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카고 타자기’, 멜로가 살아나자 기대감도 높아진 까닭

[엔터미디어=정덕현] “오늘도 류수연이랑 같이 왔어요? 오늘도 세 명이에요?” 한세주(유아인)에게 전설(임수정)이 묻는다. 전설은 한세주가 자신에게 한 말, 즉 그녀를 보면 심장이 뛰지만 그것이 그녀 때문인지 아니면 오래 전에 알았던 어떤 사람 때문인지 헷갈린다는 말이 영 마음에 걸린다. 한세주를 좋아하곤 있지만 그가 자신이 아니라 자신을 통해 떠올리는 누군가를 바라보고 있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하지만 한세주는 분명하게 자신에 보고 있는 건 바로 그녀라고 말한다. “세 사람이 아니라 두 사람”이라고.

하지만 그 장면 속에는 과거의 인연으로 유령이 되어 한세주와 전설을 따라다니는 유진오(고경표)가 숨겨져 있다. 그는 과거 일제강점기 경성에서 전설을 사랑했던 남자. 그의 표정이 묘하다. 그가 사랑하는 여자가 그의 가장 친했던 친구와 사랑을 확인하는 그 장면을 바라보는 그 표정의 알 수 없는 애틋함이 거기에는 녹아 있다.

흔한 삼각관계? 적어도 tvN 금토드라마 <시카고 타자기>에는 적용되지 않는 이야기인 것 같다. 전생과 현생으로 얽힌 한세주, 전설 그리고 유령으로 나타난 유진오의 관계는 우리가 봐왔던 그 삼각관계와는 다른 독특함이 섞여 있기 때문이다. 한세주는 유진오의 존재를 보고 느끼지만 전설은 그를 볼 수 없고, 전설은 전생에서 한세주가 사실은 그녀를 구하고 유진오의 카페에서 성장하게 해준 장본인이라는 사실을 모른다. 그녀는 한세주의 소설 속 주인공 류수연이 바로 자신이라는 사실을 모른다.



한세주의 소설이 그들의 전생을 담고 있고 그 전생의 사건들이 어떤 방향으로 마무리될 지는 아무도 모르는 상황. <시카고 타자기>가 그려내는 세 사람이 얽혀진 멜로는 그래서 사랑이야기이면서 동시에 당대 암울한 일제강점기에서 벌어진 어떤 운명적인 사건일 가능성이 높다. 그리고 그 운명적인 사건은 유진오가 어째서 다른 이들처럼 죽어 환생하지 못하고 유령으로 남아 구천을 떠도는가에 대한 이유가 될 것이다. 전설 또한 마찬가지다. 가끔씩 꿈을 통해 자신이 누군가 쏘지 말아야할 사람을 쐈을 것 같다는 그 느낌은 이 운명적인 사건이 가진 비극성을 암시한다.

<시카고 타자기>는 전생과 현생 그리고 소설 속 내용과 현실이 겹쳐지고 거기에 미스터리한 유령 유진오가 등장하면서 꽤 복잡한 형국으로 시작됐다. 하지만 이제 그 많은 의문의 고리들이 풀려버렸다. 일제강점기 시절의 전생에 한세주와 전설 그리고 유진오가 의열단 사건과 연루되어 무언가 비극적인 사건을 겪었고, 그로 인해 세 사람은 다시 현생에서 인연으로 얽히게 된 것. 소설가 한세주는 그 전생의 사건들을 진짜 유령작가인 유진오와 함께 소설로 재구성해간다. 소설의 결말은 그래서 전생과 현생으로 얽혀진 이들의 관계를 풀어내는 결말과 이어진다.



초반의 스토리가 다소 복잡한 이야기들을 위한 전제였다면 그 베일에 싸여진 많은 의문의 실타래들이 풀려버린 지금, <시카고 타자기>는 본격적인 이야기 전개에 탄력이 붙었다. 한세주와 전설의 알콩달콩하면서도 어딘지 아픈 사랑의 감정들이 피어나기 시작했고, 이를 바라보는 유진오의 흐뭇한 듯 안타까운 듯한 모습이 기묘한 감정을 얹어 놓고 있다. 여기에 도대체 전생에 무슨 사건이 벌어졌는가에 대한 궁금증 또한 점점 커져가고, 현재 한세주가 맞닥뜨리고 있는 백태민(곽시양)과 그 가족과의 갈등상황이 드라마에 긴장감을 만들고 있다.

<시카고 타자기>가 무엇보다 흥미로운 건 멜로 상황과 사건이 유기적으로 연결되어 있고, 그 사건들이 소설이라는 틀 속으로 묶여지며 적절히 전생과 현생을 이어붙이고 있다는 점이다. 그저 이들의 절절한 시대를 뛰어넘는 멜로만으로도 충분히 드라마적 재미가 있지만, 그걸 소설이라는 틀로 잡아넣으면서 생겨난 문학적인 묘미와 상징까지 들여다본다면 훨씬 깊은 드라마의 맛을 느낄 수 있을 것이다. 멜로가 살아나자 다양한 이야기들의 기대감 또한 커진 이유다.

정덕현 칼럼니스트 thekian1@entermedia.co.kr

[사진=tv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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