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실로, 삶으로, 섬으로…‘수업을 바꿔라’·‘우리들의 인생학교’·‘섬총사’

[엔터미디어=TV삼분지계] ◾편집자 주◾ 하나의 이슈, 세 개의 시선. 각자의 영역을 가지고 대중문화와 관련된 글을 쓰고 있는 정석희·김선영·이승한 세 명의 TV평론가가 뭉쳐 매주 한 가지 주제나 프로그램을 놓고 각자의 시선을 선보인다. 엔터미디어의 [TV삼분지계]를 통해 전문가 세 명의 서로 다른 견해가 엇갈리고 교차하고 때론 맞부딪히는 광경 속에서 오늘날의 TV 지형도를 그려볼 수 있는 단초를 찾으실 수 있기를.

바람보다 풀이 먼저 눕는다. 몇 년 전부터 한국의 예능은 다양한 사회문제들을 어떻게 해결할 수 있는가에 대한 고민을 예능의 문법으로 풀어내는 시도를 계속 해 왔다. 한동안 시들했던 ‘공익 예능’의 바람이 그 다음 세대로 업그레이드되어 그 명맥을 지속하고 있는 것이다. 사회 구조가 이대로 계속 가다간 다 함께 공멸할 것이라는 시대적 우울증에 시달리는 동시대인들을 위로하기 위한 예능 제작자들의 고민이 몇 년 새 꾸준히 발전해 온 것이다.

정권이 교체되고 사회 전반에 변화의 기운이 감도는 이 시기에 CJ E&M이 한꺼번에 선보인 세 개의 예능은 그런 의미에서 곱씹어 볼 만 하다. <수업을 바꿔라>는 한국의 공교육 시스템에 대한 고민을, <우리들의 인생학교>는 사회에 나가서도 여전히 배우고 익혀야 할 사회적 언어가 남아 있다는 성찰을, <섬총사>는 막연하게 관념으로만 알고 있던 섬 지역의 삶 속으로 들어가는 홈스테이를 아이템으로 들고 나왔다. TV삼분지계가 각각의 프로그램에 거는 기대와 우려, 당부를 담아 첫 화들을 살펴보았다.



◆ <수업을 바꿔라> - 바꿔야 될 게 수업만일까

청소년들의 장래희망 1위 건물주, 어린이·청소년 행복지수 OECD 국가 최하위... 한국 청소년들의 비극적 현실을 여실히 보여주는 도입부, 그리고 이에 대한 대안을 선진국에서 찾아보는 내용은 이미 기존 교양 프로그램에서 수백 번쯤 본 것이다. tvN <수업을 바꿔라>는 이 익숙한 풍경에 스튜디오 토크쇼라는 예능적 가공을 더해, 이른바 ‘신개념 교양예능’을 표방한다. 실제로 선진국의 다양한 교육 사례 안에서도 ‘학교에서 놀면 어때?’라는 분명한 모토를 정해 그에 맞는 창의적 수업들을 소개하는 뚜렷한 방향성과 문제의식은 꽤 인상적이다.

첫 회에 소개된 핀란드의 한 초등학교 역시 신선하고 감동적인 사례였다. 한국 방송을 통해서는 거의 처음으로 본격 소개되는 ‘움직이는 학교’ 파이반케라의 가장 큰 특징은 고정된 틀이 없다는 것이다. 복도에 교실이 있고, 공간 곳곳에 악기가 놓여있고, 심지어는 체육관에서 수학 수업이 진행되기도 한다. 놀이와 공부, 주과목과 부과목이 따로 분리되지 않는 교육은 모든 가치에 등급을 매기고 분류하는 한국 교육의 문제점과 명확한 대조를 이룬다. ‘대한민국 교육의 틀을 바꿔줄 수업을 찾아나선다’는 프로그램 취지에 들어맞는 발굴력과 포인트를 정확히 포착한 스토리텔링은 칭찬할만하다.



문제는 이 감동적인 사례를 정리하는 스튜디오 토크 부분이다. 진행자 김성주, 이적, 홍진경, 전문가 패널 최태성, 조승연으로 이루어진 고정 출연진 안에는 학부모와 교사의 시선만 존재한다. 게스트였던 핀란드 교환학생 로따, 걸그룹 라붐 멤버 솔빈도 대학생이다. 정작 한국 교육의 병폐를 실감 중인 청소년의 목소리가 없다. 특히 열혈 학부모를 자청하며 사교육을 반복 언급하는 김성주의 발언들은 위험한 지점이 많다. 기껏 좋은 사례를 배운 뒤 ‘다른 집도 안하면 우리 집도 안하겠다’는 식의 농담으로 받는 태도는 마냥 ‘프로찬물러’라는 유머로 소비하기에는 자성이 부족해 보인다. 시작부터 같은 진행자 홍진경을 두고 ‘남자 셋이 앉아있는 것 같다’며 형편없는 젠더감수성을 드러내는 데서도 성찰없음은 뚜렷하게 드러난다. 수업을 바꾸기 이전에 프로그램 내에서도 고쳐야 할 부분을 들여다보는 게 어떨까.

