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식당’ 위안과 소통, 그리고 그 뒤의 그늘

[엔터미디어=TV삼분지계] ◾편집자 주◾ 하나의 이슈, 세 개의 시선. 각자의 영역을 가지고 대중문화와 관련된 글을 쓰고 있는 정석희·김선영·이승한 세 명의 TV평론가가 뭉쳐 매주 한 가지 주제나 프로그램을 놓고 각자의 시선을 선보인다. 엔터미디어의 [TV삼분지계]를 통해 전문가 세 명의 서로 다른 견해가 엇갈리고 교차하고 때론 맞부딪히는 광경 속에서 오늘날의 TV 지형도를 그려볼 수 있는 단초를 찾으실 수 있기를.

배낭여행, 귀촌, 신혼생활, 그리고 이제 비즈니스다. 나영석 사단이 새로 선보인 tvN <윤식당>은 윤여정과 이서진, 정유미, 그리고 신구가 인도네시아 길리 트라왕간 섬에 한시적으로 한식당을 열어 현지의 사람들과 교류하는 내용을 담고 있다. 좋은 사람들이 따뜻한 남쪽 나라에서 보내는 한 때를 다룬 <윤식당>에 쏠린 세간의 호평은 4주 연속 동시간대 1위, 최고 시청률 14.7%라는 기념비적인 시청률(닐슨코리아 / 유료플랫폼 기준)로 이어졌다. 그 비결은 무엇인지, 그리고 혹 눈에 밟히는 단점은 없는지 [TV삼분지계]가 함께 살펴보았다.

김선영 평론가는 삶과 여행의 중간께 생계 못지않은 중요한 가치들을 이야기하는 프로그램의 논조를, 정석희 평론가는 나이로 짓누르려 하지 않는 본이 되는 어른 윤여정과 신구라는 두 인물의 매력을 집중해서 봤다. 한편 이승한 평론가는 제작진의 의도와는 무관하게 현재진행형이 된 프로그램의 부작용을 근심했다. 함께 살펴보자.



◆ 나영석표 쉼표 예능의 진화

나영석 PD는 이미 ‘꽃보다’ 시리즈를 통해 여행예능의 트렌드를 한 차례 바꾼 바 있다. 기존의 여행예능이 방문 지역의 볼거리, 먹거리, 즐길 거리 등 최대한 많은 정보로 화면을 꽉 채우려 했다면, ‘꽃보다’ 시리즈의 서막을 연 ‘꽃보다 할배’는 노배우들의 발걸음 속도에 맞춰 쉼표와 그 여백에 집중한다. 체력도 한창때는 아니고 회상할 것도 많은 나이의 배우들은 아름다운 풍경 앞에서 자주 멈춰서 사색에 잠겼고 지켜보는 이들도 자연스럽게 그들과 걸음을 나란히 했다. 이때부터 나영석 PD 예능은 속도를 점차 늦추며 느림과 비움의 미학을 드러내기 시작한다.



<윤식당>에 이르러 그 발걸음은 느려지다 못해 한곳에 멈췄다. 일견 <삼시세끼> 시리즈와도 비슷하나 그 어떤 미션도 없다는 점에서 한층 더 여유롭다. 한식당을 개업하고 운영은 하지만 엄밀한 의미의 영업과는 거리가 멀다. 하루하루 준비한 만큼의 식사를 팔되 손님이 없으면 일찍 문을 닫고 남은 음식은 나눠 먹는다. 그렇다고 대충 하는 것도 아니다. 셰프 겸 사장 윤여정은 다리가 퉁퉁 붓도록 요리를 하고, 주방 보조 정유미는 쉴새없이 주방을 정리하며, 서빙 담당 이서진은 마케팅 전략 수립에도 열심이고, ‘알바구’ 신구는 애절한 눈빛으로 호객을 한다.

<윤식당>의 이러한 태도는 이들이 머무는 섬의 성격과 닮아 있다. “이 섬을 삶의 터전으로 일궈가는 사람들”과 ‘상당수가 장기체류객으로서 일상을 즐기듯 여행하는 사람들’이 다양하게 함께 어울려 살아가는 섬에서, 윤식당의 위치는 전자와 후자의 중간 즈음에 놓여 있다. 그 현실과 판타지의 경계에서 생계도 중요하지만 그 못지않게 중요한 삶의 다른 가치도 있다고 속삭여 주는 것이 이 프로그램의 진정한 매력이다.

