규칙이 뭐기에...‘한끼줍쇼’ 고시생에게 풍성한 한끼 대접할 순 없었나

[엔터미디어=정덕현] 규칙이 그렇게 중요한 걸까. 노량진 고시촌을 찾아간 JTBC 예능 프로그램 <한끼줍쇼>에게 필요했던 건 유연함이 아니었을까.

<한끼줍쇼>가 노량진 고시촌을 찾아간 이유는 명백하다. 그 곳이 우리네 청춘의 현실을 극명하게 드러내주는 곳이기 때문이다. 고시를 준비하고 공무원 시험을 준비하는 청춘들의 치열한 삶. 겨우 몸을 눕힐 수 있을만한 2평 남짓한 방에서 당장의 불편함을 감수한 채, 심지어 가족의 품을 떠나 오로지 공부에만 매진하는 삶. 합격해서 그 곳을 벗어나야 비로소 미생에서 벗어날 수 있다는 그런 삶. 그런 선택들을 하게 만드는 불안한 취업 현실.

노량진 고시촌이 우리에게 환기시키는 건 그런 것들이다. 물론 <한끼줍쇼>가 기획한 의도는 그들의 현실을 공감해주기 위함이었을 것이다. 하지만 이 프로그램의 성격과 규칙들은 고시촌과는 부딪치는 면이 분명 존재했다.

가장 큰 문제는 길바닥에조차 정숙을 요구하는 문구들이 적혀 있을 만큼 조그마한 소음에도 민감한 동네에서 방송을 해야 한다는 한계다. 물론 이 부분에 대해 제작진과 출연자들은 최대한 배려하기 위해 애쓰는 모습이 역력했다. “방송 사상 가장 조용한 방송”이라는 얘기가 나올 정도로 조용하려 애썼고, 이경규의 버럭도 강호동의 수다도 줄었다.



하지만 그래도 주변 사람들에게 민폐가 되는 건 피할 수 없는 일이었다. 그것은 이 방송이 갖고 있는 규칙 때문이었다. 결국 누군가의 방문을 두드려야 하고 그들과 “이런 얘기 저런 얘기”를 나눠야 하며 또 어쨌든 규칙은 규칙이기 때문에 한 끼 밥을 얻어먹어야 한다. 그러니 그 규칙 자체가 어쩌면 이들 고시생들에게는 민폐가 될 수밖에 없는 일이었다.

그래서 아마도 미카엘 셰프와 김풍이 게스트로 들어간 것일 게다. 고시생들에게 얻어먹는다는 건 사실 정서적으로 용납이 잘 되지 않는 일이기 때문이다. 그러니 셰프들이 들어가 그들을 위한 한 끼를 대접하는 것이 훨씬 예의에 맞는 일일 수 있었다. 그리고 실제로 이들은 그들이 받은 돈 6천원을 털어서 재료를 사다 음식을 해 함께 먹는 모습을 보여줬다.

하지만 제 아무리 규칙이 중요하다고 해도 예외 규정을 만들든 아니면 차라리 이경규가 제작진에게 호통을 치거나 강호동이 떼를 써서라도 좀 더 풍성한 저녁 밥상 한 끼를 고생하는 청춘들에게 대접했더라면 어땠을까 하는 아쉬움이 남는다. 물론 <한끼줍쇼> 같은 프로그램의 재미요소는 바로 그 규칙에서 나오는 게 사실이다. 하지만 때론 규칙을 넘어서 마음으로 다가가야 할 때도 있는 법이다.



오히려 프로그램을 살려준 건 그 와중에도 방문을 열어준 청춘들이었다. 힘겨운 상황 속에서도 웃음을 잃지 않고 긍정적인 모습을 보여준 경시생과 낮에는 일하고 밤에는 공부를 한다는 공시생은 시청자들의 마음마저 흐뭇하게 만들었다. 어쨌든 프로그램이 훈훈하게 마무리될 수 있었던 것도 그들이 보여주는 따뜻한 면들 덕분이었으니.

<한끼줍쇼>에게 노량진 고시촌은 일종의 도전이었을 것이다. 좁은 공간에서 촬영도 여의치 않고 자칫 잘못하면 ‘민폐 논란’을 일으킬 수도 있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그럼에도 그 도전을 감행한 건 그 공간이 보여주는 청춘들의 현실을 담겠다는 뜻이 아니었을까. 그래도 너무 규칙에만 집착한 점은 아쉽다.

이번 도전을 통해 <한끼줍쇼>는 그저 비슷한 골목과 집들을 방문하는 것에서 벗어나 꽤 다양한 시도들이 가능하다는 걸 보여줬다. 외국인 근로자들이 모여 사는 곳이든, 공단이든 사실 우리가 사는 다양한 공간은 고스란히 우리네 현실을 비추는 거울이 된다. 그러니 <한끼줍쇼>가 걸어갈 길들은 그 장소 선정 자체만으로도 어떤 의미를 갖기 마련이다. 다만 이런 다양한 공간과 삶의 방식을 다루기 위해서는 거기에 맞는 접근법들이 필요하다는 점이다.

규칙은 필요하지만 거기에 지나치게 집착하다가는 오히려 잃는 것이 더 많을 수 있다. 향후 더 많은 길들을 걸으며 우리네 삶을 들여다볼 <한끼줍쇼>가 때론 유연해져야 하는 이유다.

정덕현 칼럼니스트 thekian1@entermedia.co.kr

[사진=JTBC]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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