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피고인’과 정반대, 완성도 높은 ‘귓속말’ 시청률은 왜?

[엔터미디어=정덕현] SBS 월화드라마 <귓속말>의 대사를 곰곰 씹어보면 이 드라마가 얼마나 시대에 대한 통찰을 담고 있는가를 느낄 수 있다. 억울하게 감옥에 수감되어 병까지 얻은 아버지를 구하기 위해 물불 가리지 않는 신영주(이보영)에게 이동준(이상윤)이 “기다리라”고 하자, 그녀가 거침없이 쏟아내는 세월호 참사에 대한 이야기는 그 단적인 사례다. “기다려라. 가만 있어라. 그 말 들었던 아이들은 아직도 하늘에서 진실이 밝혀지길 기다리고 있겠죠.”

신영주가 술 취한 이동준과 동침한 동영상을 협박 무기로 사용하자 이에 이동준이 대응하는 대목에 있어서도 <귓속말>의 대사는 남다르다. 마침 펼쳐진 신문의 북핵 관련 기사를 인용하면서, “핵은 보유하고 있을 때 무서운 것이지 사용하면 공멸할 뿐”이라고 말하는 대목이 그렇다. 결국 신영주가 그 동영상을 공개하면 자신은 물론이고 신영주 그리고 무엇보다 그녀의 부친을 구할 방법은 영영 사라진다며 오히려 그녀를 압박한 것.

또 <귓속말>은 기업들이 법을 어떻게 활용하고 있는지와 그 법을 이용해 권력을 휘두르는 자들의 시스템에 대한 통찰 또한 대단히 깊다. 정략결혼을 한 이동준을 로펌의 실력자로 세우기 위해 로펌 태백의 최일환(김갑수) 대표가 청룡전자의 회생을 위해 뛰어오던 팀장 강정일(권율)에게서 그 사안을 이동준에게 넘기며 해외매각을 진행하라고 명하는 대목이 그렇다. 이에 강정일이 불편한 심기를 보이자, 최일환은 두 개의 나무가 동시에 들어앉은 분재 이야기를 꺼내며 이 나무를 분리하라며 쓸모없는 건 버리라고 명한다. 분재에 빗대 강정일에게 자신의 말이 곧 태백의 법이라는 걸 명확히 한 것이다.



그리고 최일환은 이런 그의 조치는 그 누구도 설득한 적 없는 자신을 바꿨다는 점에서 태백 내에 이동준의 입지를 다져줄 것이라고 말해준다. 최일환이 얼마나 이 조직에서 제왕적 권력을 쥐고 있는가와 그 권력의 운용에 능수능란한가를 보여주는 대목이다. 하지만 청룡전자 해외매각은 주식을 갖고 있는 국민연금 측에서 반대함으로서 난항을 겪는다. 그런데 국민연금보험공단의 이사장을 좌지우지하는 인물로 강정일의 아버지 강유택 회장(김홍파)이 등장한다. 결국 강유택 회장은 그 힘으로 청룡전자 건을 다시 자신의 아들 앞으로 돌려놓는다. <귓속말>이 그려내고 있는 이야기들이 얼마나 현실 권력의 시스템 흐름을 잘 이해하고 있는가를 실감할 수 있는 장면들이다.

또한 <귓속말>은 인간에 대한 통찰 또한 뛰어나다. 흔히들 어쩌면 사람이 권력 앞에서 저렇게 변할 수 있지 하고 묻는 그 질문에 대해 이 드라마는 신영주의 입을 빌어 이렇게 말한다. “입시부정에 가담한 교수가 있어요. 그 덕에 학과장이 됐죠. 한번이라고 생각했어요. 아무도 모를 한 번의 타협. 근데 어떡하지? 입시는 해마다 돌아오는데. 처음엔 가담만 했던 사람이 공모를 하고, 주도를 하고...” 처음부터 그렇게 될 것이라고 생각하지 않지만 일단 그 권력 시스템에 발을 딛는 순간 그렇게 변하게 된다는 걸 입시부정 사안을 들어 말하고 있다.



<귓속말>은 실로 드라마가 하려고 하는 시대정서에 대한 담론들이나, 세상을 꿰뚫어보는 통찰력, 그리고 명대사 대잔치라고 해도 무방할 듯한 압축적이면서도 많은 걸 생각하게 만드는 대사까지 완성도가 높은 작품이다. 그런데 이상하게도 긴장감이 높아지고 있지만 시청률은 생각만큼 오르지 않는다. 결국 <피고인>이 빠진 월화드라마 대결에서 2회 만에 <역적>에 추월당했다. 무엇이 완성도 높은 드라마임에도 불구하고 시청률은 오히려 떨어지는 결과를 만들고 있는 걸까.

그건 바로 그 완성도에서 비롯되는 일이다. 압축미와 깊이를 갖고 있어 숨 쉴 틈 없이 빽빽하게 짜여진 대본은 시청자들에게 굉장한 집중력을 요구한다. 이런 몰입감은 물론 좋은 것이지만 대중적으로는 피로감이 될 수도 있다. 흥미로운 건 <귓속말>의 이런 흐름이 이전 SBS 월화드라마였던 <피고인>과는 정반대라는 점이다. <피고인>은 완성도는 떨어졌고 혹평도 쏟아졌지만 시청률은 고공행진을 거듭했다. 하지만 <귓속말>은 완성도도 높고 호평도 쏟아지지만 시청률은 어째 정체상태다. 완성도와 시청률이 항상 정비례를 보이는 건 아니라는 걸 이 사례들은 말해준다.



하지만 모든 게 완벽해 보이는 <귓속말>에도 단점이 존재한다. 그것은 많은 게 허술하면서도 한 가지 장점이 있어 시청률 고공행진을 기록한 <피고인>과 다른 점이다. 그것은 바로 주인공에 대한 연민과 동정을 통해 느끼게 되는 몰입감의 차이다. <피고인>은 다른 건 몰라도 주인공 박정우(지성)이 겪고 있는 처절한 고통에 시청자들이 깊게 몰입한 것만은 분명하다. 하지만 <귓속말>의 신영주에 대한 몰입은 그만큼 크지 않다. 그녀보다는 오히려 이동준이 겪는 그 갈등에 더 초점이 가 있다. 그러니 많은 사건들이 벌어지고 판세가 계속 뒤집어지는 이야기들이 나와도 그것이 신영주라는 인물의 감정 위에 축적되지 않는다.

<귓속말>이 좋은 완성도와 시도, 그리고 특별한 의도를 갖고 있는 드라마라는 것만은 분명하다. 하지만 그런 좋은 요소들을 대중적인 성공으로까지 이끌고 가기 위해서는 적어도 신영주라는 인물에 대한 대중들의 몰입을 높여 놓을 필요가 있다. 그녀가 느낄 처절한 정의와 진실에 대한 갈망을 밑바닥에 깔아 놓을 때 그 위에 전개되는 다양한 권력의 쟁투들은 시청자들에게 의미를 줄 수 있다. 지적인 것만으로 드라마가 만들어지는 건 아니다. 그 지적인 문제제기가 감정의 선을 건드려줄 때 드라마는 비로소 힘을 가질 수 있다.

정덕현 칼럼니스트 thekian1@entermedia.co.kr

[사진=SBS]

저작권자 ⓒ '대중문화컨텐츠 전문가그룹' 엔터미디어(www.entermedia.co.kr), 무단전재 및 재배포금지
저작권자 © 엔터미디어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