칼럼니스트 김선영 herland@naver.com



◆ <우리들의 인생학교> - 시의적절한 개교, 물론 ‘잘 만들었을 때’ 그렇단 이야기

삶에도 따로 배움이 필요하다는 걸 새록새록 절감한다. 아무리 빼어난 인재라 해도 올바르게 살지 않는 사람을 최근 들어 너무나 많이 접했기 때문이리라. “요즘 뉴스 보면 공부를 잘 해서 왜 그렇게 쓴대요?” 언젠가 한 예능 프로그램에서 가수 솔비가 한 말이다. 이보다 명언이 또 어디 있겠나. 그런 의미에서 tvN <우리들의 인생학교> 개교는 시의적절하다. ‘학교에서 배우지 못한 인생’을 알려준다고? 제목만으로도 솔깃해진다. 학생은 출연자들이지만 시청자도 배우는 입장에서 귀를 기울이지 않을까? 물론 ‘잘 만들었을 경우‘ 라는 단서가 붙겠지만.



첫 강의 주제, ‘새로운 친구를 사귀는 법’은 이 시대 당면 과제인 ‘소통’을 위한 선택이지 싶다. 사실 우리는 그 동안 불필요한 인간관계를 쌓지 말라는 조언을 자주 들어왔다. 한 종교인도 ‘함부로 인연을 맺지 마라‘ 라는 말씀을 남기지 않았나. 그러나 좋은 사람인지 나쁜 사람인지, 관계를 배제하고 어찌 미리 알 수 있겠는가. 출연자 김용만, 정준하, 안정환, 전혜빈, 이홍기, 곽동연. 누군가는 사람 사귀는 것이 두렵지 않고, 누군가는 일단 경계부터 하고, 누군가는 아예 시도조차 못한다. 나와 비슷한 성향의 출연자를 골라 발자취를 쫓아 보면 재미있을 것 같다.

어쨌거나 지금 시점에 가장 눈길이 가는 인물은 오랜 자취 생활 탓인지 음식 맛을 알지 못한다는 연기자 곽동연이다. 부디 첫 번째 짝 정준하가 그의 다짐대로 먹는 재미를 꼭 일깨워주고 나아가 큰 울타리가 되어주기를. 그리고 아직 나이 어려도 정글 같다는 연예계 경험은 누구 못지않은 이홍기가 좋은 길잡이가 되어주기를. 그리하여 주고받는 관계 속에 <우리들의 인생학교>가 모두의 전환점이 되기를.

칼럼니스트 정석희 soyow59@daum.net



◆ <섬총사> - 익숙한 레시피에 부치는 당부

모든 예능이 꼭 엄청나게 새로워야 할 필요는 없다. 어느 한 켠에서 과격한 실험을 하는 예능이 있다면, 다른 한 켠에는 이미 익숙하게 검증된 코드를 변주하는 것으로 시청자들에게 구애하는 예능도 있는 법이다.

O’live <섬총사>가 그렇다. 오랜 세월 KBS <해피선데이> ‘1박 2일’을 통해 전국의 도서지역을 섭렵하고 다닌 강호동이나, 그와 JTBC <한 끼 줍쇼>에서 호흡을 맞춰본 정용화, SBS <화신>에서 기존의 도도한 이미지가 전복되는 쾌감을 보여준 바 있던 김희선의 활용은 그리 낯설지 않다. 섬을 짧게 훑어보고 나오는 것이 아니라 4박 5일을 할애하며 현지의 생활방식을 체험한다는 것은 tvN <삼시세끼>를, 현지의 주민들이 배경으로 소모되는 게 아니라 화면 안에 적극적으로 개입될 듯 보이는 건 KBS <청춘불패>를 연상시킨다. 그리고 <섬총사>는 이런 레퍼런스들을 굳이 숨기려 하지 않는다. <섬총사>의 목표는 엄청나게 새로운 것을 만드는 게 아니라, 익숙한 레시피들을 조합해 조금은 새롭지만 많이 친근한 프로그램을 만드는 것에 방점이 찍힌다.



멤버들끼리 호흡을 맞추고 우이도에 들어가 짐을 푸는 것만으로 훌쩍 지나가버린 첫 회분만 보고 프로그램의 앞날을 점치기는 분명 무리가 있다. 해서 이것은 전망이라기보단 당부의 말일 것이다. ‘1박 2일’이나, OtvN <주말엔 숲으로>를 보면서 종종 들었던 위화감은, 농어촌 주민들의 삶을 지나치게 낭만적으로 바라보는 도시인들의 시선이었다. 농어촌 주민들이 겪는 크고 작은 불편까지 마치 도시에선 즐길 수 없는 시골의 정취 정도로 소비하는 건, 도시가 농어촌을 착취하는 또 하나의 방식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었던 것이다. 섬에서 5일을 보내고, 현지 주민들과도 더 길게 소통하는 만큼, <섬총사>는 즐거움 속에서도 그런 고민을 해볼 시간을 많이 가지길 기원한다.

칼럼니스트 이승한 tintin@iamtintin.net

[사진=CJ E&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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