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성대싸움’ 없이 1등 남진, ‘나가수’에 준 교훈

[서병기의 프리즘] 올해의 추석특집 스타는 단연 가수 남진(65)이었다. 올해 추석 특집은 지난 12일 방송된 MBC ‘나는 트로트 가수다’(이하 ‘나트가’)와 13일 방송된 MBC 아이돌육상선수권대회는 흥행에서 성공했으며 KBS2 ‘브아걸의 두근두근’은 시청률은 저조했지만 큰 감동을 선사했다.

‘나트가’는 단발성이지만 ‘나가수’보다 더 높은 시청률을 올렸다. 출연가수로 김수희, 남진, 문희옥, 박현빈, 설운도, 장윤정, 태진아를 선정한 것을 보면 세대를 아우르겠다는 의도가 엿보인다.

하지만 꼴찌를 가리지 않고 1등만 뽑는 부분 경연이지만 원로인 남진과 박현빈을 함께 경연에 참가시킨다는 것은 쉽지 않은 일이다. 이미자(69)나 나훈아(64)를 함께 참가시키는 것이 쉽지 않은 것과 같은 이치다.
 
‘나가수’도 최고령 출연자가 인순이(54)다. 남진은 태진아와 김수희보다 7살이 더 많고, 박현빈(28)보다는 37살이 더 많다. 제작진으로서도 남진과 이들을 함께 경연에 참가시킨다는 게 조심스러웠을 것이다. 태진아가 방송에서 이렇게 어려워하는 모습을 처음 보았다. 여기서 남진이 “내가 왕년에 말이야~”하는 순간 분위기는 가라앉는다. 하지만 남진은 막내 박현빈과도 농담을 주고받으며 권위의식에 젖지 않았다.
 
남진은 후배들과 격의 없는 모습을 이미 ‘불후의 명곡2’에서도 보였었다. 세대가 다른 아이돌 가수들과의 소통에 어려움이 없도록 자신이 먼저 마음을 열어 장난을 치며 후배들을 편하게 해주었다.
 
남진은 1965년 1집을 낸 가수다. 60년대 후반과 70년대에 이미 오빠부대를 몰고 다녔다. ‘님과 함께’는 70년대 온 국민의 흥을 돋우었던 대형 히트곡이었다. 당시 남진이 살던 동부이촌동의 로얄아파트 집 앞에서는 항상 여성팬들이 진을 치고 있었다.
 
남진은 나훈아와 함께 쌍벽을 이뤘다. 나훈아가 도시화로 인해 농촌을 등진 서민들의 향수를 달래는 노래를 많이 불렀다면 남진은 개발독재시대 중산층을 중심으로 하는 자기 긍정성을 노래했다. 남진은 트로트만 부른 게 아니다. 팝 스탠다드, 로큰롤까지 광범위한 장르를 소화했다. 남진은 얼굴이 잘 생겨 영화배우, CF스타로 이름을 날리며 ‘만능 엔터테이너의 원조’로 통했다.
 
남진은 귀공자풍의 외모를 지닌 톱스타지만 무대만 내려오면 소탈한 아저씨였다. 때로는 ‘악동’ 같은 장난꾸러기로도 변했다. 리사이틀이라고 불리는 지방공연을 다니면 전용 자가용을 보내버리고 공연단의 전세버스를 이용하고, 숙소도 특급호텔 대신 스탭들이 이용하는 낡은 여관에 함께 묶는 경우가 많았다는 건 당시 스텝들에 의해 익히 알려진 사실이다.
 
남진이 이날 부른 심수봉의 ‘비나리’도 화제가 됐다. ‘나가수’의 필수품목인 고음 지르기, 성대싸움이 아니라 담백하게 불렀다. 오버하지 않고, 감정과잉 없이 불러도 세대를 아우를 수 있는 관록의 무대를 선보일 수 있었다. 47년차 가수가 어쿠스틱 기타의 반주에 의지해 연륜으로 빚어낸 차분한 무대는 그 자체로 감동이었다. 격정의 무대는 아니었지만 무대장악력은 대단했다.
 
선배가 “내가 왕년에~”라고 말하기보다는 관록과 연륜을 이런 식으로 보여준다면 후배로부터 저절로 인정받을 수 있다.


칼럼니스트 서병기 <헤럴드경제 기자 >wp@heraldm.com 


[사진=SB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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