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시, 벚꽃’이 장범준이라는 아티스트를 통해 말하려는 것

[엔터미디어=정덕현의 그래서 우리는] “이 영화는 좀비물입니다.” 장범준의 이야기를 담은 다큐영화 <다시, 벚꽃>의 유해진 감독이 던진 농담에 시사회장 객석에서는 웃음이 터졌다. 이른바 ‘벚꽃 좀비’라고도 불리는 장범준의 ‘벚꽃 엔딩’을 염두에 두고 한 말이다. MBC <휴먼다큐 사랑>으로 우리에게 익숙한 유해진 감독은 TV다큐멘터리가 일회적인 속성을 갖고 있어 그 아쉬움 때문에 영화에 도전하게 됐다며 <다시, 벚꽃>이 쉽게 지지 않고 계속 피어나는 그런 영화로 남았으면 좋겠다는 마음을 그 농담에 섞었다.

우리에게는 매년 봄이면 찾아오는 시즌송, ‘벚꽃 엔딩’의 주인공 장범준. <다시, 벚꽃>은 버스커버스커로 데뷔했던 장범준이 솔로로 1집을 낸 후 그다지 큰 반향을 일으키지 못하고 나서 2집을 통해 다시금 우뚝 서는 그 과정을 담았다. <휴먼다큐 사랑>에서 유해진 감독이 보여줬던 인물에 대한 충실함은 고스란히 이 영화에서도 이어진다. 유해진 감독은 장범준의 일상 속으로 들어가 그가 어떻게 음악들을 만들었고, 자신의 부족한 점들을 채우기 위해 부단한 노력을 해왔으며, 그러면서도 타인들과 음악을 통해 공감하고 소통해왔는가를 담담히 영상에 담아넣었다.

장범준에게 음악이란 일상 그 자체였다. 그가 ‘벚꽃 엔딩’이나 ‘골목길 어귀에서’ 같은 곡들을 만든 건 애초부터 앨범을 염두에 둔 것이 아니었다. 그저 일상의 기록으로서 마치 일기를 쓰듯이 그 때 그 때 느꼈던 감성들을 노래로 적어뒀을 뿐이었다. 영화 속에서 장범준이 자신이 예전에 자취했던 학교 근처를 둘러보며 노래의 배경이 됐던 장소를 이야기하는 대목은 그에게 음악이 얼마나 삶 그 자체인가를 잘 보여줬다.



떠오르는 음률을 입으로 읊조리고 그것을 즉석에서 기타로 치면서 노래를 만들어왔던 그가 보여준 음악은 ‘음학’이 아니라는 점이었다. 오히려 정식으로 음악을 공부한 작곡자들이 그 틀에 얽매이는 아이러니를 보여주는 것과 달리, 장범준은 그 틀에서 자유로웠기 때문에 그 누구도 상상하지 못한 자신만의 음악을 만들 수 있었다는 것.

하지만 그렇게 ‘벚꽃 엔딩’이나 ‘여수 밤바다’ 같은 명곡을 만든 그는 이제 음계를 공부하고 더 정교한 연주를 위해 기타를 연습한다. 이전에는 다른 이들의 연주에 자신이 노래를 했지만, 2집 앨범을 준비하는 그는 스스로 기타를 치며 자신이 만든 노래를 부른다. 함께 2집 앨범을 작업한 프로페셔널 세션들은 그의 기타 실력이 굉장히 늘었다며 이제 그 누가 대신 그 기타를 연주하기 어려운 단계라고 말했다. 그만이 자신의 곡에 대한 느낌을 가장 잘 알고 있기 때문이다.

그가 음악을 다시금 공부하게 된 까닭은 그러나 틀에 갇히기 위함이 아니다. 좀 더 정성을 들인 노래를 선보이기 위해 다른 음악인들과 더 잘 소통하기 위해 공부하는 것뿐이다. <다시, 벚꽃>이 보여주는 건 그래서 우리가 흔히 쉽게 젊은 날의 행운처럼 장범준의 ‘벚꽃 엔딩’을 ‘벚꽃 좀비’나 ‘벚꽃 연금’이라고 부르는 것이 과연 온당한가에 대한 질문처럼도 보인다. 물론 그런 표현에 장범준은 특유의 환한 미소를 지어 그 기분 좋음을 보여주지만, 이 다큐 영화가 보여주는 그의 남다른 노력은 이런 그의 성취가 그냥 이뤄진 게 아니라는 걸 확인시켜준다.



영화는 그의 일상과 음악 그리고 그 속에서 만나는 많은 사람들의 기분 좋은 이야기들을 그저 담담히 담아낸다. 하지만 영화 곳곳에 흐르는 그의 음악들은 이 담담한 이야기들과 어우러져 때론 웃음을 주고 때론 먹먹한 감동을 전한다. 무엇보다 음악이 어떻게 탄생하고 완성되어가며 그것이 타인들과 어떻게 소통되는가를 느끼며 영화를 따라가다 보면 거기 장범준이라는 아티스트가 어떻게 탄생했고 성장하고 있는가를 자연스럽게 느낄 수 있다.

그는 이 영화가 담고 있는 2집 앨범을 자신의 20대 마지막을 담는 노래라고 말했다. 하지만 30대에도 또 40대에도 그는 유행에 휘둘리지 않고 자신의 음악을 할 것이라는 걸 분명히 했다. 일상 속에서 자신의 이야기를 찾아내고 그걸 자신이 원하는 방식으로 음악을 만들어내며 그 완성도를 높이기 위해 부단히 노력하는 것. 그것이 장범준의 벚꽃이 지지 않는 이유가 아닐까.

벚꽃은 그저 때 되면 피어나는 기적이 아니다. 매순간 피어나기 위한 노력을 그치지 않았기에 다시 피어날 수 있는 결과일 뿐이다. 아직 피어나진 않았지만 언젠가 피어날 수도 있는, 모두에게 존재하는 저마다의 벚꽃을 위한 헌사. 그것이 <다시, 벚꽃>이 장범준을 통해 하고픈 이야기였을 것이다. 그런 의미에서 이 영화가 청춘은 물론이고 모든 마음의 청춘을 잊지 않고 살아가려 노력하는 이들에게 ‘좀비물’이 되기를 기원한다.

정덕현 칼럼니스트 thekian1@entermedia.co.kr

[사진=영화 <다시, 벚꽃>스틸컷]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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