯 했다. 심사평을 짧게 곁들이기는 했지만 점수 주기에 바빴다. 마치 실제 오디션하는 장면을 TV로 보여주는 것 같았다. 점수만 준다면 굳이 방송으로 내보내야 될 필요성이 없다. 시청자들과 함께 본 도전자의 연기에 대해 심사위원들이 전문지식을 쉽게 풀어 설명하고 시청자들이 이를 공유하는 지적 재미에 예능적 재미가 곁들여져야 오디션 방송 프로그램으로서의 가치를 지니게 된다. 하지만 심사위원들은 심사평은 없고 점수만 주는 듯한 양상이었다.
 
그나마 시간이 부족한 와중에도 짧게나마 일일히 촌평을 하고나서 점수를 주는 이범수의 심사가 돋보였을 정도였다. 심사위원 김갑수는 도전자의 연기에 대해 흠만 지적했다. “사투리를 왜 그렇게 하는지 모르겠다” “오버한다” “아직도 어색하다”는 식의 평이었다. 흠을 지적해도 상세함이 없고 애매모호하다. 이런 평가는 어떻게 하라는 건지 알기 힘들고 도전자에게 맥만 빠지게 만들 수도 있다.
 
하지만 가장 크게 우려되는 것은 도전자들의 연기를 지도했던 드림마스터들이 12강전의 심사위원으로 그대로 나섰다는 점이다. 김갑수, 이미숙, 곽경택, 이범수, 김정은 등 드림마스터즈 5인은 그대로 심사위원으로 나왔고, 이 프로그램 특별 자문위원인 최형인 한양대 교수만이 마스터즈가 아니었다.
 
자기 제자를 평가하다 보니 객관적 평가가 어려운 것 같았다. 심사위원인 곽경택 감독은 어색한 연기를 보여주었던 자신의 제자 박혜선에게 무려 90점을 주었고, 비교적 연기를 잘한 주희중에게는 75점을 주었다. 주희중은 자신의 스승인 이범수에 의해 95점을 받았다. 반면 이미숙에게는 75점밖에 받지 못했다. 이미숙은 자신의 제자인 김베드로에게 80점을 주었다.
 
이범수는 자신의 제자인 손덕기와 허성태에게 80점과 90점을 각각 주었다. 둘 다 연기가 괜찮았고 허성태는 심사위원 점수 합계에서 12명중 최고점수를 기록했다. 하지만 이미숙은 허성태에게 75점, 손덕기에게는 70점을 각각 주었다.
 
항상 마지막으로 심사를 했던 이범수가 다른 심사위원들로부터 주희중이 계속 박한 점수를 받자 95점을 주며 “오늘은 누구보다 연기잘했다”고 말한 것도 뼈있는 평으로 들렸다.
 
이렇게 점수 차이가 많이 나는 것은 심사위원의 문제라기 보다는 멘토제의 부작용으로 보인다. 멘토가 제자들이 끼어있는 도전자의 심사에 참가함으로써 오디션 프로그램을 객관적이고 이성적인 평가가 이뤄지게 하는 데 방해가 된 것은 이미 ‘위대한 탄생’에서 경험했다.


 
이은미가 자신의 멘티였던 권리세에 대해 끝까지 포기하지 않는 근성에 대해 칭찬하며 보호하려 했던 데 반해 백청강에게는 점수를 짜게 준 게 결과적으로 ‘백청강 팬덤’에 기름을 부은 격이 되었다. 또 자신의 제자에게 짜게 점수를 준 멘토의 제자에게는 인색한 점수를 주는듯한 모습을 목격했었다.

이같은 단점과 폐단을 막기위해 멘토(코치, 드림마스터)와 심사위원은 분리되는 게 좋다. KBS ‘탑밴드’에는 신대철, 김도균, 정원영, 남궁연, 한상원 등 코치들은 선곡과 함께 제자들을 지도하고 경연중에도 옆에서 응원만 할 뿐 심사에는 관여하지 않는다. 16강전부터는 심사위원 외에도 전문심사위원단 20명도 참가하고 있다. 그래서 ‘탑밴드’는 오디션 프로그램중 심사와 관련된 논란이 한 번도 일어나지 않았다.
 
‘기적의 오디션’ 톱12인 중에는 이범수, 이미숙 클래스는 각 3명의 제자가, 김갑수 곽경택 김정은 클래스에서는 2명씩이 포함돼 있었다. 생방송 1차전을 통해 곽경택조의 정예진과 이미숙 클래스의 김난아가 탈락해 곽경택은 1명, 이미숙은 2명으로 줄어들었다. 만약 ‘위탄’처럼 탑4중 무려 3명이 김태원의 멘티들로 진출하는 현상이 나온다면 마스터즈의 심사위원 가담은 더더욱 우려된다.
 
초반부터 제자를 모두 탈락시킨 드림 마스터즈가 기분좋게 “당신의 꿈을 캐스팅하겠습니다” 라고 말하기가 쉽겠는가. 심사는 마스터즈가 아닌 제3의 인물들이 많이 들어오는 게 좋다.
 

칼럼니스트 서병기 <헤럴드경제 기자 >wp@heraldm.com 


[사진=SB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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