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군주’, 세자 유승호가 가면의 주인이 된다는 건

[엔터미디어=정덕현의 낮은 목소리] 가면을 쓴다는 것에는 어떤 의미들이 담겨있는 것일까요? 새로 시작한 MBC 수목드라마 <군주>에는 ‘가면의 주인’이라는 부제목이 달려 있습니다. 이 사극 참 독특합니다. 지금껏 사극에서 가면 쓴 세자의 모습을 우리는 본 적이 거의 없으니까요. 마치 MBC <복면가왕>이 처음 기괴한 복면을 하고 나와 노래를 할 때 느끼던 그 이물감과 낯설음이 있습니다. 하지만 차츰 적응이 되다보면 가면 쓴 세자라는 특이성도 금세 익숙해질 겁니다. 가면이라는 것이 본래 그런 것이니까요. 처음엔 낯설지만 자꾸 대하다보면 그게 가면이라는 사실을 점점 잊게 되죠.

그런데 <군주>의 시작이 의미심장합니다. 훗날 왕(김명수)이 되려는 자가 편수회라는 비밀조직에 입회식을 치르는 장면입니다. 짐꽃으로 만든 독에 중독되는 것이 입회식인데, 이 독은 계속해서 그 독을 먹지 않으면 심장이 찢어지는 고통과 함께 죽게 됩니다. 그래서 편수회의 도움으로 왕이 되지만 그는 편수회의 모든 요구를 들어줄 수밖에 없게 되죠.

물론 현실적인 이야기는 아닐 수 있지만 ‘중독’이라는 장치와 편수회라는 조직이 가진 ‘비선실세’라는 상징이 있어 그저 허황된 이야기로만 다가오지 않습니다. 여기서 ‘독’을 ‘돈’이나 ‘권력’ 같은 걸로 바꿔서 읽어보면 그건 조선시대를 배경으로 하는 허구라는 틀을 벗어나, 작년 말 우리가 겪었던 초유의 국정농단 사태까지 포함하는 이야기로 읽혀질 수 있죠.



게다가 이 편수회라는 비선실세 조직은 이제 대놓고 왕에게 ‘물’에 대한 이권을 요구합니다. 양수청이라는 새로운 관청을 만들고 그 조직을 편수회가 장악한 후 전국의 물 사업권을 가져갑니다. 평시에는 싼 값에 물을 직접 길어다 주는 편리함까지 제공하지만, 가뭄이라도 들어 양수청이 관리하는 우물의 물을 사야만 하는 상황이 되면 가격이 폭등합니다. 하루 일당이 열 푼인데 물 한 동이에 세 푼을 받는다는 거죠.

편수회라는 비선실세에서 우리가 지난 정권의 최순실이나 차은택 같은 이름을 떠올리는 건 자연스럽습니다. 명목뿐인 대통령을 세워놓고 사실은 뒤에서 갖가지 이권을 챙겨가는 것이죠. <군주>의 백성들이 물조차 비싼 값에 사먹어야 하고, 길바닥에서 굶어 죽어가는 이유는 백성에게 가야할 혜택들이 비선실세의 사적인 주머니로 들어가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왕은 편수회라는 조직을 혁파할 수가 없습니다. 그것은 중독되어 계속 독을 먹어야 하는 상황 때문이기도 하지만, 또한 그가 편수회의 도움으로 왕이 되었다는 ‘정통성의 결여’ 때문이기도 합니다. 결국 이 사극이 가면이라는 특이한 설정까지 굳이 동원하여 하려는 이야기는 명백합니다. 편수회라는 비선실세를 극복하고 왕세자 이선이 주체적인 왕으로 설 수 있는가에 대한 이야기라는 거죠.



부제가 ‘가면의 주인’이라고 붙여진 데는 가면이 말하는 이중적인 의미가 담겨 있습니다. 편수회의 도움으로 권력을 쥐게 된 왕은 사실 보이지 않는 가면을 쓰고 있죠. 겉으론 왕의 모습이지만 그건 허수아비 가면일 뿐입니다. 실체는 편수회의 하수인에 불과하죠. 반면 현재 편수회의 암살 위험으로부터 피하기 위해 가면을 쓰고 다니는 왕세자는 그 가면을 벗어버리고 싶어합니다. 그가 가면을 벗는 그 날이 진정 주체적인 왕세자로서 그가 서는 날이 되겠죠. ‘가면의 주인’이란 가면을 스스로 벗을 수 있는 자를 뜻합니다.

비선실세와 초유의 국정농단 사태 그리고 박근혜 전 대통령 탄핵을 거쳐 조기대선으로 뽑힌 새 대통령 문재인. 이 일련의 과정들 속에서 국민이 가장 분노했던 건 가면을 쓴 자들과 그 가면 뒤에서 권력을 사유화하려 했던 이들의 존재입니다. 그리고 그 속에서 우리가 염원했던 건 그 가면들을 벗겨내고 모든 것이 정정당당하고 명명백백해짐으로써 가능해질 새로운 시대입니다. <군주>의 이야기가 그랬으면 좋겠습니다. 그리고 우리의 현실도.

정덕현 칼럼니스트 thekian1@entermedia.co.kr

[사진=MBC]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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