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가 ‘허리케인 블루’ 때, 정말 신명을 실어서 했거든요. 그 이후 대중에게 큰 웃음을 주지 못한 것 같아요. 그래서 고민을 좀 하고 있었는데 경규 형님이 그런 말씀을 하셨어요. ‘너 노래 부를 때 보면 정말 신명나게 즐기는 것 같은데 방송할 때도 록을 하듯이 혈기를 담아서 내질러라. 그러면 사람들도 너를 좋아하게 될 것이다‘ 그 이후로 제가 록커처럼 방송을 좀 시원시원하게 해야 되겠다, 그 결심을 한 게 바로 어제거든요, 어제. 그런데 빵빵 질러봤더니 정말 터지네요.”

- SBS <힐링 캠프, 기쁘지 아니한가>에서 이윤석의 한 마디

[엔터미디어=정석희의 그 장면 그 대사] 이번 주 SBS <힐링 캠프, 기쁘지 아니한가>는 추석을 맞아 MC들의 절친을 초대하는 '보고싶다 친구야'편이 마련됐다. 추석 특집답게 김제동이 초대한 ‘비주얼 가수’ 김범수를 비롯하여 만화가 강풀, 한혜진이 초대한 여배우들과 아나운서까지, 무려 아홉 명에 달하는 특급 게스트들이 앞 다퉈 등장했지만 이날의 주역은 단연 이경규의 오른팔을 자처하는 개그맨 이윤석이었다. 방송을 보지 않고서는 믿지 못할 일이다. 항상 뭔가에 눌려 있는 듯 조심스러워 보이던 이윤석이 이날은 신이라도 내린 양 활기 있게 웃음을 주도한 것.

김범수의 뒤를 이어 ‘님과 함께’에 맞춰 특색 있는 춤을 선보였는가 하면, “많은 분들이 궁금해 하시더라고요. 도대체 이윤석의 아내는 뭘 보고 결혼을 했을까? 멀쩡한 직업도 있는 여자고 집도 괜찮아요. 앞으로 300년 동안 물이 나온다는 온천 집 딸이에요. 그런데 왜 이윤석에게 갔을까? 그 것이요, 저는 내 여자가 아니다 싶으면 제 매력을 1mm도 보여주지 않습니다. 그걸 왜 보여줍니까? 내 여자도 아닌데.”라는 사생활 개그까지 던져가며 폭소를 자아냈다.

이윤석, 그 유명했던 ‘허리케인 블루’ 이래 이렇게 재미있는 날이 있었던가? 15년 전, 동료 개그맨 김진수와 함께 MBC <일요일 일요일 밤에>에서 펼쳐 보였던 ‘보헤미안 랩소디’, ‘She's gone' 등은 그야말로 전설의 립싱크였다. 다시 보고 싶은 추억의 개그를 꼽으라면 아마 ’허리케인 블루‘를 떠올리는 분들이 꽤 많지 싶은데, 나 역시 이윤석이 따라했던 프레디 머큐리의 콧수염이며 특이한 복색이 지금도 문득문득 그리운 사람이다. 사실 MBC <무한도전> 초창기 멤버 시절 보여줬던 이른바 ’방아깨비‘ 스타일 몸 개그도 그만이 가능한 웃음이었다. 당시 <무한도전>의 무모한 미션이 도무지 이해가 가지 않아 하차를 결심했었다고 하는데, 그가 빠지고 나서야 <무한도전>이 가파른 상승세를 보이기 시작했으니 <무한도전>과는 궁합이 영 안 맞았던 모양이다.

엎친 데 덮친다고, 자의든 타의든 <무한도전>을 등졌던 그가 라이벌 프로그램 SBS <이경규 김용만의 라인업>의 중추 역할로 나섰으니 대중의 심기가 편했을 리 없다. 더구나 <라인업>의 뼈아픈 실패 후 내리 추락 상태였던 이경규의 공인된 측근이었던 터라 그의 인기 하락 또한 불을 보듯 빤한 이치였다. 그러나 그는 이경규의 곁을 꿋꿋이 지켰고 다행히 KBS2 <해피 선데이>‘남자의 자격’의 성공 덕에 구사일생, 부활했지만 딱히 주목할 만한 웃음은 주지 못한 채 지지부진 명맥을 이어왔다.







그의 웃음기 가신 개그를 두고 혹자는 박사, 교수 타이틀의 무게가 원인이라고도 하고 이경규의 그늘이 너무 짙기 때문이라는 얘기도 있다. 하지만 그가 어떠한 상황 속에서도 ‘성실’을 결코 놓지 않았다는 점만큼은 높이 사고 싶었다.

‘남자의 자격’에서 열렸던 ‘라면 요리 대회’ 당시, ‘요리에 임하는 성실함은 우승감’이라는 칭찬을 들었는가 하면, 밴드 대회 때에도 드럼 부문에서 어느 멤버보다 일취월장한 실력을 보여주었으니까. 그리고 이후에도 공약이 걸린 각종 미션 수행에 누구보다 최선을 다해왔다. 오죽하면 탭댄스, 태권도 등 ‘묵은지 장기미션’에 임하느라 한 달에 사흘밖에는 쉴 수가 없다고 하겠는가. 그 성실한 근성에 항상 곁에서 지켜봐온 이경규의 ‘방송할 때도 록을 하듯이 혈기를 담아서 내질러라’라는 맞춤 조언이 더해지자 놀라운 변화가 일어난 것이다.

언젠가 ‘남자의 자격’ 미션 중 하나였던 ‘남자, 청춘에게 고함’ 연설 당시 인내의 소중함에 대해 얘기했던 이경규와, ‘사람이라는 것이 이상한 게 육신이 갇히는 건 두려워하지만 사고의 감옥은 편안해한다‘며 세상의 무수한 색들에게 눈을 돌리기를 청춘에게 권했던 이윤석. 이 두 사람의 오랜 감정 공유가 참을성과 성실함을 바탕으로 드디어 시너지 효과를 내기 시작한 모양이다. 모처럼 대중에게 다시 웃음을 주기 시작한 이윤석 씨, 그의 새로운 도약이 기대가 된다.


칼럼니스트 정석희 soyow@entermedia.co.kr


[사진=SB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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