칼럼니스트 김선영 herland@naver.com



◆ 사려 깊은 어른들, 세대 간의 소통

세대 간의 소통 단절이 날로 심해진다. 잘잘못을 가릴 일이 아니긴 하나 굳이 책임 소재를 묻자면 어른들 쪽에 있지 않을까? 노인들의 고집불통, 우격다짐을 감당키 어려워 일단 피하고 본다는 젊은이들이 한 둘이어야 말이지. 그럼에도 tvN <윤식당> 사장님 윤여정 씨와 알바생 신구 씨를 불편하게 여기는 이들은 별로 없다. 생각해보면 당연한 일이다. 나이를 앞세워 가르치려 들지 않고, 대접 받으려 들지 않고, 오히려 매사 모범을 보이니 젊은이들이 꺼려할 까닭이 있나. 일명 ‘떼토크’에서 자신의 희생과 자녀의 도리를 끊임없이 강조하는 고 연령대 연예인들의 화법과는 많이 대조가 된다.



그런데 한 SNS에 윤여정 씨만 식구들의 끼니를 챙기고 신구 씨는 나 몰라라 하는 그림이 가부장제의 전형이라서 아쉬웠다는 지적이 있었다. 혹시 신구 씨가 올해 82세라는 사실을 모르나? 식사 후 그릇 정리를 거들고, 맡은 바 식당 일에 최선을 다하고, 외국인 손님과의 소통을 위해 애를 쓰고, 그 이상을 바라는 것은 무리인 연세라고 본다.

얼마 전 신구 씨는 KBS2 <해피투게더 3>에 출연해 ‘아이가 사춘기 예민할 나이에 부모와 교감이 없었다. 아무리 힘들어도 내 아이의 성장과정은 꼭 관심과 애정으로 보살피면 좋겠다’는 당부의 말씀을 남겼다. 지난날의 과오를 돌아볼 줄 아는 어른, 그를 솔직히 고백할 수 있는 어른. 참 근사하다. 화려하게 채색된 그림 같은 현실이 아닌, 자연광 그대로의 현실. <윤식당>의 자연스럽고 사려 깊은 두 어르신으로 인해 비로소 소통의 물꼬가 트이기 시작했다. 부디 막힘없이 세대 간의 교감으로 이어지길.

칼럼니스트 정석희 soyow59@daum.net



◆ 손에 잡힐 것 같은 환상의 명과 암

tvN으로 이적한 이래 나영석 PD의 예능은 늘 그 목표가 간결했다. <꽃보다 할배> 시리즈를 통해서는 배낭여행을, <삼시세끼> 시리즈에서는 미니멀한 귀촌 생활을, <신 서유기> 시리즈는 과거 KBS <해피선데이> ‘1박 2일’ 시즌 1의 긴 후일담을 들려주는 것이 그 목표였다. 크게 어려울 것도 없고, 마음만 먹으면 시청자들도 어떻게든 도전해 볼 수 있을 것만 같은 판타지. <꽃보다 할배> 시리즈 이후 한국의 배낭여행 인구가 증가하고, 해당 여행지에 한인들을 노리는 상품들이 속속 등장한 것도 무리가 아니다. 물론 그 과정에서 전기포트에 찌개를 끓여먹는 등의 ‘안 하면 좋을 법한’ 일들만 속속 골라 따라하는 한인 여행객들이 늘어난 건 창피하고 아쉬운 일이지만.



방송의 톤 앤 매너만 보면 <윤식당>은 <꽃보다 할배> 시리즈의 연장선상에 서 있는 프로그램이다. 시리즈에 출연한 바 있는 윤여정과 신구, 이서진이 출연했으며, 인도네시아 현지에서 팝업스토어 형식으로 한식당을 운영하는 모습은 크게 어려워 보이지 않는다. 따뜻한 남국에서의 나른한 식당 운영이라, 일본영화 <카모메 식당>과 <안경>의 내용을 적당히 섞어낸 듯한 이 판타지는 손에 잡힐 것처럼 가까워 보인다. 너무 가까워 보여서였을까. 벌써부터 인도네시아에 저렴한 가격에 한식당을 차릴 수 있게 해주겠다며 한인들에게 손짓하는 사기꾼 브로커들이 기승이란다.

연출이 가미된 예능과 현실을 구분하지 못하는 이들까지 제작진이 어찌 책임지랴 싶다가도, 그렇게 말하자니 방송에서 외국인 신분으로는 식당 개업 허가도 받을 수 없고 한인 직원을 고용할 경우 비자도 받기 어렵다는 현실이 말끔하게 은폐된 게 마음에 걸린다. 근사한 환상을 선사하기 위해 방송이 현실을 재단해 오려내면, 그 환상을 향해 손을 뻗다 발을 헛디디는 이들이 생긴다. 배낭여행도 귀촌도 아닌 비즈니스를 예능의 영역으로 가져오는 순간, 환상이 부쩍 위험해졌다.

칼럼니스트 이승한 tintin@iamtintin.net

[사진=tv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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